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과 파랑 1
주원은 유정과의 이야기를 계속 곱씹고 있었다. 둘은 둘만의 인식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인식이 곧 존재를 규정한다.’ 그것이 집에 오는 택시에서 주원이 내린 결론이었다.
인식은 곧 믿음이다. 완전한 믿음이란 너무나 당연해야 하는 것, 즉, 무의식과도 같다.
우리는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지만, 매 순간 공기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공기를 무의식적으로 들이마시고 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믿음이다.
유정과 맥주를 꽤나 많이 마셨음에도 그는 거의 취기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이 너무 맑아 청아한 아침 같은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그가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것은 명확했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태초에 나는 별 그 자체였다. 45억 년 전쯤에 말이다. 초창기엔 정말이지, 지독한 날씨의, 날씨라기 보단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연속이었다. 너무나 오래전 일이라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수만 년씩이나 계속되는 비에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잠겨있었던 때도 있었다. 몇 세기를 폭발하는 화산에 땅 위에 모든 것이 불타오르기도 했었고,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얼어붙어 이 별의 시간마저 멈춰버리기도 했었다. 또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녹아서 이 별의 공간마저 증발해 버리기도 했었다.
나 또한, 그러던 언젠가, 고약한 낙뢰를 한 대 제대로 맞아 버렸고, 직경 10미터 정도 되는 아주 조그마한 크기로 부서지며 별의 「조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덩그러니 몇 만년을 누워있다 보니 인간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별을 <지구>라 부르며, 이곳의 이것저것에 이런저런 이름을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별 그 자체」이던 나는, 더 이상 별의 조각이 아닌, 「돌」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인간들은 분류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분류하려 들었는데, 마치 「나눈다」는 것을 「정확히 한다」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 같았다. 돌의 성분에 따라서, 크기에 따라서, 형태에 따라서, 정말 세분하게도 나눴다. 나누는데 환장이라도 한 듯이 분류하고, 쪼개고, 구분하고, 또 갈랐다.
나뉘기 전의 세상은 모든 게 별이었다. 이것도 별, 저것도 별, 모든 것은 별의 일부분이었고 모든 별이 다 합쳐서 하나의 별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인간들은 「분류함」으로서 모든 것이 조금 더 「정확」해졌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착각이다. 그것은 그냥 본인들이 그렇게 정한 것뿐에 지나지 않는다. 제일 정확한 것은 단 하나, 모든 것이 원래는 다 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인간들이 굳이 굳이 별이 아닌 무언가로 나눈 것이다. 회색 별은 화강암이 되었고 흰색 별은 석회석이 되었다. 별 조각, 별 부스러기, 별 먼지가 이제는 바위, 돌, 모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세월은 나를 이리로 저리로 이끌었다. 아무리 빗방울이라도 몇 만년을 맞다 보니 나는 깎였고, 깎이다 보면 나는 미끄러졌다. 그러다 보면 굴러 떨어졌고, 그러면 쪼개지고,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 언젠가는 솜씨 좋은 석공에게 맡겨져 거대한 장벽의 일부분이 되어 어떤 나라의 몇 천년의 흥망성쇠를 함께하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누군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계곡 안에 나를 풍덩 던져서,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 물속에 잠겨 몇 천년을 살기도 했다. 그곳에 물이 마르고 바닥이 드러나면 또 어느샌가 사람들이 나타나 과격한 기계로 나를 퍼다 트럭에 싣고 주차장 같은 곳에 던져 놓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은 나를 꾸준히 풍화시켰다. 몇억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느덧 지름 20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납작하고 매끄러운 「돌덩이」가 되어, 인적이 뜸한 어느 시골 마을의 나무가 우거진 도로 옆에 우두커니 있다.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깎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마음속의 무언가가, 아마도 꺾이고 말았다. 나는 스스로 더 이상 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인간들이 정해준 대로, 「돌」이 되었다.
차도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이곳을 거의 매일 아침 자기 할매 손을 꼭 잡고 지나는 어린 꼬마가 하나 있었다. 학교를 가는 길이렸다. 어떤 날은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해가 쨍한 날은 파란색 모자를 쓰고, 비가 오는 날은 노란색 장화를 신고 언제나 씩씩하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걷는, 재잘재잘 수다스러운 귀여운 여자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오던 푸르스름하고 어두운 아침에, 노란색 장화를 신은 그 아이가 웬일로 혼자서 축 처진 발걸음으로 덜레덜레 걸어왔다.
