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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Sep 13. 2016

베를린, 벤야민, 보데, 브레히트...

베를린 1. - 시작은 B.......로

0.

굳이 독일, 굳이 베를린으로 여행하는 사람들


지구 한 바퀴 세계에 여행할 곳은 참 많다. 수많은 여행기들은 지구촌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바쁘다. 하필이면 유럽여행, 그것도 독일 베를린을 여행지로 결정한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무엇을 경험해야 할까?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긴 하나 런던이나 파리와 같은 대도시의 면모보다는 숲과 강의 도시이기도 하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긴 하나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레스토랑은 다른 유럽 도시에 더 많다. 맛집과 패션은 다른 도시들, 파리나 밀라노, 네덜란드와 같은 다른 유럽이 더 매력적이다. 베를린은 좀 더 다른 면을 부각하는 여행지다.


독일은 색다른 역사를 쌓아왔다. 신성로마제국을 이어온 제국이었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전대미문의 유대인 학살 범죄를 저지른 국가이며, 유럽연합을 발족시킨 핵심 국가에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난민 수용국이다. 이 나라의 수도는 바로 이런 역사를 보여주는 거대한 전시장이다. 역사와 그 자취를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치부까지 상품화하고 관광지로 만든 전대미문의 나라!


그 솔직한 자기 노출과 자기반성의 몸짓은 도시 전체를 규정하는 하나의 슬로건처럼 관광지와 박물관 그리고 거리와 공원에서 표출된다. 나의 베를린 여행은 이런 노골적인 베를린의 모습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1.

2000, 2005년, 2007년 그리고 2016년에 다시 찾은 베를린.


1년 만에 후다닥 통일을 밀어붙인 뒤 밀레니엄을 거쳐 그 사이 베를린에는 중앙역이 새로 생겼고,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Kreuzberg에 살던 터키인들은 좀 더 중심 쪽인 미테 Mitte로 이동했으며, 그곳은 서쪽의 예술가들이 자리 잡은 이제는 핫한 곳이 되었다. 싼 집값 때문에 아랍인들의 주 거주지가 되었으며 마약과 범죄로 악명 높은 '노이쾰른 Neukoeln에서는 여전히 '마약 단속 Hasenjagen'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이 도시를 여행객의 입장에서 둘러본 적이 없다. 늘 일로 다녀가던 곳,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유학 당시 독일 서쪽에서 공부했던 나에게 베를린은 5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도시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명한 100번, 200번 버스도 타고, 미테 Mitte지역에 정주하며 박물관도 돌아보고 조용히 거리를 산보하는 도시 산보자가 되어보려 한다.


2.

베를린 중앙역, 현대 공공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


베를린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이 곳! 3층 구조로 가장 위쪽은 S-Bahn이 다니고, 지하 tief에는 기차가 다니는 구조다. 런던에서도 공공건축이 어떻게 한 나라의 수도에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뇌리에 박히는 인상을 주는지 경험했는데 이곳도 그렇다. 온갖 가게가 다 들어서 있지만 절대 전면에 부각되어 여행객의 짜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사실 엘리베이터와 에스칼레이터의 단순한 배치만으로도 이렇게 경외감마저 도는 건물구조를 엮어내다니... 새삼 건축의 힘을 느낀다.      



고질적인 독일 기차 db의 연착, 수시 노선변경, 서비스 정신 희박한 인포메이션 센터는 여전했지만, 체류 기간 동안 독일과 유럽에서 일어났던 4번의 테러가 이곳을 비켜간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면 다행.
                                                  


2.

과거의 흔적들, 공사 중인 현재


미테 지역에는 아직도 과거 구동독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통일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이 시절 건물들이 방치된 모양은 역시 자본흐름의 양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바로 이 건물 'High ENd 54'가 그렇다. 과거 꽤 복작거렸을 듯한 건물. 벽에 다닥다닥 붙은 포스터들, 현관 앞의 노숙자들, 벽의 그라피티, 이곳도 헐리기 전에 사진으로 포착해둔다.

