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았다는 말, 가장 잔인한 족쇄
장례식장.
“아이고아이고~ 오빠야! 내 오빠 없으면 어쩌라고, 오빠야!”
막내고모가 화장터 앞에서 관을 붙잡고 울부짖는다.
그 울음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날카롭고, 뜨겁게 달아오른 화로의 열기와 섞여
공기마저 숨 막히게 만든다.
관이 천천히 화로 속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순간, 고모는 두 팔로 관을 감싸며 몸을 던질 듯 매달린다.
그 곁에서 엄마와 동생들도 흐느끼며 눈물을 훔친다.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좁은 공간에 메아리처럼 부딪혀 퍼지고,
향 냄새와 매캐한 연기, 눅눅한 눈물 냄새까지 뒤엉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다연은 그 울음 속에 섞이지 않는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차갑게 굳어 있었다.
다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 문을 열었다.
겨울 햇살이 약하게 정원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 일부러 가꾼 적 없는 구석,
이름 모를 화초들 사이로 작고 강한 들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들꽃…”
그 단어가 다연의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간다.
순간, 기억이 봄날처럼 번져왔다.
“들꽃처럼 강한 너라서.”
20대 초반,
기숙사 있는 회사에 일부러 입사했던 시절.
지옥 같은 집을 벗어나, 처음으로 자유를 맛본 날들이었다.
햇살 좋던 봄날 점심시간,
기숙사 룸메이트 은숙, 그리고 몇 살 위 남자 직원과 셋이
회사 앞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연아, 너는 말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
다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받아쳤다.
“오빠, 저 피 있어요! 피 안 마른다니까요~”
은숙이 눈짓하며 거들었다.
“아니에요, 오빠. 다연이 엄청 착해요. 진짜 잘 울어요.”
남자 직원은 손사래를 치며 정정했다.
“아, 그런 뜻 아니고… 다연이는 말이야, 어디다 놔둬도
밟히고 또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들꽃 같은 느낌이랄까.”
그 말은 다연의 가슴에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을 ‘강하게 살아남은 존재’로 보아준 순간이었다.
그때만큼은 다연이 다연 자신을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정원의 들꽃을 바라보며
다연의 입가에는 오랜만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다연아~ 니 여기서 뭐 하니? 엄마랑 동생들 기다린다, 안으로 들어가라.”
낯익은 목소리. 막내고모였다.
그 인간을 가장 사랑했고,
그래서 다연이 가장 불편해했던 사람.
순간,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답답해서요.”
짧게 대답한 다연.
하지만 속으로는 애써 삼켰다.
‘제발… 제발 그냥 가주세요.’
그러나 고모는 멈추지 않았다.
“너 알제? 니 아버지랑 완전 붕어빵이다, 성깔도, 생긴 것도~ 딱 아이다 딱!”
그 말에 다연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들꽃을 바라보던 시선이 흔들리고, 미소 대신 서늘한 어둠이 번졌다.
닮았다는 말—
그건 단순히 불편한 말이 아니었다.
다연에게 가장 잔인한 족쇄였다.
어릴 적, 집에 가는 길에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거, 이 씨 큰 딸 맞제? 아버지랑 똑 닮았더만.”
“어떻게 아세요?”
“아버지 눈매며 입매며… 똑 닮았데이.”
그 순간 다연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말하지 않아도 ‘그 인간의 딸’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보는 그 순간이 너무 끔찍했다.
닮았다는 건—
그 인간처럼 될까 봐 두려운 일이었다.
그 인간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 미웠다.
그를 닮은 내 얼굴, 내 성격, 내 인생이.
다연은 거울을 볼 때마다 자주 생각했다.
“혹시 아버지도 자기 자신이 싫어서, 나를 더 미워했던 걸까?
그래서 다른 애들보다 더 때리고, 더 무시했나?”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신을 닮은 나를 보는 게
그 인간에게도 지옥이었는지도 몰라.”
그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려는 순간,
자신이 부정해 온 감정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다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원 끝자락.
고모의 울음소리가 멀어지는 사이,
다연은 들꽃 한 송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인간을 닮았다는 말이, 칼보다 아팠지만…
나는 결국, 그 상처 위에서 피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그 상처를 짓밟고서라도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