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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타인을 짓밟는 심리, 위계의 그림자

불안이 권력을 잔혹하게 만든다

by 소망안고 단심

왜 어떤 사람은 자리에 오르면 더 잔인해지는가.

오늘은 그 질문에서 시작해보려 한다.


조직이란 무엇일까.

각기 다른 성향과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 목표와 목적을 이루려는 공동체다.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위계질서가 생긴다.

질서 없는 무리는 혼돈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계질서는 때때로 인간의 어두운 본능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람은 위에 설수록 더 불안해지고, 그 불안은 이상하게도 타인을 짓밟는 방식으로 표출되곤 한다.


얼마 전,

여러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잠시 주관을 맡은 E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공정하지 못한 태도로 누군가를 겨냥해, 충분히 알지도 못한 상황을 단정하고,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어보지도 않은 채, 자신의 좁은 기준으로 평가하고 비방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빛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행위처럼 보였다.

왜 그는 그래야만 했을까.


타인을 본인보다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한다고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

그 시작은 평소에 느끼는 열등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할 때 더 크게 위축된다.

그래서 오히려 높은 자리에 섰을 때,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해 경쟁자를 짓밟는다.

이는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비겁하고 잔인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프랑스 철학자 라 로슈푸코는 말했다.

“질투는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기의 불행을 더 크게 느끼는 마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집단의 결속 때문이다.

대표되는 위치에 서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 다가온다.


이때 권력자는 본능적으로 ‘배제의 대상을 만들어야 결속이 강화된다’는 심리에 빠진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자신에게 몰려드는 사람들과의 유대가 강해진다고 믿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말했다.

“집단은 불안할수록 희생양을 찾아내고, 그 희생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결국 집단의 결속은 종종 한 사람의 희생 위에서 세워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권력 행사 자체가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순간적인 쾌감을 준다고 한다.

타인을 굴복시키는 경험은 도파민을 분출시키고, 더 큰 자극을 갈망하게 만든다.

그렇게 권력은 중독이 되고, 결국 ‘폭군’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힘을 갖고도 자제하지 못하는 자는, 이미 그 힘의 노예가 된 것이다.”

권력은 인간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감춰져 있던 본성을 드러내는 힘일지도 모른다.


E의 행동은 결국 자기 안의 결핍과 불안을 가리려는 몸부림이었다.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두려워하고, 그 불안을 눌러 이겨내기보다, 상대를 깎아내려 자기 존재를 부풀리려 한 것이다.

그 순간, 위계질서라는 건강한 장치는 본래 목적을 잃고, 권력 남용의 장치로 변질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조직 안에서 위계질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질서가 타인을 짓밟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위계 속에서도 중요한 것은 소통과 이해다.

내 기준으로만 상대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들어주며, 함께 길을 찾아가는 것.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함께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지금, 그런 태도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동료를 경쟁자로 보며 불안 속에서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위계라는 틀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주는 사람이 되고 있을까?


조직 안 위계질서는 피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나 그 위계가 인간의 어두운 본능을 자극할지,

아니면 함께 성장하는 울타리가 될지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플라톤은 말했다.

“가장 위대한 권력은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타인을 짓밟는 심리를 본받는 대신, 타인을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비극을 넘어서는 길이자, 조직과 나 자신을 동시에 지키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타인을 누르며 내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세우며 함께 의미를 만들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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