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다식 손님은 70대 초반으로
평생을 전국으로 돌아다니며 일하다
여기 오신지 몇 년 안되었다고 합니다.
말투는 단어 사용이 표준어에 가까운데
말끝을 늘어지게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면
내가 말이야 할 때
빠르고 짧게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말이야~~~~
이렇게 말끝을 길게 하시는데
특유의 어투가 있습니다.
가게가 한가한 날 오셨기에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박학다식한 분이시라는 걸 알았습니다.
책을 좋아하시고 물어보면 모르는 게 없습니다.
독서와 그에 대한 토론을 즐기는 게
친정 아빠와 비슷해서 이 손님이 오시면
아빠가 생각납니다.
물론 제가 그분의 토론 상대는 아닙니다.
전 귀 기울여 듣고 열심히 리액션만 합니다.
이 손님은 과일을 참 좋아하십니다.
혼자 사시면서도 귤 한 박스를 사 가고
사과며 포도며 때마다 제철 과일을 삽니다.
끼니로는 삼양라면 한 박스
김치 한 팩 어쩌다 고기 한 팩을 삽니다.
저는 대부분의 나이 드신 손님을
사장님이라고 부르기에
"사장님!!
맨날 라면만 드시면 어떡해요.
건강 생각하셔야죠.
아 오늘은 고기 구워드시게요?
그러셔요 단백질도 드시고..."
"구워 먹기는 잘잘하게 잘라 라면에 넣고 끓이면 되지~~
귀찮게 뭘 구워?"
"라면에 고기를요??"
"그럼~~ 먹을만해 그리고 내가 왜 라면만 먹어??
우리 아들딸이 용돈을 한 달에 얼마를 주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나 지금도 사람들하고 밥 먹고 들어오는 길이야"
라면만 드신다는 제 말에 빈정이 상하신 듯합니다.
항상 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고 상의 위에는 머플러를 두르는
멋쟁이입니다만 혼자 사시기에 옷 관리를 못하는지
먼지가 묻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여하튼 평소 행색으로 좋은 직장을 다니셨을 거라 짐작은 했는데
알고 보니 건설사를 하시면서 전국에 집을 지었다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망했다고 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장님!! 아는 사람이 재개발 예정인 곳에 조합원 아파트로
투자하라는데 어떡할까요 할까요 말까요?"
"언제 된다는데??"
"몇 년 후에 된다는데요?"
"야야~낼모레 한다고 해도 몇 년이 걸리는 게
조합원 아파트인데 몇 년 후를 어떻게 장담해?
그거 잘못하면 조합원 걔네 생활비 술값 대주다 끝난다야~
하지 말고 차라리 땅을 사라"
"제가 돈이 어딨어서 땅을 사요 사장님!!!!
그 재개발은 2천 투자하면 된다길래
순간 솔깃한 거죠. 알겠어요 안 할게요!"
어느 날은 책 얘기하시면서
"우리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고 우리 딸은 교수야.
근데 학창 시절에 공부로 회초리 든 적이 한 번도 없어.
애들 공부하면 난 그냥 옆에서 책 봐 그랬더니 애들이 공부 잘했어!!"
"네~~ 제일 어려운 걸 말씀하시네요~~ 사장님!!"
반전은 이 손님이 정치인들 얘기할 때인데
곽상도 의원 보고는
"우리 상도가 말이야~~~~"
이낙연 의원 보고는
"낙연이는 말이야~~~~"
모두가 친구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저랑만 얘기할 때는 그냥 웃으면서 듣는데
다른 손님들 계실 때도 저렇게 얘기하면
부끄러움은 저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