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이야기 6
“「하품」이란 게 뭐입죠?” 잉어가 고양이의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했다.
“하품 말이야, 피곤하거나 졸리거나 할 때 가끔씩 자연스럽게 입이 크게 벌어지면서 머릿속 완전 끝까지 공기를 쑤욱 들이마시는 거. 아니면 옆에 누가 하품을 먼저 하면 저절로 따라 하게 되기도 하고.”
지금 당장 공기가 부족한 비단잉어가 위태롭게 숨을 가쁘게 내쉬며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그런 행동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입죠.”
“그렇단 말이지…? 그럼 기침이나, 재채기나… 그래, 트림 같은 건?” 길라가 다그치듯이 물었다.
“아니, 선생님,” 잉어는 이제 슬슬 호흡에 한계가 온 것처럼 보였다. “「하품」인가 뭔가 처럼, 그것들 역시 저는 살면서 아예 처음 들어봅니다요.”
“확실하겠지?” 길라가 앞발 들고 멍청한 잉어의 못난 입을 칠랑말랑 위협하며 물었다.
“제가 이 상황에서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제발 살려만 주십쇼.” 잉어가 툭 튀어나온 눈으로 애처롭게 말했다.
고양이는 머리가 살짝 띵했다. 이런 식의 답변은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그것만으로 어쨌든 답변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곤란했다. 애초에 어떤 기상천외한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물속의 물고기들도 의외로 하품을 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혹은 하품 대신에 방귀를 뀐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입과 아가미가 아닌 다른 경로로 하품을 한다, 뭐 그런 신기한 대답을 원했던 걸까.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알아가다 보면 「그날 밤」의 비밀까지도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쩌면 너무 비약적인 발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하품을 안 하고, 기침도 안 하며, 심지어 트림도 안 한다는데, 그렇다면 그런 것으로 결론이 났을 뿐이다. 인공호수에서 멍청하고 비만인 잉어 한 마리를 이 이상 족친다 한들 그에게서 그 이상의 어떠한 설명을 듣겠는가. 입맛이 가신 고양이는 숨을 괴롭게 헐떡이고 있는 잉어의 통통한 배를 앞발로 툭툭 차서 다시 호수 안으로 방생해 주었다. 이곳의 물고기들은 여기에서 사는 고양이들조차도 웬만해서는 먹지 않는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놈들을 먹으려면 며칠은 배탈로 고생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멍청한 놈은 검은 물속 깊이 더 검은 곳으로 쏜살같이 도망쳐 시야에서 벗어났다.
비단잉어를 낚아챌 때 물렸던 꼬리의 끝부분이 살짝 욱신거렸다. 원했던 것처럼 「그날 밤」의 진실에 대한 물꼬가 전혀 트이지 않아 괜히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어차피 여기저기를 다 풀어봐야 하는 것이다. 풀다 보면 풀릴 것이다.
어느새 새벽이 조금씩 푸른 끼를 띄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아침이 올 것이다. <올림픽공원>까지는 꽤나 먼 거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와서 난처해지기 전에 잠시라도 눈 붙일 곳을 정해야 했다. 고양이는 공원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수풀은 많지 않았지만, 대신 적당히 비좁고 외진 골목들이 많이 나있었다. 그곳에서 하루 낮을 청하면 되리라 길라는 생각했다. 어쨌든 그러려면 차들이 쌩쌩 다니는 대로를 몇 개나 지나야 했다. 그것엔 인내가 필요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가끔씩 차들이 멈춰 설 때가 있었다. 길라는 그것을 기다렸다가 흰색 선이 띄엄띄엄 그려진 위로 쏜살같이 대로를 가로질렀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고양이의 냄새가 풍기는 수풀에서 잠드는 것은 더욱 내키지 않았다. 설사 잠시 비어있다 해도 석촌호수의 대부분의 수풀에는 주인이 있다. 혹시라도 자는 도중에 어느 고양이가 찾아와 자신의 집에서 썩 꺼지라며 텃세를 부리는 꼴은 사양이었다.
대충 심장이 2000번 정도 뛰는 시간을 달려 비로소 건너편에 <올림픽공원>의 언저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쪽의 고양이들은 석촌호수의 그들과는 또 많이 달랐다. 호수 주변의 고양이들은 재수가 좀 없기는 했지마는 대체로 온순한 편이었다. 반면에 이 먹자골목의 고양이들은 굉장히 경계심이 많고 신경질적이었다. 아마도 환경 탓이 컸다. 석촌호수의 손을 잡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온순해서 고양이들에게는 딱히 위협이랄 것이 없었는데, 이곳 골목의 사람들은 밤만 되면 굉장히 시끄럽고 과격해졌다. 그중에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몹쓸 짓을 하는 악마 같은 인간들도 종종 있었다. 때문에 여기의 고양이들은 항상 긴장을 하며 인간들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를 살피며 살아가고 있었다.
