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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세계 1

by 안지안

지유정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은 - 「그날 밤」 남아있던 세상의 어쩌면 유일한 두 사람의 조우였음에도 - 아직까진 주원의 세상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은 티가 나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날 둘의 접촉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쯤 어딘가 멀리서 조용히 바람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거대한 태풍이 되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전혀 아닐 수도 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는 사실, 혹은 여러 명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그날 밤」의 진실에 다가가는 데엔 사실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 정보만으로 바뀌는 건 없었다. 방정식으로 말하자면, 곱셈이나 나누기가 아니라 더하기 1 정도의 임팩트였다. 적어도, 「그날 밤」을 「풀어야 하는 문제」로 보는 입장에선 그랬다.


반면, 「그날 밤」을 대하는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큰 안정감을 불러왔다.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날 밤」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실재했다는 새삼스러운 확신을 주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그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었다. 세상이 이루어지고 돌아가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본인만 모른 채로, 중요한 것을 놓친 채로 살아온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원은 실제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고 다들 대수롭지 않게 「그날 밤」을 각자 겪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다행히도 세상은 원래 자신이 이해하던 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단단히 할 수 있었다. 자기가 뭘 몰랐거나 이상했던 게 아니라, 분명히 「그날 밤」이 비정상이었던 것이다.


주원은 사무실에서 자신의 자리에 앉아 「그날 밤」을 겪었던 사람들이나 비슷한 경험에 대한 사례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있었다. 그녀와 말한 대로, 누군가가 더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면, 얼마든지 더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확률이 훨씬 더 클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그날 밤」 사라지지 않은 사람이 주원 자신과 지유정이라는 여성, 딱 둘이었다면, 그 둘이 <쥬니방가이>라는 주원이 처음 가봤던 「이자카야」 앞에서 마주칠 확률은 과연 얼마나 희박한 것일까. 당연히 여러 명이 있으니 그중 두 명이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 확률이란 단어 자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인터넷은 아무런 정보도 내어주지 않았다. 주원은 “세상이 사라지는 현상”, “밤에 사람이 사라지는 현상”, “시간 반복”, “타임 루프”, “12시 8분”, “초현실 현상 경험담”, 등 그의 머리로 짜낼 수 있는 모든 키워드나 관련 문장을 짜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것으로는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타임 루프”나 “시간 반복”은 너무나 많은 영화와 소설의 소재로 쓰이고 있었지만, 정작 흔하디 흔한 “경험담”을, 주장이라도 하는 사례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아무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는데 그와 관련된 창작물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묘한 일이었다. 그나마 주원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배니싱”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나 사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사례들의 대부분은 결국 행방불명이나 실종 사건에 관한 것이어서,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주원이 겪었던 초자연적인 일과는 궤를 같이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례들 중에서 사건 그 자체로서 주원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것은 로어노크 섬과 관련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종된 사건이었다.


1587년, 북미를 개척하던 영국의 존 화이트 총독은 115명의 이주민들과 함께 <로어노크>라는 섬에 정착했다. 2년 뒤, 총독은 여왕에게 성과를 알리고 보급품을 받아오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갔는데,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인해 귀환 일정이 무한 지연되었다. 결국 그가 다시 <로어노크>로 돌아온 것은 1590년이었다. 그리고 그가 도착했을 때, 섬의 정착민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전쟁이나 폭력에 저항한 흔적도 전혀 없었다. 딱 한 가지 남겨진 것은 울타리에 새겨진 “크로아탄”이라는 단어뿐이었다.


