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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글짐 꼭대기에서

... 우리 한 번 만나볼래?

by 박재

“날 더우니까 우유 가방에 넣지 말고, 아침에 바로 먹어라. 이상, 종례 마친다. 반장.”
“차렷, 인사.”


모두 책가방을 싸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한비도 친구들과 함께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강찬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한비와는 정글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비보다 늦게 가야, 내가 왔을 때 첫마디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천천히 움직였다.


여름방학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운동장 한쪽, 평행봉과 함께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쇠파이프 정글짐이 햇볕에 반짝였다. 그리고 그 정글짐 뒤편에 한비가 서 있었다. 나는 주변을 한 번 두리번거리고 정글짐으로 다가갔다.


한비는 정글짐에 기대어 가방끈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인사 대신 정글짐에 올라탔다.


“왔구나.”
한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응.”
별 대답도 아닌 대답이 나왔다.


“쪽지 봤어?”
나는 딴 곳을 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나... 너 좋아해.”

말이 끝나고, 한비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한비가 시선을 내리자, 나는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봤다. 확실히, 예상했던 대로였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했다. 나는 천천히 철봉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따뜻한 쇠파이프에 땀이 배자 철 냄새가 났다. 이제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날 좋아한다고? 진짜?”
나는 살짝 웃으며 되물었다.


한비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지... 진짜지. 그럼 가짜로 말하겠니?”


“아니, 그냥. 신기해서.”

나는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 대답해 줘. 너는?”
한비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정글짐 꼭대기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위쪽 쇠파이프는 조금 뜨거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꼭대기에 오를 때까지 한비는 나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 우리 한 번 만나볼래?”

나는 정글짐 꼭대기에 앉아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을 맞췄다.


한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그걸 확인하고, 생긋 웃어 보였다.






<계속, 매주 2편씩 올립니다>

(Image. laf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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