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Jan 18. 2022

수취인불명

하염없이 눈 나리는

북쪽의 밤,

사람들의 그리움이 모이면

눈이 되어 내리는가 보오

카이의 심장에 박힌

얼음조각이

오늘은 내 처마에 고드름으로 열렸다오


모진 겨울 바람 속

떨고 있는

겨울 나무들

침묵하고 견뎌내는 이유를

그대는 알고 계시는지요


부지런히 봄을 만드는

나무의 마음이

사랑 아니면 무엇이겠소

새하얀 눈꽃들이

나무에 스며들면

그리움의 씨앗들

수액 머금고 움틀거들랑

꽃눈으로 다시 피어난

정다운 약속


봄을 기다리며

눈물 흘리는 그대 심장에

겨울 나무 수액 같은

엽서를 하나 보내오

북쪽의 끝

전설의 땅에는

피우지 못한

사랑이 설우어

스스로 박제된

눈의 여왕이 살고 있다오


제퓌로스의 바람에

다사로운 봄 햇살

한줌 쥐어

회신없는 서신을

매양 보내오


그것이

사랑 아니면 무엇이겠소






이 곳은 늘 눈이 내립니다. 눈이 내렸다가 쌓이고 잠깐 해가 떠서 녹으면 금새 또 눈이 내려 쌓이기를 반복합니다. 오늘은 유독 눈보라가 쳐서 무릎이 시려 왔습니다. 두터운 담요를 덮고 있어도 미세한 구멍 사이로 스며드는 찬 바람을 느끼는 무릎의 까칠함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지요. 그런 무릎과 연동된 마음인지라 어쩐지 헛헛해 이럴때마다 먹는 얼큰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냉동실에서 밀가루를 꺼냅니다. 물만 넣고 만든 반죽인데,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육수에 호박, 양파, 감자, 마늘 그리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후 반죽을 뚝 떼어 보글보글 끓이면 한 겨울 추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추위도 누그러뜨리는 천상의 음식이 탄생하지요.


오늘 아침, 브런치의 '동네책방 할아버지' 작가님의 아릿한 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를 읽고 하루종일 그리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글이 주는 여운이 아주 길었던 것 같습니다. 감기에 전염된 것처럼 그 외로운 정서에 저도 모르게 감염되었지요. 심리학 용어로 '전이'라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것일까요? https://brunch.co.kr/@8f9a2600daab4e9/57#comment


사람은 누구나 그리움 속에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침에 출근한 직장인은 퇴근이 그립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놀이가 그립고, 사랑하는 연인과 떨어져 있는 사람은 연인이 그립고, 멀리서 기러기 아빠나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족이 그립습니다. 백발이 성성해진 자식은 먼저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의 질책으로 좌절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감이 그립고, 고립되어 막막한 사람은 소통이 그립고, 실패에 빠진 이는 성공이, 성공을 한 이는 그 성공의 지속됨이 그리울 것입니다. 시샘하는 사람은 사실 시샘하는 자를 그리워하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평온을 그리워합니다. 평온한 사람은 반대로 모험을 그리워하지요.

하지만 그 모든 그리움은 어떤 이유로든 다 눈물 겹습니다. 추위를 피해 따듯한 불을 찾 듯, 허기가 지면 배를 채울 음식을 찾 듯, 그리움은 부족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채우려는 지극히 당연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몸부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모든 그리움이 애틋하고 마음쓰게 되는 이유는 그리움에 담긴 결핍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핍 없는 삶보다는 차라리 결핍 있는 삶을 택할 것입니다.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하는 것은 결핍을 앎으로 비롯되는 공감이 아닐런지요. 당신의 아픔을, 당신의 상실을, 당신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야 말로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처럼 시려운 세상에서 묵묵히 추위를 견뎌내는 겨울 나무의 약속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토닥토닥 스스로의 마음을, 그리움의 모든 마음들을 위로하고 싶어 시를 토해내는 눈 내리는 밤입니다.


얼큰 수제비 한 그릇 뚝딱 했더니, 무릎도 마음도 조금 덜 시렵습니다. 추운 겨울날, 추운 마음밭에 따듯한 수제비 한그릇 제각각 비워 보심이 어떠실런지...



눈의 나라에서 작은나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