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새벽 1시까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새벽까지 그렇게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전날인지 다음 날인지 28분 동안 통화한 것에 대해...”
“네. 이틀 후입니다.”
“그 통화내용을 살펴보면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6-7분가량의 대화 내용이 있잖아요. 아까 편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편집이라면 중간에 짜르고 다시 넣고...”
“아니요, 아니요. 전체 내용 중의 일부만이라는 거지요.”
“그 일부 내용만 보더라도, 지금까지 하신 말씀과는 완전히 반대예요.”
“완전히 반대라는 것은 어떤 말씀이지요?
“예를 들어서 머리가 알게 되면 나중에 나에게 말해라. 아니 아니...”
뭔가 얘기하고 싶기는 한데 매끈한 한국어로 정리해서 그가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그의 한국어 수준이 턱없이 부족해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저급한 수준임을 그 자리에 있는 정상적인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제가 그냥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 그 내용이...”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하고, 공격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서 설명하겠다는 박 교수의 태도에 빈정이 상했는지 그가 다시 말을 막았다.
“아니, 말씀하신 것과 내용이 완전히 달라요.”
“그 내용을 제가 얘기할 테니까 틀린 부분이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얘기를 해주세요. 그 학생이 계속 그렇게 얘기합니다. ‘저는 머리가 아직 인정을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갔어도 머리가 가지 않으면 안 간 겁니다.’라는 얘기를 계속합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마음이 알고 있다면 왜 자꾸 무시하느냐?’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머리가 우선이냐 마음이 우선이냐인 건데... 만약에 아까 선생님이 하신 말씀대로 생각한다면, 학생이 만약 마음이있었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자기 나름대로는 논리적으로 심각한 오류를 발견한 냥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며 그가 으쓱거렸다. 그는 일단 그 대화의 상황 자체를 제대로 독해하지 도 못하는 듯했다.
“이해를 못하셨군요.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다시 설명을 드릴게요. 전날 이미 9시서부터...”
“아니, 아까 채 선생님께서 드린 질문도 피하시고 다른 말씀만 하시는 것 같던데...”
박 교수가 뭔가 설명을 하려는 태도가 자신에게 핵심을 찔려서 당황하고 거짓말을 하려 한다는 느낌을 만들고 싶었는지 그가 말을 또 막았다. 박 교수의 반응이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어떤 질문을 제가 피했죠? 왜 제가?”
“지금 만졌느냐 안 만졌느냐 하는 질문도 계속 피하고 다른 설명을 계속하고 계시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주세요. 제가 어떤 질문을 피했다는 말씀이시죠?”
다소 박 교수의 반응이 날카로워지자 뚱보 한국인 교수가 마치 중재자인 양 비실거리는 미소를 띠며 나섰다.
“선생님 어차피 여기 조사보고서에 다 성립된다고 쓰여 있으니까요. 여기서 굳이 논쟁을 하실 필요가 없으실 것 같습니다.”
‘조사보고서?’
박 교수는 그의 썩소보다는 그들이 손에 들며 연신 아까부터뒤적거리는 똑같아 보이는 문건에 시선이 쏠렸다.
“아니, 아까 말씀하신 것과 여기 대화가 영 다르게 나와 있으니까요.”
“아니 그게 뭐라는 말인지...”
박 교수가 반박하려 하자 이번에는 한국인 교수가 아예 전면에 나서며 말을 막았다.
“여기서 제가 하나 보충해서 질문을 드릴게요. 성평등 조사위원회에서 많은 학생들의 주장도 접촉이 있었다는 거에 대해서는 인정을 다 하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했어요. 머리를 쓰다듬었다는 거지...”
“지금 그렇게 말했잖아요.”
“머리를 쓰다듬었다는 거지, 접촉 부위도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거 하고 성평등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나온 학생들의 주장하고 달라요. 그런데 지금 이거를, 우리가 지금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려는 건 아니고, 다만 선생님 두 분이 그걸 여기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 얘기는 피해 갔다고 느끼는 거예요. 근데 안 했다는 거 아니에요. 그런 부위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네. 엉덩이를 치거나 옆구리를 찌르거나 하는 행동은...”
“오케이! 그 얘기는 여기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아직도 자신이 멋진 한국어로 폐를 찌른 셜록 홈즈쯤이라도 된다고 여기는 것처럼 대만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거기 아까 설명하신 내용 중에서 교수로서 논문 표절하면 안 된다는 게 있었죠?”
“네.”
“근데 교수님이 학생이 교수님을 모함했다고 이런 말씀 하셨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학생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선생님이 주신 과제 중에 선생님이 쓰신 소셜내용이 똑같아요.”
“소셜요? 무슨 소셜이요?”
