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학년 부장님께서 오늘 학교에 나오지 못하셨다.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를 하시고, 병세가 심해진 아버님을 간호하시느라 한동안 학교에 못 나오다 다시 출근한 지 겨우 이틀 만인 오늘 부친상을 당하셨다. 어제는 올해의 첫 회식이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출근하지 못하는 선생님들도 계셔 새로 오신 선생님들을 환영하는 자리조차 마련할 수가 없었다,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이 났고, 모든 선생님이 돌아왔으며, 아버님의 병세도 조금 나아진 상태였으니 부장님은 어제가 회식하기에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4월 말이 돼서야 겨우 교무실의 첫 회식이 열렸지만 정작 부장님은 회식 중 집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먼저 일어나야만 하셨다.
바로 옆에 있는 부장님의 책상을 보고 있으니 혹시 모를 일로 회식 내내 전화기를 꼭 붙든 채 선생님들을 칭찬하며 다독이던 어제의 부장님이 떠올랐다. 같은 교과인 내가 부장님이 출근을 못하시는 동안 부장님의 수업을 거의 도맡아서 하고 있는 것이 미안하고 고마우셨는지 부장님은 나가서 커피라도 사 먹으라며 내가 자주 가는 카페의 기프티콘을 보내셨었다. 어제는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술을 따라주셨고, 급히 가보셔야 했으면서도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과 함께 대리비를 챙겨주기도 하셨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잠깐의 여유가 생겼을 때 자신이 챙겨야 할 사람들이 생각났을 부장님은 누군가의 아들로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누군가가 한때 자신의 전부였을지라도 지금은 자신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존재가 있고, 자신이 조율해야 할 구성원들이 있으며, 자기 대신 애써주고 있는 다른 이가 있으니. 그런 사람들도 신경 쓰며 지내야 하는 것이 아직 더 살아가야 할 사람의 일상이며, 일상은 무언가를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많이 주지도 오래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반복되는 일상이 삶에서 내리는 슬픔을 적어도 자기 몸 크기만큼은 막아주는 우산이 되기도 할 것이다.
부장님의 책상 위에 글씨가 빼곡한 메모지와 수업 자료들, 교무 수첩 사이에 껴있는 여러 회의 문서들이 눈에 띄었다. 짧은 애도의 시간을 보낸 뒤 부장님은 다시 학교로 나와 이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을 마저 해 나가실 부장님을 떠올려 보며 오늘 무슨 옷을 입고 출근했는지 고개를 숙여 확인해 봤다. 바지는 청바지지만 위에는 다행히 검은색 셔츠였다. 부장님을 뵈러 가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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