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행문과 여행 안내서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예스러운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은좁은 골목의 풍경 사진과 함께 말이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한낮의 풍경이거나 빈 공간으로 대비되는 고즈넉한 골목들, 누군가의 삶이켜켜이 쌓여온 흔적이라는 메시지는 유사하다. 다만 차이라면 아직도 그 삶이 지속되느냐끊긴 옛 풍경이냐는 것.
40년 넘게 한 동네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몰론 결혼 후 이사는 했지만 그래 봤자 걸어서 10분 거리다) 삶의 각도를 조금씩 달리함에 따라 더 찾거나 덜 찾는 길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령 30년 전의 등굣길은 왼쪽, 지하철로 향하는 지금의 출근길은 오른쪽 골목과 닿아있다.
일요일 아침, 성곽길을 따라 한 시간여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뻔한 길을 놔두고 그 30년도 더 된 등굣길을 택했다(엄밀히 말해 하굣길 방향으로 걸었다). 물론 30년 전의 집과 지금의 집은 위치가 달라 끝까지 같은 궤적을 따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나라의 여느 도시보다 더한 서울에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싶지만, 사는 이 바뀌어도 학생 시절 지나던 골목집들은 그대로이다. 그밖에 병원이며 약국이 그 늙어가는 주인과 함께 색을 바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점은 그리 쉽게 바뀌는데 말이다. 왜 예전 어른들이 공부 열심히 하라는지 진작에 깨닫고 있었지만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하굣길 마주한 같은 반 친구의 옛 집.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 살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그러진 표지판처럼 다시 바로 잡을 새 없이 일방통행의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길을 지나 이젠 나의 옛 집과 지금의 집이 갈라지는 지점에 도달하고 만다. 그곳엔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함께 다니던 이발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말인즉슨 진즉에 사라지고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작은 건물로 남아있다는 말이다.
이젠 기억 속에도 많이 희미하지만, 타일로 만들어 머리를 헹구던 곳이며 의자는 세 개쯤이었던가...
경찰서 앞에 위치하고 있어 제복을 입은 손님들이 많았다. 깊숙하게 뻗은 가게 안 쪽은 이발사의 집이 아니었다 싶다.
'잊히지 않는 한 살아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느 영화에 나온 구절인지, 어디 먼 나라의 속담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것'... 내가 그 이발소를 기억한 순간 살짝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이발사의 손길에 그 얼마 되지도 않는 백발의 머리칼을 맡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 그렇게 할아버지는 멸하지 않는 것일까?
'외로운 삶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고 말겠구나.'
퍼뜩 누군가로부터 잊힌다는 게 무섭게 다가온다.
우리는 말로써 혹은 생각으로그 대상을 불러낸다. 이십여 년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나는 오늘 그렇게 불러내었다. 하지만 내가 불러낸 것은 그 실체가 아니다. 그분의 이미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혹은 우리는, 삶의 조각들을 세상 여러 골목들에 뿌렸다 다시 주워 맞추고선, 또 조심스럽게 내려놓길 반복한다. 나를 기억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기 위해 말이다.
그 당시 종종 하교를 함께 한 이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