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야

* 버섯 배추찜

by 보나

힘들다고 유명한 학기가 끝이 났다.

4년 중 전공과목을 가장 많이 듣는 (전공만 11과목) 학기라 브런치에도 들어올 수 없었다.


종강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적 확인 기간이야.

"학점 4 넘었네. 어? 약리학 A+??"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깜짝 놀랐다.


"대박. 기말 때 잘 봤나 봐."

역시 포기하지 않길 잘했어.

사실 약리학과 성인기를 포기하려고 했었다.




성인기 쪽지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밤을 꼴딱 새우며 스카에서 공부를 했었지.

잘 봤냐고? 아니, 대차게 망했다. 1차 형성평가를 마친 날 언니에게 엉엉 울며 전화를 걸 정도였으니까.


언니, 나 진짜 돌대가리인가 봐.

언니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형성평가 망한 걸로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고 진정하라는 말과 함께 동기들도 똑같이 어려웠을 거라고 덧붙였다.


"성인간호학은 다들 똑같이 어려워."

"나 진짜 한 시간도 안 자고 공부만 했는데.."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 돼."


헐떡이며 울던 나는 통화를 할수록 점차 진정됐다.


나중에 중간고사 성적을 확인할 때 보니 형성평가와 중간고사 모두 평균보다 약간 높은 상태였다. 기말을 망친다면 C+, 중간정도로 본다면 B+나 B를 받겠지.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절대 포기 안 해.

기말고사 땐 계속 보고 또 봤다.

반복해서 읽다 보니 병명 별 병태생리와 임상증상, 진단검사법, 치료, 수술 전 간호, 수술 후 간호, 합병증들이 눈에 들어왔고, 질환별 구분도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염증성 장 질환은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은 좌하복부 직장에서 시작. 크론병은 상행결장에서 호발하나 전체적인 소화기관에서 발생. 공통되는 임상증상은 설사, 쥐어짜는 통증. 하지만 궤양성은 혈변, 크론병은 영양장애, 체중감소, 고름집, 샛길이라는 차이점 발생. 약물요법으로는 5-ASA(항염증제), 스테로이드제, 면역억제제, 항균제 등 사용. 출혈 가능성 있는 NSAID(진통제) 금지. 같은 진통제더라도 CNS(중추신경계) 작용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은 가능. 식이요법은 고열량, 고단백, 저지방(소화 용이하도록), 저섬유소(고섬유소는 장폐색 위험),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식이를 소량씩 자주 섭취, 급성 악화 시 금식하여 장 휴식, 필요시 TPN(환자에게 관을 삽입하여 영양공급). 5-ASA의 대표 약물인 sulfasalazine은 장기복용 시 엽산이 결핍되므로 엽산 보충할 것. 카페인 알코올 흡연 줄이도록 함. 수술요법으로는 총결장절제, 대장절제, 회장루 등이 있음. 간호로는 경할 경우 가능한 구강섭취 권장. 저잔류 음식을 조금씩 제공하여 장 기능을 유지하도록 함. 하지만 중증인 경우 금식."


앞이 이해가 되니 뒷 내용도 문제없었다.

"자, 이제 장루술 간호 보자. 회장루는 변이 붉고 피부 손상의 가능성이 높다. 전통 회장루, 루프회장루, 조절회장루가 있다. 전통 회장루는 액체를 빈번하게 배출하고 변에 소화효소나 담즙산염이 포함되어 피부자극이 되므로 피부보호 간호 하기. 루프 회장루는 일시적일 때. 조절 회장루 간호로는 폐색을 예방하기 위해 섬유소 음식 제한, 변을 액체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포도주스 섭취. 구불 결장루는 장루 세척을 규칙적으로 하기. 목적은 시간 통제하여 배변 규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 부분을 암기해야 했는데, 여러 번 읽으니 눈에 익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외워졌다. 그러니 이해가 됐고, 이해가 되니 재밌기까지 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2차 서술형 형성평가와 기말고사를 잘 봐 A+에서 1점 낮은 94점 A0를 받았다.


1점 차로 A+를 받지 못해 아쉽지 않냐고?

전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조금도 아쉽지 않다.




하지만 약리학은 달랐다.


