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 마르탱 (Rémy Martin)은 헤네시 (Hennessy)와 마르텔 (Martell) 즉 마르텔 등과 함께 세계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높은 브랜드 중 하나이다. 회사는 1724년에 창립을 하여 마르텔에 이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1738년에 레미 마르탱 꼬냑의 우수한 품질을 높이 평가한 루이 15세가 레미 마르탱에게만 포도 재배 면적을 확장할 수 있는 예외적 특권을 주었다. 후에 회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레미 마르탱 1738 어코드 로열(Remy Martin 1738 Accord Royal)’을 출시했다.
1830년에 레미 마르탱 그랑드 샹파뉴 코냑(Remy Martin Grande Champagne Cognac)을, 1848년에 레미 마르탱 핀 샹파뉴 코냑(Remy Martin Fine Champagne Cognac)을 출시했다. 1870년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Centaur)를 라벨로 채택했고 1874년부터 제품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켄타우로스를 채택한 이유는 파울 레미 마르탱의 별자리가 궁수자리였고, 켄타우로스가 인간과 자연의 동화를 통해 최고의 맛을 만들겠다는 회사의 방침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 주었기 때문이다. 1898년에는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향이 뛰어난 쿠프 핀 샹파뉴(Coupe Fine Champagne)를 출시했다.
쿠프 핀 샹파뉴(Coupe Fine Champagne)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레미 마르탱이 꼬냑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24년 안드레 르노 (Andre Renaud)가 이 회사를 인수한 후의 일이다. 그는 그랑드 상파뉴 (Grande Champagne)에 넓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는 농장주인 프라팡 (Frapin) 가의 딸인 마리 프라팡 (Marie Frapin)와 결혼함으로써 처갓집인 프라팡 가에서 양질의 원료 등을 구입할 수 있었고, 핀느 샹파뉴 규격의 V.S.O.P.급 꼬냑을 양산하여 회사 기반도 확실히 다질 수 있었다.
이때 프라팡 가는 1210년 이래 꼬냑 지방에 살고 있으며, 과거 500년간 그랑드 샹파뉴 지구의 중심에 있는 퐁피노 성 (Chateau Fontpinot)에서 포도 재배와 꼬냑 제조를 해온 명문가이기도 했다. 이후 이 회사는 그랜드 상파뉴와 프티 상파뉴 (Petite Champagne) 두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원주를 사용하도록 방침을 정했으며, 자기네 회사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에 ‘그랜드 상파뉴’ 또는 ‘파인 상파뉴’ 즉 ‘핀느 상파뉴’라는 라벨을 붙이도록 하였다.
그래서, 1927년에는 더욱 차별화된 레미 마르탱 핀 샹파뉴 V.S.O.P.를 출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38년에 프랑스 정부는 그랑드 샹파뉴(Grande Champagne) 지역과 쁘띠뜨 샹파뉴(Petite 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되는 브랜디를 50% 이상 섞은 제품만을 코냑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했으며 ‘아펠라시옹 도리진 콩트롤레(Appelation d'Origine Controlee:원산지 통제 명칭)’을 통해서 극상품 코냑의 품질을 인증했다.
이후 회사에서는 1948년부터 이 두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만을 100%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1965년에 사장으로 취임한 앙드레 에리아르 두브레이유(Andre Heriard Dubreuil)는 이 두 지역의 포도 재배자와 독점 파트너 계약을 맺었다. 1972년에 V.S.O.P. 다크 프로스트(dark frost)병이 출시되어 판매량이 급상승했으며, 1981년에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병을 사용한 XO 엑설런스(XO Excellence)가 출시되었다. 1937년에 미국에, 1968년에 홍콩에 수출하면서 전 세계로 영역을 넓혀갔으며 유럽 여러 나라의 황실 공식주로 사용되었다.
현재 레미 마르탱은 V.S.O.P. 급 이상의 고급 코냑만을 제조하며 프랑스 정부가 최고 품질의 포도 생산지로 인정한 그랑드 샹파뉴 지역의 포도 증류액이 50% 이상 섞여 있는 '핀 샹파뉴'가 전체 생산량의 95% 이상을 차지한다.
현재 1991년에 설립된 레미 쿠앵트로 그룹(Remy Cointreau Group)에 소속되어 있으며 꼬냑으로만이 아닌, 안톤 버그 초콜릿으로도 출시되었다.
