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나를 구성하는 다양한 모습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해 봅니다.
형용사 : 명랑한, 예민한, 유연한 / 명사 : 여자, 사람, 상담심리사/ 동사 : 덤벙거리다
나를 나타내는 동사에 새로이 ‘걷는다.’를 추가하려고 합니다. 최근 들어 건강한 습관을 만들고 싶어서 저녁 9시쯤 되면 무조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갑니다. 뭔가를 실행에 옮기려는 동기가 필요한 순간 문장 하나를 붙잡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 저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에서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 '
디지털 대홍수 속에서 걷기는 나에게 노아의 방주와도 같습니다. 늘 하던 대로 충동적이고 질 낮은 도파민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 감각을 느끼면서 진정한 나로 숨 쉬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브르통은 '걷기'의 반대말을 '집'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살기 위해 매일 능동적으로 집을 떠나는 셈이네요. 제 걷기의 시작에는 불면증과 중독, 그리고 백내장이 있습니다.
불면증과 유튜브, 악순환에 빠지다
언젠가부터 자다가 깨는 일이 잦았습니다. 아예 잠드는 것 자체가 고역인 날도 많았죠. 다음 날 아침부터 일정이 있는 날이면 밤새 뒤척이면서 내일 컨디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옛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옛날 드라마 몰아보기는 ‘오늘도 잠이 안 오면 어떡하지?’라는 하는 고민 자체를 잊게 만들어줬어요. 요즘엔 별 재미를 못 느껴서 tv를 잘 안 보는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았을까요? 중간에 나오는 광고를 없애려고 프리미엄 구독까지 했습니다. '쇼핑도 거의 안 하는데 월에 만 얼마 정도는 나를 위해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유는 꽤 설득력이 있었죠. 올여름엔 유독 열대야가 심했고 잠드는 게 고통과 동의어가 될 지경이었어요. 유튜브를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스르르 잠드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재수하는 아들에게 아침밥을 챙겨주려면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매일 서너 시간밖에 못 자다 보니 피곤에 찌든 날들이 이어졌어요. 아침이면 오늘부터 유튜브를 안보리라 다짐하고 하루가 끝날 즈음엔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죠.
힘들게 일한 날이면 피곤하면서도 그냥 바로 자는 게 아쉬웠고 수고한 나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어요. 인식하기도 전에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죠. 하루치 의지력의 배터리는 이미 다 사용해 버려서 절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건 핑계일까요. 언젠가부터 잠이 정말 안 오는 건지, 내가 자는 것을 미루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 됐습니다.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마음이 공허함과 불안으로 가득 찰 때가 있습니다. 흰머리, 뱃살, 주름은 언제 이렇게 늘어난 건지. 신체적 변화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현실에서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여전합니다. 젊었을 땐 나이를 먹으면 자리도 잡고 마음이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초초하고 걱정이 많아질 줄이야.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이 끊임없이 이어져 몸이 아니라 생각이 먼저 다이어트가 필요한 상황이죠. 생각에 스위치라도 있다면 당장 꺼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불안으로 가득 찬 마음을 마주 하기 어려워 우리는 도망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씁니다.
가장 손쉽게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폭식을 하거나 동영상, SNS, 게임에 시선을 뺏기는 등 내면을 즉각적인 만족감으로 채우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스마트폰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머물면서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빠르게 접근가능한 도피처입니다. 알람이 뜨지 않았는데도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 머릿속은 점점 산만하고 피곤해집니다. SNS에서 남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다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서 마음이 우울해지기도 하죠.『도파미네이션』의 저자이자 스탠퍼드 의과대학 교수 애나 렘키 박사는 인터넷을 디지털 약물 주사기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쾌락, 욕망, 동기부여 등에 영향을 미칩니다. 적당한 도파민은 삶에 활력과 열정을 북돋우는 기제로 작용하기에 그 자체로는 죄가 없어요. 기분 좋은 느낌에 중독돼 특정 물질이나 행동을 과하게 반복하는 우리 습관이 문제겠죠.
