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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지 않은 공허 3

by 안지안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길라는 홀로 담벼락 밑에 바짝 붙어 왜 자신이 「그날 밤」 남겨졌을까를 새삼 고민하고 있었다. 애써 고민한다기보단, 하루종일 불쑥불쑥 드는 그것에 대한 생각과 의문을 상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 길라는 분명 혼자가 아니었다. 코 끝이 간지러워지는 기름 향이 나던 그 여자도 밖에서 혼란스러움에 방황하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그 인간 여자의 모(母)도 그녀에게 「그날 밤」에 대해서 여러 번 미리 언질을 해주었을까? 그녀와 자신의 접점이 과연 무엇일까? 도저히 그것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확실해져 갔다.


비록 아직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고 있지만, 언젠간 그녀와, 길라 자신과, 그리고 어쩌면 더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날 밤」 남겨졌던 다른 이들의 공통분모를 알아낼 것이다. 그 분모라는 것은, 어쨌든 종(種)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식과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믿음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왜가리 현이 「믿음」엔 큰 힘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가 바람과 정말로 대화를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믿음이 정말로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고양이 길라는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다른 많은 고양이들이 다른 종의 동물이나 식물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을 여러 번 봐왔다. 그때 당시에 그것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참으로 이상했다. 길라는 자신이 부엉이 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식해본 적이 없는 고양이었다. 그리고 ‘그 의식하지 않음’이 왜가리 현이 말했던 진정한 믿음이었던 것이다.


해가 뜨도록 길라는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엔 비구름이 잔뜩 낀 탓에 태양의 형태가 잘 보이진 않았지만 햇빛은 어찌어찌 그것을 뚫고 도시에 희미하게나마 아침을 전하고 있었다. 아침에 우는 새들이 평소보다 적은 숫자와 낮은 키로 이제는 잘 시간이라며 길라를 재촉했지만 그는 왠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있기 전에 길라는 여느 고양이들처럼 하루에 거의 14시간 이상을 잤다. 그러나 그는 이제 겨우 열 시간을 잘 까말까였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일곱의 낮과, 일곱의 밤을, 길라는 매일 기다렸다, 비가 그치기만을. 길라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처음엔 봄이 되면 떠날 생각이었다. 서울의 겨울은 길고양이들에겐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자신의 영역에서도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든데, 심지어 겨울이 깔린 길바닥을 전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는 것을 길라는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겁이 아니라 이성이었다.


그러나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지금 가지 못하면 영원히 가지 못할 것이라고. 겨울만큼은 지나 보내자는 나약한 마음으로는 그 어디의 끝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음이 무의식의 영역이듯이, 이것저것을 너무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틀려먹은 게 아닐까. 이미 스스로가 자신이 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가 찾고자 하는 답은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이 세상을 이루는 것들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지도 모르는데, 시작부터 고작 계절의 주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는 것은 안될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놓고, 고양이 길라는 지금 고작 비 때문에 또 한 번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독한 비바람이었다. 계속된 비에 몸은 바들바들 떨렸고, 먹이들이 비를 피해 깊숙이 숨어버리는 바람에 배고픔에 굶주리고 있었다. 하수구는 범람하고 있었고, 찐득한 흙이 뒤섞여 마실 물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그럼에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시작을 하는데에 이것저것을 따질 이유는 없다. 아무리 맑고 좋은 날 순풍을 등지고 출발하는 배라도 꼬구라질 것이라면 바로 다음날 꼬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정말로 너무 추웠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무리 고양이의 목숨이 아홉 개라도 말이다.