"어? 해부생리학이랑 많이 겹치잖아?"


처음엔 약리학이 재미있었다.

옛날에 배운 게 나왔거든. 형성평가도 잘 봤다.

하지만 이건 자만이고, 오만이었다.

진도를 나갈수록 외울 것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책과 PPT를 1 회독 한 뒤 처음으로 돌아갔다.


"어...?"

몇몇 약물을 제외하고 약물이름들이 낯설었다.


침착하게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콜린성 약물로는 직접과 간접 작용제가 있다. 직접 작용제 대표약물로는 bethanechol 배뇨 도움, carbachol 녹내장 치료, 간접가역 작용제로는 edprophonium 중증근무력증 진단, donepezil 알츠하이머약. 투여 후 콜린성 위기 발생 시 atropine. 중추 신경계 약물로는 벤조디아제핀계와 바르비투르산염계.. BDZs(벤조디아제핀계) 기전은 GABA 수용체랑 결합해서 Cl- 통로 열리게 한다.. 하.. 약물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zolam, -zepam 붙는 것들... 항우울제 종류로는 SSRIs, SNRIs, TCAs, MAOIs, 비정형 항우울제가 있다. 각 기전이랑 대표 약물들은... 파킨슨 치료 약물요법으로는 도파민 작용제, 도파민 수용체 작용제, MAO-B 억제제, COMT 억제제, 항콜린제.. 도파민 작용제로는 levodopa.. 도파민 수용체 작용제로는 bromocriptine, COMT 억제제는 entacapone.. "


기전, 약물의 작용과 부작용은 성인기와 비슷했다.

하지만 약물들은 이해하고 말고가 없었다. 암기만이 답이었다.


약리학은 시험을 치기 직전까지 패드를 손에 놓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보다 네 개 더 맞았다.




나는 과목별로 공부법을 다르게 하는 편이다.


아동간호학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부분들을 몽땅 외우는 공부법이 잘 맞았다. 덕분에 35문항 중 32문제를 맞았다. (평균 23개 맞음)


하지만 약리는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공부법이 맞지 않은 거겠지.”


중간 땐 약리, 성인기 모두 꼼꼼히 전체 회독을 했다.

전공책을 읽다 보면 헷갈렸던 부분이 이해가 되어서였다. 기말 때도 위 공부법을 유지한 성인기와 달리 약리학은 회독을 포기했다. 전공 서적 속 방대한 약 종류들을 보다 보면 전에 외운 것들까지 헷갈려서였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부분만 반복해서 보는 거야."

다행히 강의시간에 졸지 않고 들어 PPT에 필기가 잘 되어있었다.


PPT에서 필기된 부분만 반복해서 읽으며 죽어도 안 외워지는 것들을 공책에 써 내려갔다. PPT만 보는 건데도 양이 어마어마했다. 많으면 많은 대로 달달 외웠다. 시험 직전에는 패드와 공책을 일찍 집어넣고, 속으로 헷갈리는 약물들을 계속 되뇌었다.


진심으로 포기하고 싶었지만, 참고 견뎠더니 A+를 받을 수 있었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법
오늘은 배추 요리를 해 먹자!

재료

알배추, 숙주, 쯔유, 버섯(종류 상관없다.), 찍어 먹을 소스(저당 소스, 진간장 등 좋아하는 양념)


조리방법

밑동을 자른 알배추에 버섯을 감싼다.

숙주와 함께 냄비에 넣고 끓인다.

어느 정도 버섯이 익은 뒤 물이 많이 생긴 경우 따라낸다.

취향껏 쯔유를 넣는다.

먹기 직전 후추를 뿌린다.

찍어 먹을 소스를 준비한다.


작은 팁

야채, 버섯에서 즙이 많이 나오므로 물은 적은가? 싶을 정도로 넣어준다.

대부분의 버섯과 먹어봤는데, 팽이버섯과 함께 먹었을 때가 가장 맛있었다.

냉털용으로 버섯을 넣었지만, 우삼겹 혹은 목심을 넣어도 맛있을 것 같다.


***


알배추찜을 먹으니 속도 뜨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내년에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하자!"




+ 브런치 메인과 추천글에 제 글이 올라왔어요.

복귀 후 오랜만에 올라간 거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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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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