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산문을 읽다가...
어제오늘 비가 내린다.
까마귀는 새벽부터 울어대며 "여름이 가을에 잡아 먹히는" 순간을 축하한다.
여름은 분무기처럼 뿜어 나오는 부슬한 눈물로 "푸른 독"을 씻어내고 자신에게 남은 초록을 떼어 가을에게 건네준다.
그러면 가을은 얼마간의 햇살로 보기 좋고 노릇하게 구워낸 여름을 삼키고 어미새가 새끼에게 먹이듯 여름을 동그랗게 뱉어낸다.
그러면 우리는 신이 나서 여름의 결정들에게 손을 뻗어 마음 바구니를 채우고 좋아하는 이들에게 하나씩 건네며 이 계절을 넘어간다.
꽤나 왁자지껄하지만 어린 시절보다 덜 소란스러운 보름달의 밤이 지나갔다.
나에게 남은 가을은 지금보다 소란스럽지 않을 거라는 작은 쓸쓸함이 몰려오지만 그럼에도 몇 번의 계절이 더 반복될 거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아린다.
달력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날을 여름의 빗금으로 하나씩 지우며 일부러 조금 더 소란스러워지고 싶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흩어져있는 가을의 조각들을 한 군데 불러 모아 통째로 꿀꺽 삼키고 싶다.
오물오물 오랫동안 아껴서 소화시키고 싶다.
허기진 마음을 이 계절로 가득 채우고 싶다.
가을이 차려낸 만찬을 남김없이 먹어치워 깨끗하게 비운 후 빈그릇 같은 맑은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소란>을 읽다가.
"장마가 지나고 나면 여름은 더 맹렬하게 푸른 독을 뿜어내겠죠? 다행이에요. 계절이 반복된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습니다. 여름이 가을에 잡아 먹히면 그 다음은 차가운 미소를 짓는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안심이에요. 자꾸 잡아 먹혀도 완전히 사라지는게 아닐 거예요" (34면)
이 에세이를 쓴 후 마음에 이때의 풍경이 오래 남아 며칠후 노랫말을 작사했습니다.
함께 이 계절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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