“소설! 선생님이 직접 쓰신 단편소설 있잖아요.”
한국인 교수가 또 나서면서 말을 바로 잡았다.
“나눠서 학생들에게 번역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그런 걸 시킨 적도 없지만 그게 논문 표절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죠?”
“그것을 나중에 대만에서 출판할 거라면 자기 돈을 받아야 한다. 자기들이 나누어서 번역한 거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표절이라는 거지요. 그거는 선생님의 책임이다. 논문 표절했다는 말이 아니구요.”
“제가 황관에 보낸 원고는요. 제가 영어로 번역한 영어로 보낸 원고였구요. 중국어로 제가 이미 번역한 원고였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대만에서 출판을 할 거라면 번체자로 해야 하잖아요. 아까 잘라서 뭐 학생들을 시켰다고 했잖아요?”
“응. 네.”
“다시 정확하게 말씀드리지만 제 소설을 잘라서 학생들에게 번역을 시킨 적도 없지만 학부생들이 한국 소설을 번역할 수준이나 된다고 지금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근데 학생들이 그렇게 느꼈는데요?”
“그건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은 말인데요. 정 그러면 그건 확인해보면 되잖아요. 증거가 있으니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허허허!”
“지금 선생님의 말씀처럼 학생들에게 나눠서 번역을 하도록 시켰다면 그들이 결과물을 냈다는 거나 작업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거 아닙니까? 황관 출판사에도 연락을 해서 번체자로 이런 작업된 것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팩트를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 아닙니까?”
박교수의 지적에 당황한 것인지 빨라진 한국말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한 것인지 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멀뚱거리기만 했다.
그가 무슨 말을 듣고 그러는 것인지 '황관 출판사'라는 말에 그의 촌스럽기 그지없던 처가 떠올랐다. 한국인이면서 대만에 유학 와서 외교대에서 빌붙어 중문과 연구소의 교수직을 꿰찬 여자였다. 박 교수는 부임하고 한 달이 넘도록 교수들과의 인사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는 학과장의 행태에 넌더리가 나서 출구를 찾은 적이 있었다. 외교대에 있는 한국인 교수를 찾았다.
어렵게 알아낸 그녀의 이름은 딱 보기에도 조선족 같았다. 그녀의 연구실로 전화를 걸자 정말 어눌한 북한말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이상한 억양을 구사하는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에게 새로 부임한 한국인 교수라는 신분을 밝히고 인사차 방문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고 처음 그녀이자 마지막으로 그녀의 연구실을 찾았었다.
한국어학과가 학과장부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말을 하고 도움을 청하려는데 그녀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는 것을 포착했다. 박 교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은 부산 출신이고, 대만에 온 지 오래되었으면 한국과 인연을 끊고 지낸 지 오래되어 이미 한국의 통장도 없어서 한국에서 뭔가 돈을 받기 위해서도 참 어렵다는 푸념을 할 때까지도.
그녀를 만나고 와서 한참이 지난 어느 날 학생들을 통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한국어는 고사하고 한자어의 한국어 독음을 제대로 못 붙이는 무능력한 교수가 있는데 그의 아내가 한국인이라고, 그런데 그녀도 거의 대만 사람이 다 되어 한국어로 소통하지 않고 그 집 식구들끼리 말할 때도 중국어로만 말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차 싶었다.
당시 한국 작품을 무한 복제하듯 출판하던 대만 출판계의 사정을 듣게 된 박 교수가 자신의 단편 소설집을 영어와 중국어로 써서 대만에서 출판할 계획을 말했더니, 그녀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반문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중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중국어로 소설을 다 쓰죠? 게다가 그렇게 논문까지 쓰시면서 어떻게 소설까지... 대단하신 분이군요."
그러면서 그녀가 소개해주겠다고 언급했던 출판사가 바로 황관 출판사였던 것이다.
이 무식한 부부는, 아니, 어쩌면 이 무식한 대만 남자는 부인에게 대강 들었던 내용을 자기 본위대로 짜깁기하고 달려들었다가 사실 확인을 하자는 박 교수의 모습에 개망신을 당할 것 같으니 얼른 꼬리를 만 것이었다.
그의 아내가 자신에게 앙심을 품을 이유가 뭐가 있었는지 잠시 생각하던 박 교수는 어렵지 않게 그 유일한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열흘 전, 그녀가 속해 있던 중문학 연구소에서 일본과 대만과 한국의 소설가들을 초청하여 이른바 3국 소설가와의 대화라는 비교문학 세미나를 연 것이었다. 한국에서 평론가이자 교수인 사람과 문예창작과에 적을 둔 반쪽짜리 교수 겸 소설가가 두 사람 왔었고 마찬가지로 일본인 퇴물 소설가와 평론하는 교수 등 그쪽도 세 명이 참석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그녀는 박 교수를 행사에 초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S대 동문이던 평론가 교수를 통해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박 교수는 행사 당일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행사의 주관 스텝이면서도 그녀는 내내 박 교수를 백안시하려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문제는 의외의 구석에서 터졌다.
