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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럴드형제 Apr 23. 2020

미용 그리고 자존감

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13


미용을 하다보면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일에도 괜히 민감해지고 타격을 받게 되는 그런 시절은 누구에게나 분명 온다. 문제는 그 시기를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할 것이냐에 있다. 오늘은 그 고민을 함께 해보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미용사들 중 90%는 어릴 적부터 미용사를 꿈꾸진 않았다. 화가, 만화가, 평범한 직장인, 연예인, 패션 디자이너 등 전혀 다른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삼다가 여러 우연과 운명으로 고교시절이나 성인이 된 이후에 미용사를 준비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말하자면, 현실적인 판단과 포부로 미용사의 길을 걷게 된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뜻이다. 물론 처음부터 꿈이 미용사였던 분들도 있다. 그러나 소수일 것이다. 이 지점을 언급하는 이유는 미용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릴 적 동경하고 오랫동안 꿈꾸던 직업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것은 자존감과 직결된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채 다른 길을 걷게 됐다는 일종의 자괴감과 후회가 무의식적으로 계속 따라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면 이 힘든 일을 안 하고 있을 텐데’ ‘내가 지금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같은 불만 섞인 내면의 소리들 말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은 다르다. 영어로 ‘want’는 무언가를 원한다는 의미이지만, ‘must’는 무언가를 필요에 의해 해야 된다는 의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면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은 ‘의무’다. 세금을 내고 싶은 것과 세금을 내야만 하는 것만큼 다르다. 


자존감은 소망하던 것들이 이뤄졌거나 혹은 그걸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경험들을 통해 높아진다. 삶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자존감이 높을 수 없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매사 빛이 난다. 사소한 것에 크게 상처 받을 일도 없다. 본인이 선택한 일이고, 간절히 소망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뒷감당까지 책임질 수 있는 여유를 지녔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일을 사랑하진 않지만 현실적 의무감으로 계속 해야만 하는 경우는 어떡해야 할까.


진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 직업이 아니라 그 직업을 가진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직업을 위한 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직업이고, 미용사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미용을 하고 있는 당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현실적인 이유와 의무감으로 미용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더라도 내가 그 직업을 아껴주고 가꿔나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망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뭔가를 계속 해주고 싶고, 진지하게 관계와 미래를 발전해 나가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미용사라는 직업 자체가 아니라
미용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많은 것들이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부족은 성인식을 옥수수 밭에서 치른다고 한다. 족장은 어른이 될 준비가 된 청년들에게 옥수수 밭에서 가장 좋은 옥수수를 딱 하나만 가져오라고 명한다. 조건은 단 한가지다. 어떤 옥수수를 따와도 상관없지만 왔던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한번 그 옥수수를 선택하면 그게 최종이 되는 것이다. 


청년들 모두는 그렇게 옥수수를 선택하기 전 많은 고민에 잠긴다. 아까 지나왔던 옥수수가 더 큰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옥수수를 선택하면 아직 남은 길에서 더 좋은 옥수수를 만나는 것은 아닐까, 이게 과연 가장 좋은 옥수수일까.


옥수수 밭을 지나온 청년들은 모두 각자 옥수수 한 개씩을 들고 서있게 된다. 옆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옥수수가 더 크다고 우쭐대기도 더 작다고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족장은 말한다. 


우리는 애초에 가장 좋은 옥수수를 고를 수 없었다고. 우리는 그저 그 당시에 모든 걸 동원해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뿐이라고.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지금 그 옥수수가 현재 자신이 선택한 가장 최선의 옥수수다. 



당신이 미용을 시작한 것도 가장 좋은 옥수수를 고르려던 중 그 당시 결정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미용사가 된 것이 인생의 좋은 옥수수였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결정을 응원하고 아껴주길 희망한다. 왔던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당신을 더 멋진 미용사로, 더 좋은 사람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미용사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이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나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당신과 그 일을 대신 사랑해 줄 수 없다. 그게 자존감의 힘이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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