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아내의 입덧

by 삽질

아내의 입덧이 절정을 넘어 이제는 막바지로 가고 있다. 9주 차에 가장 심하고 10주 차부터는 점점 나아진다고 한다. 나는 고작 아내의 설명으로만 입덧을 경험하고 있다. 아내의 경우는 먹덧 체덧인데, 속이 비면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속을 채우면 소화가 안 돼서 억지로 트림을 꺽꺽한다. 임산부들이 입덧을 하며 토를 하는 건 자신처럼 제대로 트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아내는 주장한다. 그게 진짜든 아니든 아내의 말이 옳다. 난 아내의 고통을 감히 알 수 없으니까. 그저 옆에서 공감의 표정을 한 번 지어주는 게 내 최선이고, 여력이 남아있다면 아내의 엄지와 검지 사이를 눌러주거나 마지못해 등을 조금 두들겨줄 뿐이다. 이상한 심보인데, 아내가 발바닥을 마사지 해달라거나 등을 두드려달라는 부탁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내 표정을 보면서 아내는 나니깐 화 안 내고 같이 사는 거라고 장난스레 말하며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엔 서로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는 훈훈한 결론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감사합니다)

약 1년 반의 기간에 걸쳐 아내는 2번을 유산했다. 제주도에 내려오자마자, 운이 좋게 바로 임신을 했고 다행히 유산 확률이 높은 시기는 무사히 지나갔다. 생각보다 조마조마하지 않았다. 이번엔 모든 게 순조로운 느낌이었고, 잘 될 것 같았으니까. 제주도에 오지 않았다면, 아내가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우리는 입을 모아 말한다. 아내는 티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라 몰랐지만 생각보다 아내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학교 일도, 육아도, 사람을 만나는 일도.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데 편한 마음만큼 중요한 것도 별로 없다는 걸 다시 알게 됐다. 편한 마음을 얻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고 쉬운 일인데, 우린 뭘 그렇게 좇으며 살았던 걸까? 제주도의 삶이 명쾌한 답을 내려주고 있는 듯하다. 아내는 요즘 행복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


둘째가 우리에게 찾아온 게 고맙기도 하지만 조금은 찬밥 신세라 미안한 마음도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의 정신을 쏙 빼놓는 첫째가 있으니 둘째에게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직 태명도 없다. 요즘 내가 잠을 푹 자지도 못하니 태몽을 꿀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꿈을 꿔도 기억도 안 나고 대부분 개꿈이다. 첫째를 가졌을 땐 호랑이 무늬가 있는 두 마리의 아기 사자가 앉아있는 기가 막힌 태몽을 꿨는데 말이다. 그래서 첫째의 태명은 심바였다. 억지로 태명을 몇 개 만들기도 했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고 성의도 없어서 그만뒀다. (양배추, 바당, 곶자왈 등이 있다.) 자연스럽지 않은 건 우리 체질에 맞지 않는다. 기다리면 찾아오리라.

우리는 왜 굳이 잘 생기지도 않는 둘째를 갖기 위해 이토록 시간과 정성을 쏟았을까? 험난한 세상에 우리의 핏줄을 내놓는 죄를 왜 또 저지르려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의 욕심이겠지. 첫째와 지내는 지금의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하니깐, 그 기쁨을 더 누리고 싶은 욕심. 어떤 아이가 나올지 뽑기를 또 해보고 싶은 욕심.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얼마나 고생인지 경험했지만, 그 욕심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들을 씻은 듯 잊어버린 단순하고 멍청한 우리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간땡이가 부은 우리들. 출산과 육아는 계획해서는 전혀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다. 일단 저지르고 대처해야 한다는 우리의 신념에 따라 어떻게든 알콩달콩 살아보자는 행복 회로를 돌려본다. 어리석지만 따뜻한 우리의 품으로 아이가 무사히 왔으면 좋겠다. 과연 넌 어떤 아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