또 한 가지 망설여진 것은 부엉이 곤과의 작별 때문이었다. 곤에겐 가족이 생겼다. 며칠 전 밤, “짝이 생겼다”며 곤이 상기된 얼굴로 그에게 찾아와 말했다. 그것은 인간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짝짓기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뜻은 그녀의 배에 알이 들어찼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곤은 이제 자신의 여자친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딱 붙어있어야 한다. 약 한 달 뒤에 알이 두-세 개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 먹이를 나르고 불침번을 서며 자신의 암컷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새끼들이 나오면 그들이 클 때까지 양육을 같이 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자신과 같이 떠나자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게 꼭 아니었더라도 그는 부엉이에게 차마 같이 가자고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길라는 생각했다. 곤에겐 곤의 인생이 있는 것을, 자신의 인생에 이렇게까지 휘말려 들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날 밤」 남겨진 것은 길라 본인이지 곤이 아녔다. 아무리 「그날 밤」 있었던 일을 곤이 믿어준다 해도 말이다. 「그날 밤」 그곳에 있었던 것은 결국 길라 혼자였다. 이것은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문득, 아득히 외로워졌다.


어두운 아침, 그가 외로운 것은 아침 때문이 아니요, 그가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부엉이는 물론 자신을 이해하려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그리고 그건 절대로 부엉이의 잘못이 아니었다. 곤의 이해심이 부족하다며 그를 탓하는 게 절대 아녔다. 다만,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자기 자신밖에 있을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왜냐면, 짙어지는 아침에, 깊어지는 상념에 맞설 때, 그는 결국 혼자이기 때문이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다름 아닌 자신 그 자체였다. 왜가리는 바람이랑 대화를 하는 세상에 살고, 붉은 장미는 자신의 가시가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들을 이해하려는 또 하나의 자신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갇혀있는 것이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길라는 고립되어 갔다. 그가 아는 것, 그가 느끼는 모든 것이 결국 그 자신으로부터 왔다는 게, 그것이 길라를 자신의 세상에 가두고 너무나 혼자 두고 있었다. 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었다고 해서 둘이 같은 세상에 속했다는 것은 단단한 착각이었다. 그의 세상엔 오롯이 그밖에 없었다. 그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들은 이상,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어떠한 「반열」에 이른 것과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이해해 버린 것을 무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전이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확실히 아무것도 몰랐던 그 전이 더 행복했다. 무지개가 실재했던 세상에서 길라는 더 행복했다. 그의 넓어진 식견과, 깊어진 지식과, 확장된 인식만큼, 딱 그만큼 그는 불행해졌다.


길라는 제풀에 지쳐 잠에 들었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어느 새까만 어둠 속, 아무것도 밟히지 않는 곳에서, 앞발도 뒷발도 느껴지지 않았다. 앞발도 뒷발도 없는 채로 그 어둠 속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무한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길라의, 고양이로서의, 지식과 직감으로, 이곳은 「깊숙한 하늘」이었다. 땅에서 위를 보면 저 멀리 보이는 파아란 하늘, 그 너머를 뚫고 멀리, 훨씬 더 깊이, 별들에 가까운 까마득한 곳까지 와있는 것이었다. 없는 코를 킁킁대봤자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있지도 않은 목청으로 있는 힘껏 울어봤자 있지도 않은 귀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털이 곤두설 등짝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몸을 중심으로 앞이랄 것도, 뒤랄 것도, 위도 아래도 없는 끝없는 어둠으로 가득 찬 공허의 공간이었다. 발을 디딜 곳이 없으니 공중에 떠있다기 보단 차라리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그를 감싸고 있는 어둠은 물처럼 부력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 편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아무런 저항도 없는 암흑은 그를 너무나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길라는 눈치를 챘다, 자신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그는 기억해 냈다. 이 꿈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벌써 몇 번이나 꿔봤던 꿈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오른쪽에 그의 사고의 범주를 뛰어넘는 아득히 거대한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검붉거나, 묽은 진흙색이거나, 혹은 짙은 우유색의 기체로 이루어진 띠들이 제각각의 방향으로 돌고 있는 별이었다. 본능적 공포가 길라의 가상의 목덜미 끝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내려와 꼬리뼈쯤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몸을 빙자한 영혼은 부르르 떨렸다. 그에게 평소처럼 털이 있었다면 그 모든 털이 바짝 곤두섰으리라.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것은 그것의 압도적인 크기, 그 자체였다. 게다가 그것은 길라와 너무나 가까워 그것의 동그란 실루엣이 온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막연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반짝이는 별의 실체는 이랬던 것이다.


