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일이 있어 외출한 날,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거의 블리자드급 눈이 내리고 있었답니다. 4월 19일인데 이렇게 눈 내리는 거 실화야? 막 이러면서 돌아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5월에 봄이 온다고 해서 설마 설마 하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어요. 바로 요 며칠 전 햇살이 너무 좋아 근처 호숫가로 봄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이제 진짜 봄이다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이건 뭐 거의 한겨울 수준으로 눈발이 날리고 쌓였습니다. 어쩐지... 날이 따듯해졌는데도 나무의 꽃봉오리들이 꽃송이를 틔울 낌새가 전혀 없더라고요... 꽃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변덕스러운 캐나다 날씨를 말이죠. 캐나다 전체가 이렇다는 건 아닙니다. 해양성 기후로 따듯하고 온화한 밴쿠버나 빅토리아는 이미 봄이 완연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비록 미국에 인접한 남쪽 지방이라도 내륙이라 그런지 여전히 눈 소식이 있는 거죠.
그런데... 4월에 내리는 눈도 꽤 근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 4월에 내리는 눈을 맞아 보겠나 싶어, 지금 이 날씨를 즐겨보기로 했어요. 캐나다의 황톳빛 목조 주택과 침엽수림에 쌓인 눈이 꽤 잘 어울리네요.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밖으로 달려 나가는 둘째가 이미 저만치 커다란 눈덩이를 뭉쳐 놨네요. 강아지와 아이들은 눈을 참 좋아합니다. 어른이 되면, 내리는 눈보다는 눈을 좋아하는 강아지와 어린아이들 보는 게 더 좋아진다는 차이가 있네요. ^^
영차, 영차, 눈을 굴려서,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자~~^^
나무와 잔디에 쌓인 눈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줬어요. 나무 숲 사이로 걸어가면 어디가 나올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했고요.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눈의 마녀의 왕국으로 이어진 길은 아닐까요?
저 가냘픈 침엽수들... 실제로는 추울 텐데... 눈이 꼭 이불처럼 감싸주는 것 같은 이 기분...
눈보라가 몰아치거나, 비가 내려 으슬으슬한 날에는 한국식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 져요. 런던 시내에 다행히도 치킨 플러스가 입점해 있어서 가끔 떡볶이와 한국식 치킨을 포장해서 홈식을 달래보곤 합니다. 눈 오는 날 빨간 국물 떡볶이는 정녕 힐링입니다. ㅠ.ㅠ
크~~~떡볶이 자태 참 곱다!
오후가 되어 눈이 그쳤는데 다음날 새벽, 눈을 뜨고 거실로 내려오니 세상에 그새 또 눈이 내렸어요. 제법 쌓인 것을 보니 밤새 내린 것 같아요. 오늘이 4월 20일인데...
날씨가 이러다 보니 거실에는 여전히 두툼한 담요가 있어야 합니다. 이른 아침에 거실로 내려오면 약간 쌀쌀하거든요. 캐나다는 온돌식 난방이 아니다 보니 바닥이 조금 차요. 그래서 도톰한 양말이나 슬리퍼는 필수랍니다.
캠핑이 너무나 가고 싶은데 이렇게 날씨가 변화무쌍하니, 차마 시도는 못하고 거실 한편에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해 뒀어요. 여기 앉아 바깥을 바라보며 밥을 먹으면 마치 캠핑 온 기분이 조금 들거든요. 구이 바다 올려놓고 삼겹살을 굽고 맥주를 마시면 그럭저럭 캠핑 맛이 나긴 합니다. 아~~ 빨리 날씨가 따듯해지고 초록이들이 울창해지길, 캠핑 너무 가고 싶구나아 ㅎㅎㅎ
언젠가부터 새벽을 깨워주는 새가 있어요. 새소리가 참 곱고 이뻐서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하지요. 어떤 새일까 늘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알아냈어요. 바로 저 녀석이었답니다.
눈이 제법 날리고 바람도 찬데 가냘픈 나뭇가지에 서서 아침을 노래하는 저 새는 어떤 종일까, 무슨 사연이 있어 아침마다 노래 하나 퍽 궁금해집니다. 이웃 나무에는 비둘기 패밀리가 살아요. 7~8마리 정도가 모여 살지요. 하지만 따듯한 한 낮에나 나오지 이렇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는 비둘기 패밀리들도 어디선가 눈을 피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요 녀석은 날씨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4월 말에 내리는 눈이 너무 황당하고 신기해서 이렇게 소식을 전해봅니다. 한국은 한낮에 꽤나 따듯하다고 들었습니다. 동방의 봄바람, 딴 데로 새지 말고 이리로 불어오라고, 봄바람을 소환해 봅니다. 도대체 봄은 언제 오는 거니?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