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개념 바로 잡아주기
ADHD 아이 ‘바다’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고난 뒤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 아무래도 사춘기인가 봐”
최근 감정 기복이 심해진 예비 초등 4학년 둘째 아이도 가끔 제게 말합니다.
“엄마 나 벌써 사춘기인가?”
아이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는 아이 친구의 엄마들도 요즘 부쩍 자주 말합니다.
“우리 얘 아무래도 사춘기 시작된 거 같아”
때가 됐나 봅니다.
주변에서 ‘사춘기’를 언급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사춘기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 같아요.
저조차도 사춘기라면,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사춘기 아이 때문에 속이 많이 썩는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비슷한가 봐요.
TV나 유튜브 영상에서 사춘기를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해 언급하는 걸 자주 들었는지
뭔가 부정적 감정을 가졌을 때, 부모 말이 듣기 싫을 때, 감정기복이 심할 때 사춘기를 떠올리더라고요.
사실 다 맞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유치원생일 때 읽어주었던 동화책 책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책 제목이 잘 떠오르진 않는데요.)
유치원생 여자 아이가 자기 마음이 잘 표현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짜증을 냅니다.
엄마가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며 “괜찮아. 마음이 자라느라 그러는 거야”말해줍니다.
그리고 아이 가슴에 귀를 대고 ‘마음이 자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의 변화를 이렇게 멋지게 받아주는 엄마라니요.
다음에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사춘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 번은 짚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가 “나 사춘긴가봐”라는 말을 한 어느 힘들었던 날
아이와 밤길을 걸으며
오늘은 아이가 제 말을 조금 듣겠다 싶은 느낌이 왔습니다.
아이의 말에
“화난걸 사춘기라 부르면 너는 초3부터 사춘기였게?”라고 가볍게 툭 던졌습니다.
제 말이 예상외였는지 아이가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봅니다.
“나 사춘기가 일찍 찾아왔나 봐”
“일찍 찾아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안 왔을 수도 있지”
무슨 소린가 싶어 가만히 저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있잖아. 사춘기가 겉으로는 감정기복 심하고 짜증 나고 눈물 많아지는 그런 시기로 보일 수 있어.
근데 사춘기의 진짜 모습이 있다?
사춘기가 되면 내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보게 될 거야.
그러면서 감정에 압도되기도 하고, 감정조절도 못해.
아무튼 말썽부리기만 하는 시기는 아니야.
나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는 성숙해지는 시기기도 해. “
“나 두 달 전쯤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럼 나 진짜 사춘기인가 봐”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기특하다. 사춘기로 접어들고 있구나. 성숙해지는 과정인 거야. 기특하다. 벌써 커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그런데 답은 좀 찾았어? “
“아니 모르겠던데”
“응 답 찾기 어렵지. 근데 나중에 언젠간 찾을 거야. 엄마는 40대 되어서도 비슷한 질문해. 나이 들어서도 계속하게 되는 고민이고 답 찾기는 여전히 어려워.”
엄마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게 생소했는지 아이가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근데 뭘 찾아야 하는 거야?”
”진짜 내 모습? 내가 좋아하는거?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삶의 가치나 좌우명 같은 거? “
“가치? “
“응 내가 중요시하는 거, 그게 정직이든 성실이든 사랑이든 내가 삶에서 중요시하는 것들”
“사춘기가 언제 끝나?”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사람은 중학교 때 끝나기도 하고 고등학교 가서야 끝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데 사춘기 없는 사람은 없더라 누구나 다 겪더라고. 그리고 사춘기를 겪어야 생각도 깊어지고 진짜 어른이 되더라”
아직 본격 사춘기 청소년 부모를 해보지 않았지만요.
사춘기 부모의 고단함을 짐작만 해봅니다. 얼마나 속이 아플까. 얼마나 답답할까. 속상할까. 휴.
피할 순 없는 것이기에
제가 감당 가능할 만큼의 시련만 주시도록 기도하면서도
제가 조금 더 넓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다만 아이가 사춘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워낙 짜증과 화가 많은 아이이기에
자신의 모습을 짜증을 많이 내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규정짓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성숙의 시기를 지내고 나면
의젓한 어른으로 자라날 거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일 테지만
ADHD를 갖고 있어서 성숙의 시기가 남들보다 더 혹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혹독할 수 있는 시기에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가족들도 모두 다 비슷한 고민을 하며 성숙해진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