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아, 언능 가자. 좀 있으면 더워서 일 못한다."
나는 엄마 따라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논으로 향했다.
아빠는 경운기 뒷칸에 희석시킨 농약을 가득 담은
커다란 빨간 고무 다라를 싣고 이미 출발했다.
경운기를 논 입구에 멈춰 세웠지만 시동을 끄지는 않았다.
시동을 끄고서는 농약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탈탈탈텽텽텽 울려퍼지는 시끄러운 경운기 소리에
귀가 멍해지고 진한 농약 냄새가 코를 찌르니 머리가 어지럽다.
마스크를 하고 장화를 신은 아빠가 농약 줄을 어깨에 들처메고 논 끝을 향해 앞장섰다.
엄마도 농약 줄을 어깨에 멘채 아빠 뒤를 따르고 나는
경운기 근처에서 농약 줄이 꼬이거나 돌부리에 걸리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빠는 논 가장자리부터 시작하여 논 사이사이를 오가며
농약을 뿌렸고 뿜어져 나오는 농약바람에 초록 벼들이
나부끼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어%^/:-%~~어??!!"
경운기 소리 때문에 아빠의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엄마도 무슨 말인지 몰라 넋을 놓고 바라보자 아빠는 줄을 당기는 손짓을 하고 엄마는 아빠의 발걸음을 따라 보조를 맞춰가며 농약 줄을 끌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제자리에서 멍하니 이 상황을 바라만 보는 것은 아주 지루한 일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지만 뒷일이 걱정되니 기다릴 수밖에...
빨간 고무 다라를 가득 채웠던 농약이 논 위에 다 뿌려지고
그 바닥이 드러나면서 오늘의 농약 치기도 끝이 났다.
오늘의 작업을 앞으로 몇 번은 더 해야 병충해없는
건강하고 굵은 나락(벼)이 여물것이다.
단지 그 몇 번이 개학 이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늦은 오후가 되자 엄마는 또 나를 불렀다.
"지선아 콩밭에 가자. 콩이 얼마나 컸나 보고 옥수수도 따오자"
거짓말이다. 엄마는 콩이 얼마나 컸나 보러 가자고 했지만 사실은 잡초를 뽑으러 가는 것이다.
지난번에도 똑같은 말로 날 속였다.
물론 콩이 얼마나 컸는지 보긴 보았지.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하지만 엄마 혼자 가면 힘들까봐 진규와 나는 또 따라 나섰다.
엄마는 콩밭에 난 잡초를 부지런히 뽑고서는 나와 진규를 시켜 밭 한쪽으로 치우게 했다.
"아이고 진규가 일을 잘하네."
엄마의 칭찬 한마디에 질투의 화신이 된 나는 한아름 가득 잡초를 안고 엄마 곁으로 갔다.
"엄마. 난 이만큼이나 갖고 왔다. 엄청 많지?"
내가 진규보다 훨씬 잘한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그래. 지선이도 일을 참 잘하지"
이번에는 진규가 한아름 가득 안고서는 엄마를 향해 달려왔다.
"엄마!! 엄마!! 이것 봐. 악!"
성격이 급한 진규가 빨리 달려오다 돌부리에 걸려 그대로 앞으로 철퍼덕 넘어졌다.
"넘어졌데요~~ 넘어졌데요~~" 쌤통이다.
"웃기고 있네. 너도 넘어져라."
한 살 어린 진규는 나에게 너라고 할 때가 많은데 지금이
그 순간이다.
"엄마!! 진규가 나보고 너라고 그랬어!!"
"내가 언제?? 내가 언제?? 메롱메롱."
"엄마! 저 써글놈이 나 놀려!"
"느들 그렇게 싸우고 까불어서는 밤이 되도 다 못하겄다!"
"아 왜 맨날 우리 일 시켜?? 밭일하면 손 망가진다고
할머니 밭에는 못 따라가게 하면서 엄마는 왜 시켜?"
"잡초 갖다 버린다고 손 안 망가져. 언능해라."
더 까불며 대들었다가는 엄마한테 등짝을 맞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그만 입 다물고 일해야 하는데 진짜로 하기가 싫다.
"진규야! 이거 니가 갖다 버려야지. 왜 안 하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갖다 버리겠다는 잡초를 이제는 서로 하기 싫어 손도 대지 않고 발로 퉁퉁 차며 굴렸다.
"참말로 속 터져 죽겄네. 손으로 야무지게 안 들고 가??!!"
우리를 야단치는 엄마의 고성이 여러 번 울려 퍼지고서야 잡초뽑기도 끝이 났다.
"아이고 내 새끼들. 꼬막손으로 일하느라 고생했다.
이제 집에 가자. 옥수수 맛나게 쪄줄게"
옥수수를 여러 개 꺾은 엄마는 아까와는 달리 수고했다는 말로 우리를 뿌듯하게 했다.
"지선아, 내일은 깨밭에 깨가 얼마나 컸나 보러 갈까?"
내일은 깨밭 일을 우리에게 시킬 모양이다.
"싫어!! 싫어!! 깨 하나도 안 궁금해. 나 안 갈거야.
진규만 데리고 가"
"나도 안 궁금해! 누나 안 가면 나도 안가!!"
이번엔 절대 안 속아. 내일은 절대 안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