레미 마르탱 사는 앞에서 설명한 2지구에서 포도와 와인을 수집한다. 그것을 침전물을 빼지 않고 소형 증류기로 증류한다. 숙성용 통도 리무장의 화이트 오크로 만든 것만을 사용하고 있다. 증류 후의 새 술은 10개월에서 1년 정도 새 통으로 숙성시킨다. 이 때 숙성통의 향과 탄닌의 풍미가 붙는다. 그 후 1년마다 블렌드를 반복해서 5년 이상 숙성시킨 것이 VSOP이다. 그리고 최종 블렌드 후 오래된 통으로 옮겨서 천천히 재 숙성시킨 것이 일본용에 한정된 스페리올. 포트 와인과 바닐라의 향이 난다.
• 레미 마르탱 1738 어코드 로열 (Rémy Martin 1738 Accord Royal)
• 레미 마르탱 클럽 (Rémy Martin CLUB)
• 레미 마르탱 XO (Rémy Martin XO)
• 레미 마르탱 카르트 블랑슈 아 바티스트 루아조 (Rémy Martin Carte Blanche à Baptiste Loiseau)
• 레미 마르탱 상타우르 드 디아망 (Rémy Martin Centaure De Diamant)
• 레미 마르탱 셀러 마스터 셀렉션 (Rémy Martin Cellar Master Selection)
• 레미 마르탱 루이 13세(Rémy Martin Louis XIII)
루이 13세는 꼬냑 중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때에 오랫동안 꼬냑을 생산해 온 레미 마르탱 가문이 1724년 루이 13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최고급 술에 루이 13세의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했는데 이 당시 루이 13세는 ‘꼬냑의 수호자’라고 불릴 만큼 꼬냑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래서 이때 ‘루이 13세’는 ‘왕의 꼬냑 (The Cognac of the King)’, ‘꼬냑의 왕(The King of Cognacs)’으로 불렸다. 루이 13세의 원액은 최소 100년 동안 숙성된 원액을 블렌딩 하여 출시가 된다. 중요한 것은 단지 원액의 숙성기간만이 긴 것에서 그치지 않고, 루이 13세 한 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3대에 걸친 셀라 마스터(Cellar Master)들의 최고의 맛과 품질을 위한 인내와 열정 그리고 노력이 요구가 된다.
100년이 넘게 걸리는 숙성 기간 때문에 처음 오드비를 혼합해 오크통에 넣은 1대 셀라 마스터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지 못한 채 생을 마치게 된다. 최고의 맛과 품질을 위한 인내와 열정 그리고 장인들의 노력이 100년 넘게 이어지면서 루이 13세를 더욱 특별하고 귀한 꼬냑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최고급 꼬냑 원료는 레미 마르탱에서 루이 13세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데 100년의 숙성 기간 중 그 맛과 향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최상급의 포도가 필요하다. 루이 13세는 프랑스 정부가 최고의 꼬냑 생산지로 지정한 그랜드 샴페인산 포도만을 사용한다. 여기에는 창립자 레미 마르탱 1세의 경영 철학이 배어있다.
‘품질은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는 꼬냑의 맛과 품질을 최우선시하여 1720년부터 회사 창립 이후로 꼬냑 지방에서 가장 우수한 땅만을 매입했다. 그런 그의 경영 철학과 선견 지명 덕분에 현재 레미 마르탱은 그랜드 샴페인에서 생산되는 포도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창립자 레미 마르탱 1세가 최고의 꼬냑을 만들어낸 ‘장인’이었다면 루이 13세를 세계 최고의 꼬냑으로 올려놓은 폴-에밀 레미 마르탱 (Paul-Emile Remy Martin)은 ‘사업가’였다. 그는 루이 13세를 유럽 왕실의 귀빈에게만 접대하는 귀한 술로 인식시키며 19세기 말부터는 미국, 일본, 중국, 홍콩 등 전 세계로 수출을 시작했다.
꼬냑의 수호자로 불린 왕 루이 13세를 따온 이름답게 레미 마르탱 루이 13세는 전 세계 국왕들에게 사랑받으며 성장했고 지금까지도 ‘꼬냑의 왕’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세월이 변하더라도 품질을 위한 원칙만은 변함없어야 한다는 창립자의 철학에 따라 280년간 전통 제조 방식을 고수해온 루이 13세는 ‘100년의 지혜와 리더십’이다.
레미 마르탱 루이 13세는 1929년 유럽 최고의 관광 열차 오리엔트 익스트레스 (Orient Express)의 VIP 승객에게 제공되고, 1935년 대서양을 횡단한 호화 여객선 노르망디 호 (Normandie)의 처녀항해와 1982년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Concorde)의 첫 운항을 함께 하는 짜릿함을 경험한 역사적인 술이기도 하다.
이 술을 애호했던 인물들로는 조지 6세 (George VI),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전 영국 총리 , 샤를 드골 (Charles De Gaulle) 전 프랑스 대통령 , 크리스찬 디올 (Christian Dior) 그리고 엘튼 존 (Elton Joh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