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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현 Mar 09. 2024

사 월 이십구 일

문득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늘 학년 부장님께서 학교에 나오시지 못했다. 부장님의 아버님께서 오늘 새벽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픈 아버님을 간호하느라 학교를 못 나오셨다가 부장님이 다시 출근한 지 겨우 이틀 만에 상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교무실 학년 회식이 있었다. 부장님은 자신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학교에 새로 온 선생님들이나 처음으로 같은 교무실에서 일을 함께하게 된 선생님들이 기존에 있던 선생님들과 친목을 다질만한 시간이 없었고, 최근에는 여러 선생님이 코로나에도 걸려 교무실에 남아 있는 분들이 대신하여 더 바삐 움직여야 했었다. 그러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도 끝이 났고 아버님도 조금 상황이 나아지셨으니 부장님은 회식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때도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무실은 4월 말이 돼서야 올해 첫 회식을 하게 되었지만 정작 부장님은 회식 2차 자리에서 집에서 온 전화를 받고 먼저 일어나셔야만 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장례를 위해 학교에 못 나오시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행여나 모를 일로 회식 내내 전화기를 꼭 옆에 두신 채 교무실 선생님들을 칭찬하며 팀을 다독이던 어제의 부장님이 떠오른다. 그것이 산 사람, 살아갈 사람의 역할이다. 아직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으니까. 더군다나 당신은 부장이니 잠깐의 여유가 생겼을 때 자신이 챙겨야 할 사람들이 생각났을 것이다. 사실 부장님은 병간호 바로 전에도 코로나에 확진이 되어 학교를 일주일 동안 나오시지 못했고, 부장님과 같은 교과인 내가 거의 2주간 부장님의 수업과 일을 도맡아 했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며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술을 따라주던 부장님, 나가서 시원한 커피 꼭 사 먹으라며 자가격리 중에 내가 자주 가는 카페의 기프티콘을 보내주셨던 부장님, 어제 그렇게 급하게 집에 가면서도 다시 한번 고맙다며 집이 먼 나를 위해 따로 대리비를 챙겨주시던 부장님.

내 자리 바로 옆에 있는 부장님의 자리를 본다. 부장님 자리의 빼곡한 메모지, 수업 자료와 부장 회의 자료들이 눈에 띈다. 며칠의 애도 시간을 보낸 뒤 부장님은 다시 학교에 나와 이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을 마저 해 나가실 것이다. 아직 우리는 살아 있고 또 살아가야 하니까. 문득 내가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고개를 숙여 확인해 본다. 바지는 청바지지만 다행히 위에는 검은색 셔츠다. 장례식장에 가기에는 큰 무리가 없는 옷이라 생각해본다.

- 오전 여덟 시, 학교에 출근을 하고서.


 시험 기간이라 학교가 일찍 끝났다. 장례식장에 들렀다가 휴대폰을 수리하러 왔다. 휴대폰의 액정에 문제가 생긴 지 세 달째였는데 계속 버티다가 이제야 겨우 들려본다. 반절로 접히는 형식의 스마트폰이었는데 접히는 가운데 부분의 액정 보호 필름이 살짝 떠버렸었고, 그 상태로 계속 접었다 피며 사용했었더니 떠버린 부분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화면 중앙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스마트폰이라서 그런지 액정 보호 필름도 정식 서비스센터에서만 가능했었는데 오늘따라 서비스센터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필름 교체도 쉽지 않은지 고객 대기실에서 몇 번을 졸다 깨어도 수리가 끝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졸다 익숙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보니 화면이 깨끗해진 휴대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리기사님은 필름을 몇 번이나 갈아도 액정 접히는 부분이 살짝 이상하다며 나중에 더 심해지면 그땐 아예 휴대폰 액정을 갈아보라고 말하며, 접히는 휴대폰은 추위에 약하니 날씨가 추울 때는 조금 천천히 펼치기를 권유하셨다. 휴대폰을 펼치는 것도 조심해야 하나 싶다가도 이렇게 번거로운 시간을 또 갖지 않으려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타 깨끗해진 휴대폰을 조심히 펼쳐봤다. 추운데 갑자기 펼쳐서 그랬구나, 네가.

