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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Oct 17. 2023

25. 에이스


남편이 제과제빵 기능사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쓸데없이 그건 왜? 라고 말하려다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커피를 싫어했다. 하지만 내가 생두를 볶고, 원두를 고르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몇 년 간 지켜보더니 커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은 나보다 커피 맛에 민감하다. 각종 커피 추출 도구로 커피를 내리고, 신중하게 커피 맛을 평가한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릴 적 엄마에게 "넌 왜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리니?" 라는 말을 들은 후 그림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하지만 내가 드로잉 책과 수채화 책을 보며 선 긋는 연습을 하고, 건물을 스케치하고, 물감을 칠하는 걸 일 년 간 지켜보더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는 걸 그만두자 남편은 구석에 처박아 둔 붓, 물감,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빵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빵을 사먹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통밀 빵을 만들고, 스콘 굽는 걸 몇 년간 지켜본 후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종종 부엌에서 남편이 계량기 위에 믹싱 볼을 올려놓고 밀가루를 재는 모습을 본다. 꼼꼼한 남편은 달걀껍질 무게까지 계산해 정확히 중량을 맞춘다. 재료를 한 번에 섞어 대충 빵을 만들던 나와는 정반대다. 남편 덕분에 집에서도 빵집과 똑같은 맛을 내는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법은 정확한 재료와 정확한 계량이 전부다.


 일주일에 한번 남편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다. 남편은 말한다. 


“난 평생 도서관에 다시 갈 일이 없을 줄 알았어.”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아침마다 먹을 빵을 반죽한다. 나는 말한다. 


“난 남편이 만든 빵을 아침마다 먹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닮아간다. 떨어지면 보고 싶고, 함께 있는 시간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것에 무관심했던 나는 IT 업계에서 일하는 남편과 살다보니 이제 어지간한 용어는 척척 알아듣는다. 독서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남편은 책벌레인 나와 살며 집안에 놓인 책들을 이리저리 들춰보고 다독가로서의 모습을 갖춰간다. 우리는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미래를 계획한다. 혼자보다 함께 있을 때 빛이 난다.


 1974년 해태에서 출시한 에이스 역시 혼자일 때보다 커피와 함께일 때 진가를 발휘한다. 에이스를 먹다보면 어느 순간 커피가 놓여 있다. 포장지에도 당연하다는 듯 적혀있다. ‘커피와 함께 하는 즐거움.’ 물론 우유나 홍차와도 잘 어울리지만 그중 으뜸은 커피다. 사이좋은 부부 같다. 


국내 최초 크래커 과자인 에이스는 기름지면서도 고소하고, 고소하면서도 짭짤하다. 포장지 뚜껑에 든 정사각형 에이스를 꺼내려면 포장지에 걸려 부서지기 일쑤지만, 그 정도 불편함은 참을 수 있다. 질소로 빵빵하게 부풀려져 구명보트로 쓰기 좋은 과자들보다야 낫지.


 에이스를 먹다보면 반드시 듣는 말이 있다. “너 이거 칼로리가 얼마인지 알아? 비스킷 다섯 개에 밥 한 공기래.” 신기하게도 여러 명이 모여 에이스를 먹다보면 꼭 칼로리 얘기가 등장한다. 어떤 모임에서건, 어떤 연령대에서건 칼로리는 빠지지 않는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칼로리 걱정할거면 왜 먹는 거야?’ 이번에 글을 쓰며 밥 한 공기 칼로리와 에이스 칼로리를 정확히 비교해 보았다. 에이스 한 통은 공기 밥 세 공기와 맞먹는 분량이다. 와, 엄청나긴 하다. 이제 확실하게 알았으니 에이스를 먹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 줘야겠다. 


“근데 너 이거 칼로리가 얼마인지 알고는 먹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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