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 변해!

by Anna Lee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동생이 태어난 무렵이다.

만 세 살이 채 못 되었을 때 느꼈던 복잡한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땐 그 감정들의 이름을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불안, 질투, 상실감, 그리고 슬픔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입원해 있던 산부인과 병원에 갔을 때 온돌방에 누워있던 엄마의 모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빠의 모습이 마치 흑백영화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같이 집에 가자고 엄마를 붙들고 울며 떼쓸 때 얼마나 서럽고 슬프던지...

그때 예감했던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그래서 동생의 탄생은 내겐 전혀 기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와 다르게 아들로 태어난 데다가 어렸을 때 몸이 약했던 동생은 단연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뭔가를 빼앗긴 느낌, 사탕이나 장난감이 아닌 그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놓쳐버린 느낌이 지금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억울함이나 답답함 같은 어린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을 견뎌내야 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명랑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늘 외롭고 우울했다.

자꾸만 뭘 잃어버린 느낌이 드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찾을 수도 없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기분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어른들 눈에 귀엽고 영리한 아이였다. 부모님으로부터의 사랑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주변 어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늘 관심받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 부모님에게 나 여기 있다고,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냐고 어린 마음속에서 음소거 고함을 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교묘하게 나와 동생을 차별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동생은 어질고 착한 아이, 나는 독하고 못된 아이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도 그대로 말씀하신다.

내가 딸이라 차별을 당한 건지, 독하고 못돼서 차별을 당한 건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나는 지금도 확실히 모른다. 꽤 오랫동안 나는 차별당한 이유가 내게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젠 안다, 차별은 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하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누구나 부모가 될 수는 있어도,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들이 스무 살을 넘기는 것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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