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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n 17. 2024

위기상황  

이왕 운동을 시작한 거, 음식도 좀 신경 쓰자 싶어서 과자와 당 음료에 입을 안 댄 지 벌써 두 주가 지났다. 알단 집에 굴러다니는 과자와 라면을 돌같이 했다. 처음 며칠을 버티니 그 이후에는 생각보다 그렇게 입에서 당기지 않았고 무난 무난하게 두 주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어제부터였다. 선물을 고를 일이 있어서, 휴일에 구석구석 동네를 돌며 간식거리 구경을 한참 했더니 내 안의 식탐이가 기지개를 켰다. 


여러 사람에게 전달할 소소한 간식거리 정도를 사야 했는데, 막상 고르려니 쉽지 않았다. 디저트 카페에서 케이크도 구경하고, 동네 빵집에 있는 마음샌드 짝퉁도 구경하고, 올리브영 안에서도 서성거리다가, 결국 한살림에서 공정무역 마크가 있는 외제초콜릿 몇 개를 샀다. 너무 부담 안 갈 정도의 적당한 선의 간식거리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집에 초콜릿들을 놓고 보니 너무 맛있게 생긴 거다. 이미 여러 군데 에서 달달이들 아이쇼핑을 실컷 한 데다가, 집안에 실물이 있으니 내 안의 식탐이가 점점 커졌다. 그 와중에 오늘은 아침에 운동하며 좀 오래 걸었다고 나를 합리화하며, 결국 편의점에 들러서 아이스크림과 초코바를 오래간만에 흡입했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혀가 아플 정도로 자극이 느껴졌고 난 행복해졌다. 


단 것은 단 것을 엄청나게 당긴다는 게 학계의 정설. 역시 집에 오니 내가 돌같이 하던 모든 것들이 나를 열렬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남긴 과자봉지, 남편이 먹는 라면, 심지어 선생님이 아이 먹으라고 준 과자꾸러미에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며 손이 닿을 뻔했다. 그리고 결국 내 입에는 집에 꿍쳐둔 초콜릿이 통째로 하나 둘 들어가고 있고, 결국 내 손엔 다 먹은 빈 봉지만 허망하게 잡혀있었다. 


이건 위기상황이다. 이거 정말 제대로 입 터지기 직전 신호다. 낼모레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오늘 입이 터질 순 없다. 그곳에 과거남이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달린 게 아깝지 정신 챙기자. 그냥 결혼식장에서 디저트만 퍼먹다 전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은 아니다. 지금 내 입안의 그 달달함은 이제 그 마안, 일단 오늘은 그냥 잠이나 자자. 아이 방에 있는 초코파이와 사탕 같은 간식더미를 정작 아이는 돌같이 여기며 며칠간 책상에 방치하는데, 식탐이는 그걸 자꾸 흘끔흘끔 탐해서 헛헛한 마음에 글이나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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