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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병실의 소음, 자매의 침묵

침묵 끝에 마주한 대화, 그리고 다시 스며든 침묵

by 소망안고 단심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연희를 찾아간 다연.

6인실 병실은 청각에 예민한 다연에게 시장통처럼 느껴졌다.

보지도 않으면서 켜놓은 TV 소리,

스피커폰으로 울려 퍼지는 사투리 섞인 아주머니의 목소리,

꺽꺽대며 트림을 하는 할머니의 소리가 뒤섞여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연희의 침대는 입구 문 옆,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에 있었다.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 연희.

다연은 침대 끝에 서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어릴 적부터 다연과 연희는 함께 있어도 말이 없었다.

행동이 느리고 영리하지 못한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다연.

반대로, 똑똑하고 할 말을 다 하는 언니가 부럽고 두렵기도 했던 연희.

서로는 자매였지만 너무 달랐다.

초등학생 시절엔 함께 웃고 챙기던 때도 있었지만,

연희가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다니기 시작한 뒤부터는 대화가 끊겼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 날조차 서로 마주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연희에게 건넬 말을 여러 번 준비했던 다연.

그런데 막상 마주하니,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누구신데? 아까 와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거요?”

옆 침대 환자의 보호자가 보다 못해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침묵이 깨어졌다.

연희가 눈을 뜨더니, 억지로 한마디를 던졌다.

“바쁠 텐데 왜 왔어?”


“안 바빠.”

짧고 건조한 말투였다. 하지만 ‘와서 다행이다’는 말이 목구멍 끝에서 맴돌았다.

언제나 말과 마음이 따로 노는 자신이, 다연은 불편했다.


“쌀쌀한 말투와 짧은 말. 그대로네.”

연희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났다.


“그렇지. 사람이 쉽게 변하나?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데.”

다연은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죽기는 싫은가 보네. 나는 죽고 싶은데.”

연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

짧은 질문. 감정은 섞이지 않았다.


“언니는 내가 이해 안 되지? 죽고 싶다는 내 마음.

내가 죽어도 언니는 관심도 없을 거야. 언니는 늘 자신만 알잖아.”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터지자, 연희의 말은 거칠게 쏟아졌다.

다연은 그저 말없이 동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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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늘 똑똑해서 사람들이 인정하고, 엄마 아빠도 늘 언니만 칭찬했어.

내가 초등학교 입학해서 학교에 적응 못할 때도 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챙겨주지 않았어.”

연희는 훌쩍거리며 원망을 토해냈다.


하지만 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희가 말하는 기억과 자신의 기억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 한집에 산 거 맞니? 나는 칭찬받은 적도, 인정받은 적도 없는데.’

그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왜 죽고 싶었니?”

다연은 동생의 하소연엔 반응하지 않은 채, 궁금한 것만 물었다.


연희가 큰 눈으로 다연을 노려봤다.

“언니는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너 하고 싶은 말만 해.”

그녀는 돌아누우며 말끝을 떨었다.

“잘 가.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왜 왔어?”


“엄마가 전화해서 가보라고 해서.”

다연은 무심하게 내뱉었다.

“자살은 왜 하니? 병신짓 하지 마. 남들 고생시키지 말고.”


쌀쌀맞은 목소리를 남기고 병실을 나서자,

뒤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따라왔다.

“그래, 나 병신이다. 그래서 죽으려 했다. 너는 늘 잘났어.

그래, 나는 늘 병신 바보다. 너 앞으로 오지 마!”


연희의 울음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하지만 다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병원 문을 열고 나오자,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귓가에는 아직도 연희의 울음소리가 잔향처럼 맴돌았다.

병원 정원 벤치에 앉은 다연은 발끝으로 시멘트 바닥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역시 우리는 안 돼.”


다연과 연희.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다른 자매들처럼 되지 못했을까.

무엇이 이렇게 만들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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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