그러고선 그 작은 것이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세워진 무릎 위에 팔짱을 올린채 그 속에 제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다가 갑자기 무슨 결심이라도 선 듯, 아직 울음도 콧물도 멈추지 못한 채로 훌쩍이며 두 손으로 옆에 나보다 조금 더 작고 평평한 돌을 주웠다. 그리고 비에 미끄러질라 신중히 그것을 내 위에 올렸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왕방울만 한 두 눈을 꼬옥 감고, 기도를 했다.
그날 이후 비는 한동안 계속 내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도 그 아이는 우비를 입고, 노란색 장화를 신고 내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돌을 내 위에, 그리고 그 위에, 그리고 또 그 위에 쌓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도, 그다음 날에도 같은 기도를 올렸다. 제일 위에 올려진 돌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수록 아이가 새로운 돌을 찾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 돌을 올리고 나면 뒤늦게 조금 더 큰 돌을 뒤늦게 찾는다 해도 무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아이는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도 같은 시간에 저만치에서 걸어와 어제보다 조금 더 작은 돌을 열심히 골라서 쌓은 뒤에 두 눈을 꼭 감고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열네 개의 돌이 쌓이는 동안 비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렸다.
그리고 그 열네 번째 밤, 나는 밤 하늘의 별들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믿는 대로의 나였음을. 내가 스스로 별이었을 때 나는 정말로 별이었고, 내가 돌인가 했을 때 나는 그저 돌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열다섯 개의 돌이 내 위에 쌓이면 소원을 하나 들어줄 수 있는 돌탑」이다. 여자아이가 나에게 그런 것이라고 가르쳐 준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렇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정한 것이다. 꼭 열다섯 개의 돌일 필요는 없었다. 다만, 내가 이제야 알게 됐으니, 이제 한 번만 더 쌓으면 되니 열다섯 개다.
다음날 아침,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고, 나는 초조하게 아이를 기다렸다. 제발 내가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저 멀리서 노란색 장화를 신은 그 아이가 털레털레 걸어왔다. 하지만 근래보다 좀 더 쳐진 분위기에 더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이는 내 앞에 멈춰 한참을 서서 그 큰 두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그러고선 그냥 지나가버렸다.
아이는 다행히도 몇 발자국을 못 가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한 숨을 푹 내신 뒤 주변에서 돌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 또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돌을 쌓아야 했다. 딱 하나, 하나만 올리면 됐다. 세상에 이렇게 적당한 크기의 돌이 없었던가.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적당한 크기의 돌 하나를 아주 조심조심히 올렸다. 고사리 같은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지만 아이는 훌륭히 해내었다. 열다섯 번째 돌을 올려 탑을 완성시킨 것이다. 아이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가 가진 별의 힘으로 진지하게 그 기도를 들어주었다.
며칠간 아이는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다. 그사이 비는 드디어 그쳤고, 저 멀리서 그 아이가 온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온다. 제 할매 손을 꼭 붙잡고, 활짝 웃으며. 그리고 내 앞에 서서 할매에게 내 자랑을 막 한다. 재잘재잘 수다스러운 귀여운 아이다.
어쩌면 나는 다시 별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작은 아이의 손에 의해, 아이의 믿음으로 인해, 나는 다시금 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그래, 별의 조각도 별이다. 꼭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모두는 본디 별이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주원은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방 안은 처음보다 훨씬 어두워져 있었고, 바깥에서 희미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치 독서실에서 책을 덮는 것처럼 살포시 노트북을 닫았다.
별이었던 존재가 돌이 되었다가, 아이가 돌탑을 쌓으며 돌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듯, 주원도 자신을, 자신의 세상을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에 섰다. 그날 밤을 더 이상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면 안됐다. 그것은 엄연히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으니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단지 그전까지는 그가 몰랐던 것이고, 그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 번 인식한 세계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마치 영원히 닫혀있던 문이 어느 날 갑자기 열리고, 그 너머를 보고 난 이후엔 다시는 예전처럼 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순간, 유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글을 쓰면서도 계속 그녀의 얼굴이 모니터 앞에 자꾸만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는 유정의 얼굴이 스치는 순간, 자신이 어느새부터 ‘그날 밤’을 거치지 않고 그녀를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심장은 속절없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는 어쩌면,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동경인지, 그녀가 유독 특별한 사람이라서인지, 아니면 그저 「그날 밤」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그는 스스로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 오롯이 남겨진, 말하자면 아담과 이브였으니까.
