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년 만의 만남이었다. 대학시절 매일같이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던 그녀들과의 만남은 언제고 쉽게 성사된 적이 없었다. 각자 아이 둘씩을 키우며 워킹맘을 자처했기에 쉽사리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랬던 우리가 드디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던 건 모두의 바람이 모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숨만 쉬어도 땀이 뻘뻘 흘러나와 속옷을 온통 적시는 한낮의 여름날이었다. 무더위를 피해 실내 곳곳을 누비다 더는 갈 곳이 없어 향했던 공원이었다. 살랑이며 부는 바람이 조금은 더위를 잊게 만드는 듯싶어 그늘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았다. 바리바리 챙겨 온 간식들 위로 정겨운 이야기들이 오갔다.삼십 중반의 나이를 달리고 있었지만 우린 여전히 이십 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맑고 고왔던 이십 대 청춘의 눈빛과 마음들이 변함없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바로 어제 경험한 일처럼 생생했고, 유쾌했으며, 행복했고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금 꺼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의 벗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자녀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엄마들이 있는 곳을 힐끔 쳐다봐가며 자신들의 안전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우리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철봉에 매달리기도 했고 술래잡기와 숨바꼭질도 하는 듯 보였다. 언니 둘의 진두지휘 아래 사이좋게 놀이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땀으로 눅진하고 번지르르해진 우리의 얼굴은 꽤 시간이 흘렀음을 알리고 있었다.
"○○가 안 보이는데?"
친구의 말에 ○○ 엄마인 친구가 목을 쭉 빼고 사방팔방을 두리번거렸다.
"어? 정말이네. 얘가 어딜 간 거지."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친구는 자신의 샌들을 대충 발에 걸치고는 큰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나갔다. 우리와 함께 앉아 있던 3, 4세 유아들을 유일하게 모임에 참석한 친구의 남편에게 맡긴 채 허둥지둥 따라 일어났다.
큰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남자인 그 동생에게 여자들만 하는 놀이가 있어 오지 말라고 했단다. 그런 이유로 토라진 그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고 하는데 이후에는 보질 못했다고. 우리 셋은 아이가 갔다는 그 방향으로 흩어져서 아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찾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를 따라 큰 아이 둘도 없어진 아이 이름을 외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만난 한 할머니에게 아이의 행방을 알만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애 엄만가? 아까 한 남자애가 울면서 엄마를 찾길래 어떤 할머니가 저기 도서관으로 데리고 가서 방송한다고 하던데. 도서관으로 가 봐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서 고민할 새도 없이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의 건물을 향해 일단 뛰었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거칠어진 숨소리에 실린 음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까 최대한으로 큰 목소리를 내야 했다. 뛰고 또 뛰었다. 여름 슬리퍼를 신었기에 뒷굽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지만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즈음 도서관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쉼 없이 뛴 탓에 목구멍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다. 시커멓게 타들어간 마음이 온몸으로 전하는 고통이 너무도 컸기에 목이 따끔하고 아파오는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내 소중한 친구가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그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 견딜 수 없이 아파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도서관 곳곳을 뛰어다니며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었다. 울고 있는 6살쯤 되는 남자아이를 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나의 질문에 조금 멀찌감치 서 있던 할아버지가 1층 정문으로 가 보라고 하셨다. 남자애 하나가 울고 있어서 직원이 데려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즉시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빠르게 달려 올라갔다. 일평생 내 몸뚱이가 그렇게나 날렵한지 알지 못했다. 마치 독수리가 먹잇감 사냥을 하듯 잽싸고 날랜 모습이었다. 후다닥 올라간 그곳에서 드디어 OO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딴곳에서 두렵고 무서웠을 아이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경찰 한 명과 어른 둘 사이에서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예상과는 달리 침착했고 편안해 보였다. 앞서 많이 울었지만 곧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걱정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생각보다 담대했고 당찬 모습이었다. 여러 명의 어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시립 도서관까지 오게 되었고, 다행히도 경찰서로 가서 지문을 찍어보기 전에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잠시 후 친구들이 도착했다. 아들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눈물의 상봉이었다. 보는 이들마저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게 만들었다.
아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던 일등 공신은 마을의 어른들이었다. 아이를 찾는 간절하고 처절했던 그 외침을 흘려듣지 않고 귀 기울여 들어준 어른이 있었기에,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자 아낌없이 간식을 내어준 어른이 있었기에, 부모보다 더 빠르게 도착해 아이의 신변을 보호해 주었던 경찰이 있었기에 아이는 무사히 엄마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그들의 작지만 커다랗던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더 큰 문제가 닥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이 한 명을 키워 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수고가 굉장하기에 주변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돌이켜보면 우리 아이들 또한 그러했다. 언제나 바빴던 남편 탓에 아이들을 혼자서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결코 혼자 크지 않았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다양한 선생님들로부터 올바른 교육을 받았고 그들이 주는 사랑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친구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해서는 안될 말과 행동을 구분하게 되었으며, 공동체 사회 속에서 잘 섞여가기 위한 방법도 체득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일하러 간 사이 친정 엄마가 정성껏 돌봐 주었기에 아이들은 마치 콩나물처럼 쑥쑥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며 가며 마주한 어른들이 먼저 건넨 한마디 인사 또한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주된 요인이 아닐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때가 많이 찾아온다. 무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보다는 아이의 작은 실수에 집중하게 되는 그런 날 말이다. 오늘의 하루가 내일의 하루를 보장할 수 없기에 오늘을 무사히 살아낼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먼저 가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 마음은 육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스스로를 탓하며 후회로 물든 하루를 돌아보는 대신 오늘 느끼고 받았던 감사함을 내일은 반드시 다른 이에게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떨까.지나친 미래지향적인 삶은 후회를 남기는 현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종종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떠올리며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전해 보자.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만들어 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