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국제연애 오늘부터 1일!

by 아호파파B


하루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Jalan Jalan?"(잘란 잘란?)


평소처럼 기숙사 앞에서 만나 캠퍼스를 걸었다.

얘기는 나누고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딴 곳을 향하고 있었다.

매번 지나쳤던 벤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하루카는 평소와 다른 행동에 의아한 표정으로 아호를 바라봤다.


수십 번 상상해 온 순간이었다.

로맨스 영화를 보며 받아 적은 수백 개의 문장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하지만, 정작 이 순간에 아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의 속마음뿐이었다.


"사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수없이 망설이고 삼켰던 말들. 막상 말하려니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사실은 겁이 나서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검은 아스팔트로 시선을 떨군 채 말문을 열었다.




군 제대 후 첫사랑이 찾아왔다. 순수했던 아호는 마지막 연인인 것처럼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가 아닌 외부 요인으로 이별하게 되었고, 첫사랑이 남긴 상처는 예상보다 깊었다.

그 이후 아호는 사랑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었다. 단순한 감정을 넘어선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었다. 사랑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었다. 서점을 드나들며 사랑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아호가 사랑에 대한 방향을 잡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고작 책 몇 권 읽었다고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배운 것은 있었다. 사랑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깊고 숭고한 개념이라는 것을.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수많은 대사를 옮겨 적으면서도 'love'라는 단어만은 쓰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You mean everything to me'(너는 나의 전부야)

'I care about you'(너에게 마음이 가)

'I'm grateful for having you in my life'(내 삶에 너라는 사람이 있어서 참 감사해.)


외국인 여자친구가 없다면 써볼 일 없는 영어 표현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말로도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다. 마치 작은 병에 바다를 담으려는 것처럼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전할 말은 화려한 수사로 이루어진 문장이 될 수 없었다.


땅을 향하던 시선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이게 맞는 건지 수없이 고민했어. 몇 개월 후면 각자 나라로 떠나야 한다는 걸... 우리 잘 알고 있잖아."


말 끝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계속 말해야 했다. 해야 할 말이었기에.


"신중하게, 정말 신중하게 생각했어... 잠시 만나다 헤어지는 어리석은 일은 아닐까 하고..."


"그런데 점점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 내 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 그래서 오늘 너에게 꼭 말하겠다고 다짐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랑거렸다.


"처음엔 그냥 친구로서 좋다고 생각했어.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그런데 어느 순간 매일 하루가 너로 가득 차 있더라. 잠들 때도, 깰 때도 네가 떠올랐어. 하지만 헤어질 날이 다가온다는 현실 앞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 분명, 욕심이 나기 시작한 거야. 널 이대로 놓칠 수 없다고..."


"나 혼자만 이런 마음일 수도 있어. 넌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 그래도 괜찮아. 거절당해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다만... 이 마음을 말하지 않고 떠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


하루카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도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도 걱정되고 두려울 거라 생각해. 불투명한 미래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렇지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믿음이 들었어. 어떤 상황이든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그것만큼은 확실해. 그래서 너에게 말하는 거야."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호를 바라보았다. 석양이 그녀의 어깨너머로 흘러들어와 부드럽게 우리를 감쌌다.


"I don't know how to say this, Do you think... I could be your boyfriend?"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너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까?)


말을 마치자 세상이 조용해졌다. 하루카는 잠시 아호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천천히 내 손을 잡았다.


어떤 영화 장면보다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말이 아닌, 따뜻한 눈빛과 손길에 담겨 있었다.


이로서...

한국 남자 아호와 일본 여자 하루카는 오늘부터 1일이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7화고백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