혼란스러웠다. 이런 느낌은 주원에게 아주 생소했다. 물론 그 역시 남자고, 그 나이를 먹도록 그가 동정이라거나 여자에게 눈길이 간 적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사랑이란 걸 자신이 할 수 있을 거라고, 혹은 해야 한다고, 바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세상은 그렇게 태평하게 굴러가는 곳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커피 한 잔과 재즈가 흐르는 여유롭고 낭만적인 공간이겠지만, 주원에게 세상은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는 한 번도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 인생은 감정보다 논리가 우선인 것이었고, 세상을 생존의 공간으로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의 사랑에 대한 억제는 단순한 성격적 특징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서 기인했다. 이곳은 자신 하나 사람답게 살기 힘든 곳이었으니까. 물론 그는 그런 세상에서 아직까지 비교적 잘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나쁘지 않은 직장, 나쁘지 않은 월급, 그것이 그에겐 전부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건, 그가 철저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그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그의 인생은 「나쁘게」 될 것이라는 걸. 잠시라도 도태되면 그의 열차는 탈선할 것이고, 탈선한 그를 막아줄 안전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남의 비위를 맞추고, 참고, 좋은 평판을 유지하는 데에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태껏 자신을 위한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태껏 사랑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꼭 결혼이나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역시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원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미래에 초점을 맞춘 삶이었다. 그가 내리는 모든 판단과 선택은 모두 미래의 자신을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에게 현재를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곳에 그는 도무지 최선을 다할 수 없었다.
그런 강박에 사로잡혀 사는 그는, 그것에 대해 불평한 적도, 특별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었다. 그가 어찌할 수 없는 그 사실에 괜히 질척이며 자기 연민에 빠질 여유조차 그에겐 없었다. 인생은 너무나 일찍부터 그에게 실전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자신만의 가족을 상상했겠는가. 그런 그가 어떻게 사랑을 염두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낭만은 그가 꿈조차 꿀 수 없는 사치였다. 그는 먼지투성이의 메마른 시멘트 바닥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태어난 잡초였다. 잡초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있는 것에 집중한다. 잡초는 꽃을 꿈꾸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만난 지 이제 고작 세 번 밖에 안된 그녀가 자꾸 생각났다. 자신이 꿈꾸지도 못한 감정들이, 자신이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몽글몽글하고 가슴 뛰는 감정들이, 파도처럼 철썩이고 있었다.
지유정이라는 여자는, 그의 유일한 꿈이자, 무서워서 용기도 내지 못했던 「예술」이란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자신의 친부모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장미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절벽 위에서 돋아난 잡초라면, 그녀는 들판에서 피어난 장미였다. 자초지종은 모르더라도, 그녀는 자신처럼 미래의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옷차림새와 어투, 향기, 그녀의 분위기와 그녀의 모든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나 장미라는 꽃에 집착하듯이 글을 썼던 것일까. 그 때묻지 않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동경했기 때문에? 그래서 어쩌면 그는 나뭇잎의 희생에 대해 글을 썼던 것일까. 그의 인생에는 그녀처럼 그를 위해 사랑해 주고 희생해 줄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둘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억눌러왔던 그의 결핍이 그의 글에 투영되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그는 이제야 알아챘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 그녀에게 느끼는 이 감정은 순수하게 그녀에 대한 끌림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동경인 걸까? 그런 사람을 과연 자신이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정해버려도 괜찮은 걸까? 방금 전까지 “우리 모두는 별”이라는 글을 자신이 써놓고도, 그런 자신에 대한 평가를 멈출 수가 없었다. 특히 자신을 그녀와 비교하면 더 그랬다. 그것을 딱히 열등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일 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둘만의 세계에 산다던 그녀가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너무나 많은 생각과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밀물과 썰물이 동시에 들이닥치는 것처럼. 그는 이 감정을 정의하고 싶었지만, 한 줌의 파도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작 세 번을 봤을 뿐이고, 그 세 번 동안 둘 사이엔 그 어떤 스파크도 없었다. 물론 <쥬니방가이> 앞에서 그녀를 만났던 그 첫날밤, 무거운 밤공기에 직선으로 쩍 하고 균열을 냈던 그 순간의 짜릿함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날 밤」에 같이 갇혔었다는 직감과 그날의 타이밍 때문이었지, 둘이 만들어낸 화학반응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모른 채 하기로 했다. 지금으로선 그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머릿속에서 유정의 잔상이 계속 사라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덮어두기로 했다.
노력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둘이 함께여야만 했다. 「그날 밤」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려면 그녀가 꼭 필요했다. 그녀를 향한 그의 감정은 그들을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사실 그는 그녀에 대해서 전혀 잘 안다고 할 수 없었다. 장미라느니, 잡초라느니, 그 모든 건 그가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감정도 그저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에 들뜬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냥 그 정도일 것이다. 그저 오래된 갈증 같은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바닷물을 한 줌 쥐어 들이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