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행 취소, 새로운 미국행
나 또 어떡하지?
그렇게 밀어붙인 런던행을 출발하기 일주일 전 나는 런던으로 떠날 생각에 설레는 기분으로 미용실을 들렸다. 그리곤 한동안 또 해외에 있을 생각에 귀밑 3센티 단발로 싹둑 잘라버렸다.
오랜만에 하는 숏단발에 가벼워진 머리만큼 가벼워진 마음이다. 그렇게 귀가하고 있는데 조그맣게 들려오는 내 폰의 카톡 알림음.
그리고 내 폰 화면에 뜬 카톡 하나.
죄송하지만 저희 에어비엔비를 예약하셨던 손님분들이 코로나로 인해 다음 달까지 다 취소를 하셔서 부득이하게 스텝을 쓸 여력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가벼워졌던 내 마음은 또다시 무겁게 툭 내려앉는다.
내가 어떻게 결심한 나의 두 번째 여정인데, 이미 머리도 잘랐는데, 이미 여행 준비물도 다 샀는데, 이미 짐까지 거의 다 쌌는데.
난 또 그렇게 혼란스러운 머리를 움켜쥐고 한동안 혼자 방 안에서 걷잡을 수 없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딱 한국에서 막 코로나가 갑자기 퍼지고 있던 바로 그 시기. 우리나라를 입국 제한 혹은 입국 금지하는 국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행여나 영국도 입국 금지시킬까 봐 노심초사하며 출국날짜를 최대한 앞당겨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또 끝나버리다니 너무나도 허무하고 슬프기만 하다.
그런데 난 이 순간에도 또 나의 이 답답하고 속 터지는 내 성격이 원망스럽다. 내가 좀 더 빨리 이 선택을 했더라면, 난 이미 해외에 있을 텐데. 나의 또 이 생각 많음 때문에, 나의 또 이런 결정장애 때문에 선택이 늦어졌고 그로 인해 출국일이 늦어졌고 그래서 결국 이렇게 돼버린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당장의 결정을 미루고 이것저것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만’ 하는 내가 너무 답답하기만 하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보다 추진력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 그럼에도 그냥 가거나 당장 갈 수 있는 다른 국가행 비행기표를 끊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난 여전히 비행기표를 끊기는커녕 그 다른 국가에 대한 옵션만 늘어다 놓고 비교하고 있다.
나 정말 또 어떡하지?
무엇이든 도전해볼 수 있는 나이
날이 갈수록 한국의 코로나 상황은 심해져 우리나라를 입국 제한 혹은 금지하는 국가의 수는 늘어만 가고 그에 따른 내 마음은 타들어만 간다. 다른 국가들이 우리나라를 입국 제한 혹은 금지하기 시작할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안 되겠다. 입국 금지하기 전에 어디로든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에게 선택권은 많지 않다.
남아있던 몇 안되던 영어권 국가 중 호주가 한국인 입국 금지를 시켜버리고 나에게 남은 건 캐나다와 미국뿐이다.
그래서 난 또 급하게 캐나다와 미국에 대해 알아본다.
사실 캐나다와 미국은 아르바이트는 불가했기에, 영주권을 목표로 한 취업자리를 알아봐야만 한다. 일단 다시 영문이력서를 수정하고 닥치는 대로 캐나다와 미국의 일자리에 이력서를 넣어본다.
그렇게 몇 주간을 진행하던 중 나는 미국의 두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사실 미국과 캐나다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캐나다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을 곁다리로 놔둘 수밖에 없다.
솔직히 캐나다가 아닌 미국이라 그렇게 끌리지는 않지만 일단 면접 일정을 잡고 준비해본다.
어라, 그런데 면접을 보고 나니 뭔가 끌리는 이 느낌은 뭐지. 처음으로 '아,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래 하던 직무와는 조금은 다른 분야 쪽이지만 면접을 보는 동안 나와 소위 ‘합’이 잘 맞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곳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조금 흥분되기도 하다. 다행히 면접 합격 통보까지 받아 새로운 일을 할 생각에 설레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최종 결정을 앞두고 생각 많은 나의 머릿속은 또 복잡하다. 문제는 현재 내가 이 곳에서 일하는 신분이었던 1.5년짜리 단기취업비자. 이후 장기 취업비자 혹은 영주권 스폰서를 약속해 준 상태이긴 했지만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나는 1.5년 후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지금 이 나이에 이 선택을 하는 게 맞을까?
또다시 고민하던 중 미국 이민 카페에 올라온 하나의 글에 달린 여러 댓글을 보게 되었다. 30대 후반 미혼 남성분이 미국 취업에 성공했지만 그 나이에 가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있는 글이었다. 그 글의 댓글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은 차츰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댓글의 대부분의 내용은 이랬다.
38살이면 젊어요. 아직 도전해보기 충분해요.
내가 그 나이로 돌아간다면 당장 미국으로 어떻게든 오겠어요.
뭐든 다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고민하지 마세요.
그렇다. 이 말은 지금 34살인 내가 예전의 30대 초반, 20대 후반의 나에게 던지던 말이었다. 그 나이 대에 퇴사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나를 지금의 나이에 바라보면 참 어리고 무엇이든 도전해볼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런데 34살이 된 지금에는 또 지금의 내 나이가 너무 많아 보여서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두렵다니, 나 원 참.
저 댓글 속 좀 더 인생을 살고 있는 분들이 38의 나이도 뭐든 해볼 수 있는 나이라고들 하는데 그보다 4년을 덜 산 내 나이는 얼마나 더 뭐든 해볼 수 있는 나이인가.
지금의 내 나이가 늦었다는 생각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길게 놓고 보았을 때 100살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대에 살아가는 나는 아직 고작 내 인생의 1/3 조금 넘게 살아온 건데 벌써부터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은 건지. 지금 실패한다고 내 인생이 망하는 것은 아닌데,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왜 그렇게 늘 새로운 것 하나하나를 시작할 때마다 걸림돌이 되는지.
그래, 한번 해보자. 나중 일은 나중에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회사에서도 스폰을 해주겠다는 입장을 바꿀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한다면 그들의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은 있다. 그 이외의 것들은 이제 나의 운에 맡겨보자. 해보고 나의 것이 아니라면 그때는 미련 없이 흘러 보내자.
이렇게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니깐.
그 기회를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으로 날려버릴 수는 없다.
일단 저지르는 것, 일단 도전해보는 것.
그게 내 인생의 지금 이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