인터넷엔 현재까지도 <로어노크> 섬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관하여 여러 가지 가설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스페인 군에게 잡혀갔다거나, 주변의 원주민들에게 몰살당했다, 혹은 화이트가 남겨놓고 간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하다가 바다에서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존 화이트는 “크로아탄”이 정착민들이 <로어노크>를 떠나면서 남겨놓은 단서라고 생각했다. 주원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크로아탄>이라는 섬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존 화이트를 기다리던 정착민들이 자원과 물자가 더 풍족했던 그곳으로 이동해 그곳의 원주민들과 융화되어 살아갔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화이트는 떨어져 가는 물자와 지친 선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이유로 <크로아탄>을 가보지도 못한 채 영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1593년에 영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아마도 마지막 날까지 <크로아탄>을 방문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고 한탄하며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가 그곳에 영원히 남겨놓고 온 것은 자신의 딸과 사위, 그리고 버지니아 데어, 그의 손녀였다. 버지니아 데어는 처음으로 북미땅에서 태어난 영국계 미국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쨌든 <로어노크> 섬의 「배니싱」엔 적어도, 논리적인 추론이라도 할 수가 있었다. 반면 주원은 「그날 밤」에 관하여 그 어떤 가설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은 그를 위해 그 어떤 「크로아탄」도 새겨놓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논리의 가지를 뻗어봐도, 너무나 당당하게 서있는 비논리의 벽에 가로막혀 틱틱 부러지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논리란 「그날 밤」 있었던 모든 기상천외하고도 괴랄했던 현상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사라진 것도 모자라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사고를 멈추게 했다.


생각해 보면, 주원 본인도 자신이 겪었던 「그날 밤」에 대해서 인터넷의 어딘가에 주저리주저리 토로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날 밤」을 겪은 다른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조용히 지내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마음이 갑갑해졌다. 벽에 딱 붙어있는 시계가 어느덧 6시를 가리켰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 주섬주섬 짐을 가방에 넣는 소리가 났다.


“팀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사무실에서 덩치가 가장 큰 홍기자가 불쑥 책상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 하던 것만 마저 하고 나도 해야지.”


“그럼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응 수고했어요.”


홍기자 뒤로 서있던 기자들과 직원들이 한꺼번에 인사하며 우르르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임주원의 명함에는 편집자라고 쓰여있었지만, 내부적으로 그는 <편집기획팀>의 팀장이었다. 그가 뭐라고 불리는 것에 주원은 그다지 집착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명함에 적힌 그의 직함과 불리는 직함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그는 자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편집“자”가 있는데 편집“장”이 따로 있다는 것 또한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다소다>같이 작은 잡지사에 굳이 편집자와 편집장의 구분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은 이곳의 대표가 가져갔다. 편집장이 본래 책임져야 하는 수많은 업무 중에서 영업 쪽 일에만 치우친 그가 굳이 자신이 편집장을 자처한 것은 대외용 이미지 때문이었다. “대표”라는 어감이 올드하고 멋이 없다는 게 그의 입으로 직접 설명했던 이유였다. 편집장의 일은 대부분 주원이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김대표는 주원에게 편집장이라는 타이틀까지 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편집“장”이 해야 할 일을 주원에게 맡겨야 하니, 아마도 적당히 편집“자”라는 직함을 하사한 것이다. 이 김준경이라는 대표 및 편집장은 그런 걸 많이 따지는 부류였다. 그는 “편집장”과 “대표”가 적힌 명함을 따로따로 들고 다니면서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르게 꺼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출근하지 않았다. 아마 어제도 그의 법카로 영업이랍시고 어딘가 화려하고 비싼 곳에서 고급술을 진탕 먹었을 것이다. <쥬니방가이>같은 곳에서 말이다.


지유정, 그 여자가 생각났다. 정말로 「그날 밤」에 갇혔던 건 그녀와 자신뿐이었던 걸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왜? 둘은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아무런 접점도 없는 철저한 타인, 완벽히 낯선 사람들이었다. 둘은 같은 성도, 같은 직업도, 심지어 같은 나이도 (아마도) 아니었다. 사는 곳도 달랐다. 그나마 둘의 일터가 꽤나 가깝긴 했지만 설마 하니 그런 것 따위로 그들이 엮이진 않았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둘은 겹치는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지식에 관한 걸까. 둘만이 알고 있는 세상의 무언가가 둘을 남겨두게 한 걸까. 알아서는 안 되는 걸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둘만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혹시 그저 무작위 한 일이었을까. 랜덤으로 두 사람이 남겨졌다? 그런데 그 둘이 운 좋게 딱 마주쳤다? 마침 딱 처음 가본 이자카야 앞에서?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쇼펜하우어는 그랬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이해 정도와 인식의 한계 내에서만 세상을 바라볼 뿐”이라고. 그의 말이 사실일 것이다. 주원 자신의 이해 정도와 인식이 모자란 것이다. 결국 그게 이유일 것이다.


