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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14. 2022

럼주, 좋아하시나요?

럼(Rum)의 세계 -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906


                          럼(Rum)

사탕수수즙이나 당밀 등의 제당 공정 부산물을 발효·증류시켜 만든 증류주. 달콤한 냄새와 특유의 맛이 있고, 알코올분은 44∼45%, 엑스트랙트분은 0.2∼0.8%이다.


왜 럼은 싸구려 술의 대명사로 전락하였나?

한때 진이나 보드카처럼 서양을 대표하는 서민들이 마시는 가장 싸면서도 보편적인 주류였고, 태생이 태생이다 보니 아직도 싸구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은 칵테일 베이스용 저가 화이트 럼이 아니면 고급 다크 럼들로 중간을 찾아보기 힘든 술이다.


해적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만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 이 술이 갖는 서민적이면서도 뭔가 싸구려스러운 이미지는 뱃사람들, 특히 상선 사관이나 해군 장교 같은 이들이 아니라 하급 선원이나 수병, 해적 같은 하류 계층들이 주 소비층으로 인식되면서 생기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배를 타야만 하는 뱃사람에 대한 처우나 사회적 지위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럼주가 소비되던 그 옛날의 유럽에서는 더더욱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3D 업종 중에서도 대표적인 직종이었다.


럼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이 술의 제조에 대한 역사적 시발점은 서인도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한 기원은 문헌에 전하고 있지 않으나 카리브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확대와 함께 그 부산물을 이용한 주조법이 확산되는 17세기 초 바베이도스 섬에 증류 기술을 가진 영국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금까지는 가장 유력한 정설이다. 그 외의 설로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증류법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이 술은 당시 삼각무역의 중요한 물품 중 하나였으며 ‘Rum’이라는 이름도 당시 원주민들이 이 독한 술을 마시고는 취해서 흥분(Rumbulion)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외에 당류 전반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인 '사카룸(saccarum)'의 끝 세 글자를 따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럼(Rum)을 ‘럼주’라고 부르면 ‘역전앞’처럼 겹말이라구요!

이 글의 타이틀에 쓴 것처럼 한국에서는 처음 이 술이 소개되면서 ‘럼주(-酒)’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럼’ 자체가 ‘사탕수수 술’이라는 의미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이므로 ‘럼주’라고 표기하면 역‘전(前)앞’나 ‘올리브 오일유’처럼 겹말이 된다.


사실 이렇게 오해가 된 것도 럼이 한국에서 대중성이나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酒)를 붙여 술이라는 명확성을 부여하는 것이 의사소통에 유리하므로 ‘럼주’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다 럼은 뱃사람들의 술이 되었나요?!

상대적으로 당시에 출시되던 술에 비해 값이 가장 저렴했고, 강렬한 술이라서, 험난한 바다를 돌아다니는 선원이 많이 찾았다. 게다가 18세기 범선 항해에서는 필수 상비품에 속했다. 앞에서 술에 대한 개론을 공부할 때 살펴보았던 것처럼 항해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물이 썩어 버리기 때문에 마실 음료로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술을 대체품으로 준비했었는데, 원래는 맥주, 브랜디, 와인, 위스키 등 다양한 종류를 고르게 비축했다고 한다.


그러나 맥주와 와인은 값이 저렴한 반면에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오래가지 못했고 반면에 브랜디와 위스키는 오래가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양에 비해 너무 비싼 제품에 속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값이 싼 독주였던 럼이 자연스럽게 배에 실을 술로는 가장 적격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루하고 괴로운 항해에서 선원들은 빨리 취하고 싶은 용도로 독한 술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러다 보니 선원이나 해적의 상징처럼 굳어졌다.


공식적으로 해군에게 지급된 보급품이었다구요?!

해군 수병들에게 맨 처음 공식적인 보급품으로 럼을 지급했던 것은 영국 해군이었다. 초기에는 럼을 그대로 보급했다가 너무 독해서 수병들이 쉽게 취해버리고 그로 인해 여러 문제가 야기되자, 여기에 적당량의 물과 설탕, 라임 혹은 레몬주스를 섞어 마시기도 쉬우면서 알코올 도수를 낮춰 보급했다. 여기서 유래한 물에 술 탄 칵테일이 바로 ‘그로그(Grog)’였다. 물을 섞어 희석시키는 양은 처음에는 원액의 네 배였지만 나중에는 다섯 배까지도 늘려갔다.

물을 썩지 않게 하기 위해 혹은 맛이 간 물을 그나마 먹을만하게 만들려고 술 타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사실 그로그에 라임 또는 레몬을 넣은 이유는 괴혈병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그 당시 영국 선원들의 인식이 남자라면 독한 술과 고기를 먹지 쩨쩨하게 라임이나 레몬 따위는 안 먹는다는 이상한 겉멋이 주류로 유행하는 바람에 티 나지 않게 술에 타 줬다는 설도 있다. 덕분에 현대에 들어오면서 럼에 레몬이나 라임을 넣어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이 즈음 생기게 된 것이다.


