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르 찌가 떨린다. 자조와 낭패의 몸부림이 전해진다. 상대의 열패감을 놓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리라. 그 누군가를 딛고 올라설 기회를 잡기 위해, 또는 그 약한 고리를 빨리 보듬어 전체의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 눈치 빠른 강태공이 생 하나를 건져 올린다. 크거나 작거나 붉거나 검거나, 모자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오롯한 생 하나.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서 반 토막도 되고, 갑절도 되는 모양이다. 탄식과 함성이 그때 그때 다른 것을 보면.
붉바리가 딸려오면 감탄이 터진다. 대단하다고, 부럽다고, 축하한다고 웃음꽃이 핀다. 잡은 사람, 옆에 사람, 이따가 같이 회 한 점 할 사람 다 즐겁다. 역시나 붉은 몸, 열기 한 마리가 딸려오니 카메라 샤워 한 번 시원하게 받는 법이 없다. 여타 잡어들로 바글대는 물통 속에 무심히 던져진다. 낚시꾼은 손 빠르게 다음 미끼를 걸어 고급 어종이 꾀이기를 소망한다. 전복이니 성게알이니 하는 고급 미끼 값을 헤아리면서.
“우리딸은 왜 이 세상에 왔어?” 엄마가 묻는다. 네댓 살이나 될까 한 아이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눈도 떼지 않고 답한다. “엄마 혼자 무서울 까봐.”
소문난 결혼과 연이은 이혼으로 세간의 이목이 따가웠을 여배우다. 연애고수들 얘기론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던데, 버거웠던 시선도 또 다른 시선으로 치유되길 바라는 걸까. 그녀는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TV 관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부모 닮아 오목조목 인형처럼 예쁜 꼬마의 한 마디로 시청률이 솟구쳤다. 다음 날 인터넷 뉴스로 내용을 접한 내 눈물샘도 울컥한다.
울컥은 울컥이고, 나도 호기심이 동해 아이에게 묻는다. 주말 내 잘 놀아주고 샤워 시켜서 머리 탈탈 말려주며 들뜬 티 안 내려고 애쓰면서 같은 질문 해본다.
“엄마랑 아빠랑 언니랑 같은 가족 되고 싶어서.”
너무 좋아 보였단다. 그래서 그 먼 곳을, 그 복잡한 길을 헤치고 우리에게 온 거구나. 나는 목이 메여 제대로 대꾸하지도 못했다.
아이는 우연히, 가 아니라 제대로, 우리를 찾아왔다. 낚싯줄 같이 가느다랗고 투명하지만 질기디질긴 인연의 끝에 우리가 있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삼백 년을 내달려 색시나무 종아리에 발끝을 닿은 신랑 은행나무의 사랑(반칠환 詩 <은행나무 부부> 중에서) 처럼, 아이는 우리에게 환호하고 감탄하고 고마워해 주었다. 꿈인 듯 출렁이던 그 만남의 시작을 생각하면 너와 나는 모든 행운을 한날 한시에 수령하였으므로 매일 매일이 한 턱 내는 잔칫날이어도 과할 것이 없으리라.
큰애 같은 반에서 아이 하나가 몇 몇으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애가 목격자로 지목되었다며 교내 학교폭력위원회에서의 진술을 요청하는 담당교사 연락을 받았다. 아이와 상의해보겠습니다. 우선은 그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하교 후 만난 아이가 두 번도 묻지 않고 진술서를 쓰기 시작했다. 열세 살짜리 보다 마음이 얕은 나는 담당자에게 익명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날 밤 아이가 자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물었다. “엄마. 만약에 내가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떨 것 같아?” 말을 고르느라가 아니라 여러 말이 한꺼번에 튀어 나와 말이 되질 못했다. 일단 아이를 앉혀놓고, 일단 손부터 잡고, 마음 추슬러 몇 마디 전했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어른스럽지 못한 듯 하여 자기 전 기도가 길었던 것 같다. 다음 날에, 그 다음 날에도 아이에게 엄마 마음을 전했고, 그러면서 하느님께는 자식 되는 마음으로 하소연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이 다리를 건너는 법을 나는 모르니까, 아버지께서 재주껏 어떤 아이도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가해자 셋은 사흘 째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TV 속에서는 붉바리를 낚은 사람만 황금 배지를 달았다. 같은 날 잡은 열기도 아마 맛나게 구워지고 조려져 상에 올랐을 것이다. 모두가 위대하고 빛나는 인연으로 만난 우리는 하나같이 가슴팍에 황금배지, 금강석배지를 달고도 이토록 슬플 일이 많다. 작은 지혜로 너른 세상 나기가 고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