“세상은 나의 표상이다.”


역시 쇼펜하우어가 했던 말이었다. 그에 의하면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지각과 자각, 그리고 의식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다지 어려운 말은 아니다. 모두가 같은 장미를 보고 같은 빨간색을 보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색 수용체가 있다. 빨강, 초록, 파랑. 그 세 가지를 적당히 섞어서 이 세상을 보고 머릿속에서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눈의 성능에 따라 사과가 띄는 빨간색의 정도가 각자 다 다르다. 색맹이라면 우리가 아는 그 빨간색이 없는 세상에 살 것이고, 맹인이라면 아예 장미 자체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장미가 빨갈수록 눈이 좋은 것이라고 할 수도 없거니와, 실제로 장미의 빨간색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소리도 귀의 성능에 따라서 어떤 이는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고 어떤 이는 그것이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의 귀가 들을 수 있는 음역대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아는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주관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이 표상이라는 말은 단순히 감각적인 부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닐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나.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 세상의 범주는 넓을 것이다. 상념이 깊은 사람의 세상은 심층적일 것이다. 인과(因果)를 깨우친 이의 세계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가 쉴 새 없이 현재에서 연결되고 있을 것이다. 우주의 크기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먼지같이 작은 세계에 살 것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의 세상은 자신의 세상도 편협하게 좁을 것이다. 결국,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게 아녔을까. 그것에 토를 달만한 적당한 논리가 주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독일 철학자는, 세계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 즉 현상일 뿐, 사물 그 자체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지」라는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힘으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는 알 수 없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때문에 세계는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그게 사실이라면, 주원의 「그날 밤」의 경험과 지각이 객관적 세계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객관적 세계에서는 「그날 밤」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가 아직 표상하지 못한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딱 두 가지의 색 수용체를 가지고 있는 개는 세 가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빨간색을 표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인식능력과 감각, 그리고 사고체계 이상의 「객관적 세상」이 실재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주원 자신에겐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미지의 세계가 주원 자신에겐 그저 「그날 밤」 있었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만 비친 것이다. 제자리걸음을 하던 지하철과 구름 그리고 엘리베이터, 사라진 사람들, 반복되던 시간, 반복되던 노래, 계속해서 차던 와인잔, 차지 않던 욕조의 물, 그것들은 모두 그와 유정이 인지하고 해석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였던 것이다. 그들이 보지 못한, 아직은 볼 수 없는 객관적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과연 극복이 될 수 있는 부분일까? 아니면 두 개의 색 수용체를 가진 개들처럼 영원히 볼 수 없는 장미의 빨간색 같은 세계일까? 눈을 감아버릴 듯이 가늘게 떴던 그 달 뒤로, 빽빽하던 어둠의 하늘 너머로, 누군가가 장막을 쳐놓았다. 그 장막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날, 보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정이란 여자가 겪은 일 역시 결국은 ’유정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둘은 「그날 밤」부터 둘만의 세계관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둘만의 표상이 생겼고, 그들이 겪었던 밤을 겪지 못했던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녔다. 그는 그 여자와 더 가까워져야 한다. 그는 그 여자에 대해서 더 알아야 하고, 그녀 역시도 그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들의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 밤」의 표상에 대한 답은 서로에게 있을 것이다.


그는 곧바로 유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답지 않게 꽤나 충동적이고 급진적인 행동이었다.


「안녕하세요 유정씨, 혹시 아직 일 중이신가요?」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가 직장을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이라고 보통 표현하는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중이신가요?’ 보다는 덜 어색한 어감이라서 그렇게 말했다.


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곧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생각보다 답이 오래 걸리지 않아 조금은 놀랐다. 왠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문자나 연락이 잘 닿지 않을 거라는 그런 인상이 그에겐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화실이에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녀가 물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

시겠습니까?」


‘하시겠습니까?’…? ‘습니까’ 라니, 도대체 왜 평소에 쓰지도 않는 말투가 나와버린 걸까. 주원이 자책을 하며 급하게 또 하나의 문자를 보냈다.