한편, 자우어크라우트 등을 먹어 비타민C를 보충했던 배를 타지 않으며 뱃일을 도왔던 인원들 중에서도, 하사관과 준사관에게는 그로그가 아닌 순수한 럼이 지급되는 특혜가 있어, 이들 중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은 지급받았던 럼을 모아뒀다 외부에 내다 팔아 부수입을 쏠쏠하게 챙기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한다.


왜 진은 럼을 대체하지 못했는가?

참고로 그 당시 값싸고 도수가 높은 증류주 중에는 진도 있었지만, 당시 영국 내에서 진에 만취한 하층민 알코올 중독자들이 사회적으로 큰 문젯거리로 다뤄질 정도가 되어 ‘진을 마시면 인생이 파탄 난다’는 이상한 사회적 인식이 널리 퍼져서 군 당국이 진 자체를 보급하려고 하지 않았다. 거기다 무엇보다 그 당시의 진은 럼보다도 맛이 상당히 떨어졌다.


세월이 흘러 나중에는 진 역시 해군 내 보급품이 되긴 했지만. 참고로 해군용 진은 일반 진에 비해 알코올분이 상당히 높은 차별성 있는 제품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일반적인 진과 구분하여 ‘Navy Strength’라고 부른다.


넬슨 제독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럼에 담갔었다구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전사한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유해를 영국으로 운구하여 돌아올 때, 부패를 막기 위해 럼이 들어있는 통에 시신을 담아서 돌아왔다. 이때 피가 그 통에 온통 흘러 번져 럼의 색이 붉게 되었는데, 이걸 ‘블러디 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에 붉은 빛을 띠는 럼을 그때의 충격을 고스란히 전해 ‘블러디 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화 때문에 럼의 별명으로 아예 ‘넬슨의 피(Nelson's Blood)’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괴담을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던 호사가들은 “넬슨 제독의 시신을 담았던 럼은 알코올에 목마른 수병들이 조금씩 훔쳐 마셨고. 그래서 영국에 도착하자 정작 통에 럼은 없고 시체만 있었다.”라는 괴담을 퍼트리기도 했었다. 사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80년대에 출판된 양주 안내서에까지 버젓이 등장했던 괴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시신을 싣고 귀환하는 동안 제독의 시신을 담은 통은 사령관 침실에 안치되어 아예 문이 잠겨 있었고, 문 옆에 무장한 해병이 24시간 경비를 섰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말 그대로 도시전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임이 밝혀졌다.


세계대전의 연합군들에게 공식 술이 럼이었다구요?!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영국군이 미군들과 물물 교환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품목이 바로 이 럼이다. 당시 미군은 기본적으로 음주와 술의 소지를 금지했기 때문에 휴가 장소가 아니면 술 마시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미 해군의 경우엔 육군처럼 어디서 몰래 구해오거나 얻어마실 데도 만만치 않으니 럼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영국 해군을 발견하면 각종 보급품과 교환해서 럼을 얻으려 혈안이 되었고, 나중에 영국 해군에서 몰래하는 술 반입을 군 상층부가 더욱 철저하게 통제하자 이번에는 아예 영국 해군함을 방문해서 진탕 마시고 돌아오는 사례들이 속출했다.


영국 해군이 공식적인 술 배급을 중단한 것은 1970년대가 되어서부터였기 때문에 세계대전 이후에도 술 관련으로 미 해군과 사연들이 많았다.


1970년 영국 해군이 술 배급을 공식 중단할 때는 이걸 나름대로 기념한답시고 수병들은 검은 완장을 차고, 술통(Tot)을 바다에 던져서 장례식을 연상하듯 그 슬픔(?)을 기념하며 해당 날짜(7월 31일)를 ‘Black Tot Day’라고 명명했다.

럼은 영국 해군의 전유물이 아니라 육군에게도 지급되었다구요?!

레드코트로 유명한 전열 보병 시대의 영국 육군에게도 럼은 중요한 지급품 중 하나였다. 해군처럼 물을 대신하거나 추위 또는 더위를 잊게 하는 용도, 마취제 등의 의약품 목적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투의 돌격 직전에 병사들을 두려움을 잊게 하고 더욱 거칠게 만들어 겁쟁이도 잘 싸우게 만드는 만용을 유발하는 특효약(?)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고 기록에 전한다.


이 전통은 제1차 세계 대전 때도 이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의 전통처럼 남아있어 영국군은 전쟁터에서 마시는 술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의 군대에 비해 꽤나 관대한 편이다. 취해서 임무를 수행 못하는 경우나 또는 비행 중인 전투기 조종사처럼 음주를 금지한 경우엔 당연히 군법에 의해 무겁게 처벌하지만, 적당히 음용하는 정도에 대해서는 그리 가혹하게 규제하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2차 대전 끝난 다음에도 도수가 낮은 술은 주둔지가 아닌 보급 식량에 넣어 지급하기도 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항생제나 소독 개념이 없던 시기에, 상처를 치료하는 데 경험적으로 술(이 포함하고 있는 알코올)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군의관들이 소독약으로 쓰기도 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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