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에게 폭행을 당한 지 1년이 넘었다. 이 사건을 겪고 깨달은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폭력은 유해하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던 그 이상으로 유해하다. 둘째, 폭력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은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셋째,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가능성을 키운다.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돌봄이 부족해서 생기는 발달 트라우마가 불안을 조절하는 능력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성인이 된 후, 폭행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는 폭력성을 키운다.
만성 우울증을 십 년 이상 앓았던 나는 누군가를 미워할만한 상황에서도 자책을 심하게 하며 내 탓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결정뿐 아니라 상황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균형적 시각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우울증 환자의 귀인 편향이다.
그러던 나에게 폭력 사건 이후 새로운 모습이 생겼다. 사소한 자극에 과도하게 화를 내고, 마치 성격이 바뀐 것처럼 하지 않던 과격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했다. 범죄 피해자로서 심리치료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스스로를 치료가 필요한 범죄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으로서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 크다. 4개월 정도 치료를 하면서 급성 증상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안정감을 회복한 것은 안정적인 지원을 해 주았던 심리치료사, 사회복지사는 물론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의 노력 덕이다. 큰 사고를 겪었지만 그만큼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심리치료가 종료되고 사건 처리도 시작된 이후, 혼자서 '그 사건'을 감당해야 하는 때였다. 충격을 주었던 과거 사건은 몸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온다. 그 충격을 단단히 감당하거나 소멸시키지 않으면 그 사건과 그 충격이 만든 에너지는 누군가를 또 상하게 한다.
트라우마 치료자로서 이런 트라우마를 겪은 것을 필연이라고 해야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폭행이 남긴 흔적은 무엇보다도 깊고 진하게 삶에 스며들더라. 알고 있는 지식과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치료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길에서 만나는 또 다른 영혼들에게도 치유의 선물을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