「아 혹시 일 중이신데 제가 곤란하시게 한 게

아닌지… 죄송합니다.」


‘혹시’라는 단어를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을 이미 문자를 보내버리고 난 뒤에 했다.


「네 제가 마무리가 살짝 남아서 혹시 괜찮으시

면 이쪽으로 와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녀 역시 “혹시”라고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은연중의 호감의 표시일까. 물론 인간적으로 말이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주소로 이동했다.


밤거리는 차가웠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지만 공기가 단단하고 찼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여기저기서 화이트노이즈처럼 거리의 배경에 벌써부터 깔리기 시작했다. 전구가 칭칭 감긴 소형 트리나 붉은색 리본이 달린 동그란 화한 같은 크리스마스 장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수의 생일과 이것들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그는 알 수 없었지만, 연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 장치들이 그는 싫진 않았다. 이 추운 겨울에 이런 재미라도 있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이 믿고 이해하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걸 깨달은 주원에게, 세상은 예전처럼 빤히 정돈된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 그의 세상은 단순히 그가 이해하는 만큼만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그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 넘지 못하고 있는 벽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왠지 생각보다 그렇게 복잡하거나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물론, 그런 비슷한 안일한 생각은 「그날 밤」에도 했었다. 지하철 역만 나가면 뭔가 의문이 다 풀릴 것만 같아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생각만큼 세상은 아직까지 그렇게 그의 기분에 따라 술술 풀리고 있진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유정이 찍어줬던 주소에 거의 다 와가고 있었다. 성수동 특유의 운치가 있는 골목이었다. 골목 안 쪽으로는 핸드메이드 싸인이 붙은 편집샵들과 카페들이 자신들만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서로 잘 어우러져 있었다. 그녀가 알려준 주소에 이르렀을 때 그는 <파타 모르가나>라는 카페 앞에 우뚝 서있었다. 붉은색 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2층짜리 재생건축물이었다.


그는 어찌 된 영문인지 건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이라고 했는데, 이곳은 틀림없이 카페였기 때문이었다. 안에서는 시끄럽지 않은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렸고 은은한 커피 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간판을 재차 확인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Cafe」 <Fata Morgana>라고 쓰여있었다.


때마침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원씨 혹시 거의 다 오셨나요?”


“네, 저 그게… 여기 주소로 와보니까 웬 카페가 있는데.”


“아, 네 제가 금방 나가겠습니다.” 그녀가 급히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건물의 왼쪽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끼이익하고 나며 유정이 나타났다. 그는 그 소리가 나기 전까지 그곳에 철문의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잘 찾아오셨네요.” 유정이 살짝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손으로 짜여진 겨자색 스웨터를 입고 그 위에 물감이 범벅인 검은색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네 지도 앱 켜놓고 보면서 오니까 그렇게 오래 안 걸리더라고요.”


“거의 다 끝났는데 혹시 잠깐 들어오시겠어요?”


“아 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왠지 화가의 작업실은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금기의 영역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주원은 유정의 권유대로 소파에 앉아 두리번두리번 작업실을 구경했다. 내부는 우드톤으로 그득했다. 거의 모든 것이 나무로 되어있었고, 플라스틱이나 메탈로 된 가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곳곳에 유화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안락한 곳이었다. 가운데에 세 개의 이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 올라간 캔버스 위로 유정이 붓을 들고 가로방향으로 부드럽게 무언가를 도포하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느낌상 일종의 코팅을 하는 작업처럼 보였다.


그때, 느닷없는 “야옹”하는 소리와 함께 은회색이 털이 조화롭게 뒤섞인 멋진 고양이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


“어이쿠, 고양이네.” 주원이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아-” 유정이 약간 난처하다는 톤으로 말했다.


“이 아이가 제 고양이가 아니고… 원래는 제가 사는 동네에 길고양이인데… 오늘 출근길에 갑자기 저를 따라오는 거 있죠.”


“간택을 받으신 거군요?” 주원이 상체를 숙이고 고양이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고양이는 그에게 바로 다가오지 않은 채로 멀찍이 서서 주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고양이의 두 눈은 깊으면서도 청량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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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