어쨌든 이것이 이렇게나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곳에도 태양의 빛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그 빛에는 아무런 따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별의 아래쪽에는 거대한 반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혼자서 회오리치는 그것은 마치 이 별의 눈인 것 마냥 길라를 조용히 노려보고 있었다. 길라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 그 심연에 빨려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온몸을, 혹은 온 의식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럽게 울었다. 그것은 도저히 얌전하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끝없는 암흑 속에서 숨이 막혔다. 떨림을 참으며 필사적으로 몸을 틀어 보지만, 그 어디도 딛고 돌아설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외면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완전한 본능적 반응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계속해서 내지를 뿐이었다.


그렇게 다섯 번, 혹은 여섯 번 정도 울었을 때 그는 꿈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어째서 꿈은 꿈으로서 끝나지 않는 걸까. 왜 모든 꿈의 끝은 항상 잠의 끝일까. 온몸이 땀에 젖어 축축한 것인지 아직도 내리고 있는 비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우우”

길라는 아직 남은 설움과 공포를 크게 울면서 덜어내려 했다. 몇 번이고 울었다.


날은 여전히 어두컴컴해서 시간을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침 열시라면 아침 열 시같이 보이고, 오후 네시라 하면 그렇게도 보일 것 같은 애매한 풍경이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길라는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서 그가 자주 들리던 그 편의점 앞의 시계탑으로 향했다.


비에 젖은 동네는 평소보다 색깔이 더 짙었다. 인도 옆 한 층 내려가 있는 차도를 따라 흙탕물이 꾸덕꾸덕 흘러가고 있었다. 길라는 그것이 그가 방금 전 꿈에서 본 그 별 위를 가로지르던 띠들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마다 사람들은 우산으로, 옷깃으로 그것을 막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길라는 그저 벌벌 떠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무자비한 현실의 파도가 더 세게 부딪쳐 그의 꿈은 그저 모래성처럼 와르르 부서지는 수 밖에는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고양이의 발은 축축하게 젖어 그의 탱탱한 발바닥 젤리마저 곧 쭈글쭈글해질 것만 같았다.


편의점 앞에 도착한 길라는 시계탑의 시간을 확인한 뒤 (두시였다) 한편에 납작하게 펼쳐놓은 골판지 박스 더미 위에 올라가 온몸을 비벼 물기를 최대한 닦아냈다. 박스도 물이 묻자 더 짙은 색깔로 변했다. ‘띠링’ 소리를 내며 편의점의 문을 열고 한 사람이 우산을 접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우산을 접을 때 그것의 표면에 있던 빗방울이 가게 안으로 튀었다. 그중 몇 방울은 아래쪽에 진열된 물건들 위에도 안착했다. 그렇게 빗물은 온 동네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었다. 침투해서 모든 것을 다 짙게 만들고 있었다. 비에 젖은 두더지는 습기를 머금은 채로 땅속으로 들어가 흙을 짙게 만들고 있었고, 비에 젖은 장미는 그것으로 또 한 번 짙은 색의 붉은 장미를 피워낼 것이다. 그리고 이 비가 언젠가 그치면 그땐 짙은 색의 무지개가 뜰 것이다. 물론 그 무지개는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짙든 간에 말이다.


아까 가게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이 잠시 뒤 다시 ‘띠링’ 소리를 내며 편의점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던 길라는 그제야 그녀가 「그날 밤」 보았던 「그 여자」라는 것을 알아챘다. 비 때문에 그녀 특유의 냄새를 진작에 맡지 못했던 것이었다. 길라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야아옹”하고 울어버렸다.

여자도 그의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어머 너구나.”