문득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추위든 시간이든 상처든, 그 어느 것에 굳어 있는 마음을 너무 빠르게 열어 버리려고 한다면 그 접히고 펴지는 부분에 금이 갈지도 모른다고.

- 오후 네 시, 대전의 한 휴대폰 서비스 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예정과 달라져 빨리 집에 가기 위해 유성 IC에서 나와 남세종 IC 쪽으로 향했다. 전주를 떠나 대전에서 직장을 잡고 세종에 살게 된 지는 어느새 7년이다. 다닌 지 수십 번은 이미 넘은 것 같고 어느새 수백 번에 이르렀을지 모를 도로다. 멀리 세종시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였다. 고향에 종종 들르기도 하고, 여전히 그곳에 대한 애착이 있어 나는 내가 아직 전주 사람의 티를 벗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직장은 또 대전이라 매일 같이 대전을 향해 출근하는 반면 퇴근 후 휴식과 주말은 세종에서 취하고 있으니 가끔 내가 어디 사람인지 모를 때가 있다. 특히 혼자 여행을 가면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현지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들기도 한다. 타지 생활 10년, 여전히 나는 이 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세종에서 계속 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여건만 맞는다면 전주로 내려가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래도 대전이 더 큰 도시고 직장도 대전이니 언젠가는 대전으로 가서 살 것 같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내가 나를 터를 잡지 못한 외지인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 불안정한 여정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게 될 건지 알 수 없다. 집에 와 차에서 내려도, 학교에 도착해도, 전주에 내려가도 아직 내 운전은 끝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든다. 그냥 지금처럼 계속 달리고 있을 뿐.

- 오후 네 시 반, 세종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화분 분갈이를 해야 했다. 얼마 전 천안으로 놀러 다녀오면서 사설 수목원을 들렀었다. 그 수목원은 입장료를 받는 대신 나갈 때 그 입장료만큼의 식물이나 꽃, 화분 등을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다. 스투키 같은 식물이 아니면 제대로 키워낸 적이 없는 나지만 그래도 욕심을 내어 백리향과 칼란디바를 분양받아 집으로 데려왔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지금 화분이 너무 작아 보이고 예뻐 보이지도 않아 집에 남는 화분으로 분갈이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동생에게 은방울꽃을 선물해 주며 알아봤었지만, 시간에 비해 들이는 수입이 적어서 그런지 분갈이를 해주는 꽃집이 생각보다 없었다. 확인차 지난번에 들렸던 꽃집에 전화를 걸어 여전히 분갈이를 해주는지 여쭤본 후 나는 두 화분을 쇼핑백에 담아 꽃집을 찾아갔다. 꽃집 사장님이 더 채워준 흙과 함께 깨끗한 도자기 화분에 옮겨진 칼라디바와 백리향은 더 예뻐 보였다. 이 새집이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두 꽃이 이곳에서 뿌리를 잘 내리기를, 이제는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수목원이 아닌 우리 집에서 잘 정착하기를, 그리고 이곳에서 나와 오래 같이 있어 주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신문지 싸인 화분을 쇼핑백에 담았다.

- 오후 일곱 시 이십 분, 세종시의 한 꽃집에서.


 우리 집이 있는 고운동으로 가는 길은 서쪽이라 시간만 잘 맞추면 멀리 공주 방면을 배경으로 지는 노을을 잘 볼 수 있다. 도시의 끝 쪽 동네라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의도치는 않았지만 시간을 잘 맞추었기에 멀리서 해가 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획도시인 세종의 특산물은 노을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오늘의 노을도 아름다웠다. 앞으로 어느 곳에서 더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노을을 지켜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 오후 일곱 시 반, 우리 집 앞 마지막 신호 앞에서.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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