도파민은 내성이 있어서 예전과 같은 만족을 느끼려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합니다. 평범한 일상은 지루하고 따분하게만 느껴집니다. 불안하거나 우울하다고, 나이 먹는 게 서럽다는 이유로, 밤에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물질이나 행동에 과하게 의존한다면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잠이 안 와서 유튜브에 의존하는 습관을 몸에 이상이 오고 나서야 중단하게 됐습니다. ‘깨달음이나 자기 성찰의 순간이 있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고 쓰고 싶지만 제 이야기엔 그런 바람직한 고백이 존재하지 않아요. 해로운 습관은 시야가 뿌예서 안과에 갔다가 백내장 진단을 받고서야 중단됐습니다. 백내장이 생긴 원인은 노화를 포함해서 몇 가지가 있겠지만 이유가 뭐가 됐든 자기 파괴적인 습관을 이제 그만 멈춰야 했죠.
Ⓒ dkmoneymomo, 출처 unsplash
스크린 타임 줄이기
나쁜 습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지력을 믿기보다는 환경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당 자극(유혹)에 노출되는 횟수를 줄여서 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죠. 일을 할 때 핸드폰을 너무 자주 본다면 정한 분량을 다 끝낼 때까지 그것을 다른 장소에 가져다 두는 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군것질거리를 눈에 띄는 곳에 두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죠.
저는 제일 먼저 스마트폰 홈 화면에서 유튜브 앱을 삭제했습니다. 사용시간을 제한하기 위해 스크린 타임 앱도 설치했고요. 밤에 잘 때는 스마트폰을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뒀습니다.
알아차림과 딴짓일지 쓰기
『해빗』의 저자 웬디 우드는 우리 일상의 43%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늘 하던 대로 하지 말고 내가 하려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인식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도요.
무심코 핸드폰을 집어 들기 전에 내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세요. ‘아 내가 지금 지루해서 핸드폰을 보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그 마음 안에 어떤 감정과 욕구가 있는지도 살펴보는 거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는지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는데요 일을 하는 동안 딴짓일지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일을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가까스로 시작한 다음에도 시도 때도 없이 주의가 분산돼서 셀프모니터링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심리학 용어로는 ‘자기 감찰효과’라고 하는데 스스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관찰하면서 행동을 파악하고 조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딴짓일지는 니르 이얄이 쓴『초집중』에 나와 있는 딴짓추적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방법은 간단한데요 일을 하다가 딴짓을 하고 싶을 때마다 종이에 빗금을 치고 하려던 딴짓의 내용을 적는 거죠. 저는 아예 딴짓일지용 수첩을 마련해서 복잡하거나 스트레스 쌓이는 일을 해야 할 때 옆에 펴둡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관찰하고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딴짓을 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해로운 습관을 건강한 습관으로 대신하기
저는 요즘 ‘가족과 외식할 때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 두지 않기’처럼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가족을 비롯해서 같이 온 일행들이 제각각 핸드폰 삼매경에 빠지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잖아요. 문득 중요하거나 급하지도 않은 것을 하느라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투리 천 같이 조각난 시간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에 어떤 단어를 추가하고 싶은지도 고민해 봤습니다. 저는 삶의 여백을 위해 자극적이고 단시간에 고양감을 충족시키는 행위보다는 심심하고 인내력을 요하는 것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걷기예요. 처음에는 하루 일정이 끝난 저녁 시간에 주로 걸었지만 요즘엔 시도 때도 없이 걷습니다.
볕이 좋아서, 마침내 선선해진 공기가 반가워서,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한 점도 없어서, 평안해서, 불안하고 초초해서, 금세 사라질 가을이라는 계절이 아까워서, 하루가 할 일로만 가득 찼을 때 느리게 가는 시간이 답답해서, 속상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온몸이 쑤시고 뜨거워서, 착잡하고 화가 나서, 고민이 너무 깊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서, 건강을 위해서 꾸역꾸역 그렇게 걷고 또 걷습니다.
중년의 나를 구성하는 다양한 모습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해 봅니다.
형용사 : 명사 : 동사 :
내 정체성이나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해서 나를 표현하는 모습에 추가하고 싶은 단어가 있으면 적어볼까요?
위에 적은 단어와 관련해서 내가 하려고 하는 행동에 방해가 될 만한 나쁜 습관이 있으면 적어보세요.
나쁜 습관을 대체할 만한 바람직한 습관을 떠올려보고 그 습관을 만들기 위해 오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