길라와 여자는 초면이 아니었다. 둘은 이 편의점 앞에서 이미 여러 번 마주쳤었다. 특히 밤 열두 시가 살짝 넘은 새벽에 자주 서로를 보았다. 그럼에도 「그날 밤」 길라가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것은 그저 그가 고양이이기 때문이었다.


“완전 젖었네….” 여자가 무릎을 낮추며 말했다. 그녀는 쥐색 목폴라 스웨터에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그에게로 뻗자 길라는 슬금슬금 다가가 그녀의 손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것은 줏대가 있는 길고양이로서는 나름 최선의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아마도 여자는 고양이가 배고파서 운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배가 고픈 것은 맞지만, 자신은 그래서 운 것이 아니었는데. 여자는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한 뒤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조그만 통조림 캔을 가지고 나왔다. 이번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도 따라 나왔다. 그의 두 손엔 물과 파란색 플라스틱 그릇이 들려있었다.


둘은 쭈그리고 앉아 길라 앞에 먹을 것과 물을 담아주었다. 긴 코트의 밑단이 길바닥에 닿았지만 여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길라는 한 번 크게 “야옹” 한 뒤 여자가 깐 캔 안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꽤 말랐네요.” 여자가 혼잣말을 하듯 아르바이트생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요즘 도통 안 보인다 했는데.”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대답했다.


“오구오구 잘 먹네에.” 여자가 열심히 식사 중인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다정하고 고운 목소리였다.


여자는 옆에 맨 가방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조심조심 고양이의 물기를 닦아주었고, 길라는 그녀의 손길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얌전히 물을 먹기 시작했다.


길라는 목을 축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 인간 여자와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여자도 자신과 같이 그 고약한 암흑 속에 갇히는 꿈을 가끔씩 꾸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꿈을 꾸는 것이 「그날 밤」 남겨진 이유일까? 대화는 불가능했다. 아무리 고양이 길라가 인간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다 해도 대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쌍방이어야 성립되는 것이니까. 그녀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인간들은 동물들도 말을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니까 말이다. 정확히는, 그들이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여자는 고양이를 다 닦아낸 뒤 젖은 손수건을 네 번 접어 자신의 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선 고양이의 머리와 목덜미 사이를 가볍게 몇 번 쓰다듬은 뒤 일어났다. 여자는 아르바이트생과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다시 우산을 머리 위에 썼다.


“다음에 또 보자, 알겠지?” 그 말을 남기고 여자는 자신의 길을 떠났다.


길라는 네발로 딛고 일어나 부르르 몸을 털었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답을 찾기 위해선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떠난다 해도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그는 그동안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비도, 겨울도 아닌, 바로 그 막연함 때문에 그는 그간 떠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 여자를 쫓아가야 했었던 것이다.


가려면 지금 가야 한다. 어차피 내일도 여자는 같은 시간에 이 길을 지나갈 것이니 내일 가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 바로 가야 하는 것이다. 곤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어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어도, 이제 곧 겨울이라도, 그래도 가야 한다. 그때 그 허수아비는 지금도 여전히 부는 바람에 물렁해진 진흙 위에 꽂힌 채로 휘청이며 열심히 버티고 서있을 것인데, 네발 달린 고양이라면 가는 수밖에 없지.


길라는 달리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잘 가-.” 아르바이트생이 그의 뒤통수에다 대고 인사했다. 그 인사는 이 고양이를 다시 보는 것이 아마도 한참 후, 혹은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 인사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길라는 급히 멈춰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친절했던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달동네 꼭대기의 그 옥탑방 청년에게는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마도 자신을 정말로 원망할 것은 그보다는 부엉이 곤일 테다.


“야아아옹!”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파란색 플라스틱 그릇을 챙기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길라 역시 다시 고개를 돌려 여자가 간 방향을 따라 달려 나아갔다. 「여자」가 그 앞에 나타난 게 우연일 리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이 필연이라고 믿는 고양이었다. 그러니 이 여자는 그야말로 운명이었다, 자신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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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