주변의 고양이들과 겹치지 않도록 눈치를 보며 근처에서 최대한 비좁고 외진 골목을 하나 찾아냈다. 안으로 들어가자 분주한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차 소리가 갑자기 줄어든 것 같았다. 마침 길라의 체구에 알맞은 크기의 박스도 하나 버려져있었다. 딱 좋은 간이 은신처였다. 햇빛이 안 드는 탓에 서늘한 기운이 골목 안에 팽배했지만 길라는 박스 안에 자리를 잡고 잔뜩 웅크린 채로 잠을 청했다. 잠에 드는 데에는 박동이 채 열 번도 걸리지 않았다.
허기에 잠에서 깼을 땐 이미 주변이 완연한 밤이어서 길라는 깜짝 놀랐다. 잠깐 낮잠을 청한 것이지 아예 밤까지 자려고 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이 차라리 잘 된 것이라고 길라는 생각했다. 어정쩡한 시간에 일어났다면 퇴근 시간의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가 그들과 함께 저 대로에 그려진 띄엄띄엄 있는 하얀 선들을 같이 건넜어야 할 뻔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고양이 길라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박스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섰다. 골목 밖으로 나오자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소음이 줄어들었던 것만큼이나 소음이 확 증폭됐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고양이를 눈치채거나 알아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밝은 톤의 털을 가지고 있는 길라는 항상 그것이 신경 쓰였다. 다행히 거리는 이미 한산했고 혼자, 혹은 둘이, 아니면 삼삼오오 술 취한 사람들이 비틀비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쌩 하고 은행 냄새가 그득한 바람이 고양이 훑고 지나갔다. 너무 오래 잔 탓에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던 길라는 순간적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지체할 것 없이 <올림픽공원>으로 출발했다.
자정쯤이 되었을 때 길라는 공원의 옆길에 피어있는 장미들에게 도착했다. 낮에 이쁜 것은 역시 밤에도 아름다웠다. 아무리 이쁘고 콧대가 높은 장미라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다면 자신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대하여 더 좋아하겠지. 길라는 많고 많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붉고 풍성하게 피어나 깊은 향을 뿜어내고 있는 장미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왜 가시를 내니?”
다소 다짜고짜인 느낌이 확실히 있었다.
“뭐라고?” 붉고 아름다운 장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지난 새벽에 멍청하고 살찐 비단잉어가 그에게 되물었던 “뭐라 굽쇼?” 와 굉장히 비슷한 의미의 대답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꽃이 있지만, 장미에겐 「유난히」 가시가 돋잖아. 왜 너는 가시를 내는지가 궁금해.” 가시만큼이나 까칠한 장미의 말투에 기가 좀 눌린 길라가 정중하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거야 당연히 장미가 아닌 다른 그 어느 꽃도 결코 장미일 수는 없기 때문이지. 네가 방금 말했잖아, 세상의 대부분의 꽃은 가시가 없지만 장미만은 가시가 돋는다고.”
그것은 엄밀히는 사실이 아녔다. 가시를 내는 것은 장미만은 아녔다. 아카시아에도, 선인장에도 가시는 자란다. 하지만 길라는 그저 장미의 말을 잠자코 듣기로 했다. 아마도 장미는 아카시아나 선인장을 본 적이 없을 것이고 평생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장미는 장미이기 때문에 장미에겐 가시가 있어야 하는 거야.” 붉은 장미가 한심하다는 듯이 고양이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겨울 준비에 들어가느라 바쁜 와중에 「그런 것도 모르느냐」는 듯한 말투였다.
고양이는 그런 멍청한 취급을 받은 게 살짝 민망했고, 약간은 억울하기도 했다. 그는 장미에게 그런 일차원 적인 질문을 한 것이 아녔다. ‘장미니까 당연히 가시가 나는 것이다.’ 라는건 대답으로서 납득할 수 없었다. 고양이 길라는 아마도, 장미의 가시가 ‘자신에게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의미라거나, 이쁘기만 한 게 전부가 아닌, ‘남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도 되어줄 수 있다’는 그런 그럴싸한 대답을 장미에게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길라가 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곱씹어볼수록, 장미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고양이 본인에게 뾰족한 귀 두 개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쩌면 자신은 “너의 귀는 왜 뾰족한거니?”라는 수준의 질문을 해버리고 만 것일까. 누군가 고양이에게 자신의 귀에 대해 이유를 묻는다면 자신또한 황당하지 않았을까. 장미의 가시는 그저 장미의 일부분인 것을, 그것 외에 다른 의미를 두려는 것은 길라의 환상이고 욕심이었다.
몰랐던 세상의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대부분이 그저, 「그런 것이니 그런 것인」 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인 것 또한 괜찮다고 고양이 길라는 마음먹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이야기는 이어질 것이다. 반드시. 이어져 있을 것이다, 그날의 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