참석한 김에 발표자로 참석한 일본 소설자와 한국 소설가의 작품을 읽고 온 박 교수가 질문을 하면서 그 여자 한국인 교수는 폭탄을 맞았다.
발표 후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소설가에게는 일본어로, 한국인 소설가들에게는 한국어로, 대만 소설가들에게는 중국어로 질문하며 자신을 외교대 한국인 교수라고 박 교수가 신분을 밝힌 것이었다.
뒤풀이장으로 이동했던 자리에서 중문학 연구소의 좌장이자 대만 정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그녀의 지도교수였던 원로가, 박 교수에게 왜 진작 나타나지 않았느냐고 찬사를 보내며 술을 권한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일본인 교수도 일본인이 참석한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그 말은 그대로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좌중에 통역이 되어 전해졌다.
박 교수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굉장히 쾌한 얼굴로 중간에 사라지는 무례를 감수하면서까지 백안시를 유지했다.
그리고 이 일이 터진 것이었다.
당시 참석했던 한국인 소설가들은 감히 자신들이 교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겸양을 보였지만 세미나 다음날 초청의 대가로 이루어진 타이난과 타이중 여행에 박 교수를 사비로라도 모시고 싶다는 남자 소설가를 흘겨보며 불쾌해하던 여자 소설가의 심사와 비슷한 것이려니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여자 한국인 교수는 한국의 퇴물 소설가들에게 가까운 대만 여행비만을 대준다는 조건으로 퇴물 소설가들을 불러 자신이 마치 한국의 화려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시늉으로 그 자리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던 터였다.
그랬던 그녀의 남편이라는 작자가 지금 박 교수의 눈앞에서 멀뚱거리는 눈으로 뭐든 창피를 주고 싶어서 흰자위를 휘번떡 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뭐 사실을 확인하든 아니든 그건 그렇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작년에 말이죠. 화상 면접할 때 그 어디였더라 하여간거기교수 재직하신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교수로 재직하셨어요?”
“네.”
“한국문학과 교수?”
“아니요. 제가 있던 대학에는 한국문학과라는 학과가 있던 대학이없었습니다. 제대로 확인하고 다시 물어봐주시겠어요?”
계속된 헛발질에 팩트 폭행을 당한 대만 교수는 황급히 말을 갈무리하며 뒤로 허리를 젖혀 앉았다.
“알았어요. 이건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그런데 할 말들 다 한 거예요?”
자신의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이 억울했던지 그는, 괜스레 멀뚱히 시간을 때우던 다른 교수들을 보며 왜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지를 다시 확인했다.
“아, 박 교수님, 아직 안 하셨는데요.”
본격적인 질문이라고 할 게 있으면 해 보라고 박 교수가 직접 뚱보 한국인 교수를 응시하며 물었다.
“저는 특별히 할 말 없습니다.”
‘여태 사이사이 끼어든 건 다 뭐였냐?’
마무리를 하려는 것처럼 다시 명예교수가 특유의 느글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침통하면서도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젊으신 교수를 양성하기가 대단히 어렵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만약 어떤 교수를 짜르려면 한 순간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이 사실을 밝히고 안 하신 일은 안 하셨다고, 하신 일이 있다면 그냥 승인해주시고 그렇게 자기 조금 이 계기를 두고, 계기로 삼아서 한편으로 반성하면서 또 한편으로 또 자기의 권익을 위해 답변하고,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고 정말 훌륭한 젊으신 교수를 양성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경력을 가지신 분이 저희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다른 교수들과 잘 어울리시고 했으면 얼마나 좋겠다고 하는 생각인데 오늘 이런 일이 생겨났으니까 정말 심정이 아주 침통합니다. 제 마음속 깊은 소감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부임 후 공식적인 그와의 만남은 처음 대면이었지만 다른 교수들을 포함해서 그들의 학문적인 수준과 인격의 정도를 확실하게 가늠하는 자리임에는 틀림없다고 박 교수는 느끼고 있었다.
“보충하실 거 있습니까?”
마지막에 한 마디는 한국어로 학과장이 물었다.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떠나셔도 되구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그렇게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학과 교평회 1차 회의는 끝이 났다. 다만, 이 학과 회의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어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어 또다시 학과 회의를 하게 될 거라고는 박 교수를 포함한 그 자리를 꾸민 그들 중에 단 한 명도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