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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n 18. 2024

안 달릴 오만가지 이유

세상에 안 달릴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구차스러운 변명으로는 피곤하다, 아프다, 바쁘다, 시간이 없다, 달릴 기분이 아니다, 약속이 생겼다 등등이 있다. 그런저런 변명으로 어느덧 달력을 보니 벌써 3주 차다. 오 마이갓.


사실 나는 이렇게 호기롭게 시작해 놓고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경험이 많은 인간이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신이 나서 앞장서서 하던 일도 어느덧 순위에 밀리고 점점 잊힌다. 정말 사고 싶어서 많은 검색 끝에 산 빛나는 제품도 택배가 막상 도착하면  열기도 귀찮을 때가 있다. 새로운 건강식을 해 먹겠다고 냉장고에 쟁여 놓고서는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야채들도 많다. 나에게 잊혀간 많은 것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막상 위로문을 보내려니 수신자가 한도초과 같아서 머쓱하다.


달리기도 그렇게 잊혀가고 있었다. 안 달릴 오만가지 구차한 이유로 나는 시간개념조차 잊었음을 자백한다. 오늘 새벽 역시나 운동을 무시하고 불면증으로 피곤한 몸을 침대에서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연재의 마감이 온 거다. 오늘은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찾다가 달리기 연재 글 1일 차 의 내 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의 찬란은 기운이 넘쳤구나. 연재 챌린지 해보겠다고 저리 떠들었는데 불과 3주 만에 쪼그라든 내가 많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달력을 보았다. 오늘부터 다시 끊으면 그래도 최소 한 달은 아슬히 채울 것 같았다. 그 당시에 운동하고 싶은 이유를 적었던 그 동기는 이미 저 멀리 사라졌다. 대신 하나 남았다. 나는 연재글 20개는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야겠다. 그러려면 다시 며칠 쭉 달려보자.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새벽에 드디어 운동을 재개했다.


땀이 흘렀고, 7분씩 3회를 뛰었고, 샤워를 마치니 드디어 글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쓱 미소를 짓게 되었다. 사실 계속 웃을 틈이 없었다. 한숨짓고 울 일만 많았고 내 자존감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평소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하지도 못하고 부정적 평가를 받는데, 글세상 속 나 자신은 왠지 허구 속 왜곡 같아서 글도 쓰지 못하고 있던 몇 주였다. 달리기 글도 호기롭게 연재를 시작했으나, 자꾸 의욕이 없어지고 마음이 침잠한 상태였다.


하지만, 글쓰기가 망설여질지라도 달리기는 아니었다. 달리기 행위는 허구가 아니다. 정확히 내가 달려야 땀이 나고 내가 안 달리면 땀이 안 난다. 나는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내 몸을 놀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이 행위 정도는 해낼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오늘 달리기 재개를 통해서 뭐라도 해내는 사람이 돼서, 내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싶었나 보다. 안 달릴 이유 더미 속에서 기어이 찾아낸 내 불씨가, 그리고 그걸 발견하게 해 준 이 공간이 있어서 참 다행인 날이다. 어딘가에서 온 하트 하나로 나는 또 달릴 이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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