High End 54, 과거엔 영화관도 있었고, 댄스홀도 있었던 곳, 무너져가는 모습조차 시선을 끈다


이 폐허가 다 된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던 중 발견한 한 장의 포스터! 2016년 프랑크푸르트 영화 페스티벌에서 상을 탄 영화 포스터도 걸려있다. "북쪽에 있는 나의 형제 누이들", 우리에게 생소한 영화, 여기서 한국사람이라면 '북한?' 아니면 '남한?'을 묻던 시기도 있었다. 마지막 방문했던 2007년까지도......


평범한 슈퍼 '에데카 Edeka'의 치즈 진열장,


아주 조그만 진열장이 이 정도. 치즈만 봐도..... '그곳', 우리 기억 속에 있는 어느 장소는 사실 향과 맛으로 기억된다. 터키의 양고기 냄새와 티안과 오레가노 향신료가 그렇듯이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딱딱하고 오래된 치즈 향기, 프랑스의 말랑말랑한 염소치즈들..... 이렇게 화려한 치즈 진열을 보며 왜 독일을 대표하는 치즈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워낙 소시지와 맥주가 다양하게 발달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치즈 진열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다. 오감 중 미각이 가장 발달했을 것 같은 한국사람이니까~      

                                           

                                             

노란 Tramm, 트램, 전차는 왠지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1930년대가 이랬을까?                                                  

베를린의 노란 트램


교통표지판 읽는 법: M1이라는 트램이 Mitte, Am Kupfergraben 쪽으로 가는 데 2분 뒤에 도착한다. 자주 다닌다. 베를린에서는 트램을 타는 게 좋다. 지하철보다 밖을 구경하며 다닐 수 있고 쾌적하다. 물론 관광객들에겐 100번, 200번 버스가 가장 좋다.

                                                  

트램 정류장 안내표지판 읽는 법

베를린은 재건축 중,

여행 중 눈에 띄게 많이 보이는 이 분홍색 송수관, 이런 관이 지나다니는 곳은 거의 대부분이 대단위 재건축 내지 보수공사 중이다.


연결보급로라고 해야할까..

사실

이번에 찾은 베를린은 런던만큼이나 사방이 공사 중이다. 헐고 부수고 다시 짓고 보수하고 재건하느라 시끄럽고 부산하다. 서울의 종로가 변신해가는 과정을 보면 경제가 호황이고 도시 이미지의 변화 필요와 재건축이 맞물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를린이 중심축인 100번 노선을 따라 거대한 공사판을 벌인 것을 보면 베를린 스카이라인의 변화를 다음번엔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변화가 어떤 방향일지.... 전례 없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는 독일의 자부심이 반영된 건물들이 들어설 것이다. 현대적인 도시의 면모로 탈바꿈할 것인지.... 전통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일지...그 변화가 기대된다.


베를린은 공사중

베를린에서 서울과 같은 번잡함과 수십 개의 지하철 노선이 얽힌 대도시를 만날 수는 없다. 베를린은 옛날부터 숲의 도시. 강이 흐르는 도시였다. 슈프레 강가에 자리 잡은 이 수도, 과거 프로이센의 수도이기도 한 이곳은 저 슈프레 강 너머 '박물관 섬 Museumsinsel'에서 그 정체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곳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저 앞의 둥근 돔 천장은 바로 '보데 박물관 Bodemuseum'이다.


슈프레 강과 보데박물관, 강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마을같은 수도 베를린


독일은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다.

수많은 철학자들, 칸트와 헤겔, 막스와 엥겔스, 프로이트와 포이어바흐, 현대의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괴테는 또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알고 있는지, 헤르만 헤세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으며, 책 읽어주는 남자로 롱런 히트를 친 베른하르트 슐링크 , 전대미문의 살인자가 주인공인 '향수'의 저자 파트릭 쥐스킨트... 그러나 이 사람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독일문학에서 참 중요한 인물이다. 나의 개인적 선호도? 노노....


베르톨트 브레히트 동상, 베를리너 앙상블 극장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 동상

3.

베를린의 유년시절


"누구에게나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요정은 있다. 다만 자신이 실제로 품었던 소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다. 따라서 소수의 사람만이 나중에 자신의 삶에서  소원이 실현되었음을 알게 된다."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베를린 연대기> -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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