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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령 Jul 21. 2024

병원의 밤

금요일 밤 병원에서 일어난 아주 짧은 이야기

금요일 밤, 휴게실에서 TV를 보던 환자들은 각자의 병실에 자러 들어갔다. 조용해진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서 일을 마무리하다가 환자들이 모두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담당 병실을 돌아보며 환자들이 모두 자리에 있는지, 수액은 잘 들어가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복도 끝에 위치한 1인실은 비어있었다. 어제까지 백혈병을 앓고 있던 소녀, 수진의 방이었다. 빈방의 불을 켜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불을 끄고 스테이션으로 걸어 나왔다. 아무도 없는 스테이션에 누군가가 와있었다. 상복을 입은 수진의 어머니였다.

그녀를 알아본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수진 어머니, 두고 가신 물건이라도 있으세요? 저 방금 병실 보고 나왔는데.”

수진 어머니의 머리는 헝클어졌고 핏기 없는 얼굴은 잔뜩 부어있었다.

수진이 살아있을 때 그녀는 마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듯한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병원에 갇혀 사춘기를 보내던 그녀의 딸 수진만큼 예민했었다. 예민한 수진이 치료를 거부하자 병실 문을 막아서고 나에게 소리 지르던 모습이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지만,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약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었다.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바람쐬러 잠깐 나왔다가 발길이 이끄는 대로 병동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선생님 오늘 계셨구나. 다행이에요. 내일 아침 수진이 발인인데, 안 그래도 꼭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그동안 정말 감사하고 죄송했어요.”

“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말에 내 안에 아주 조금 남아있던 상처와 미운 감정이 사라졌다. 미워하는 마음은 항상 죄책감을 동반했다. 나는 인생의 반 이상 병원에서 보낸 딸 옆을 지켜야 했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던가. 그녀와 나는 손을 마주잡고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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