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1100고지 설경
한겨울, 한라산은 정말 선명하고 뚜렷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느 도로를 달리든, 어느 오름에 오르든, 항상 그곳에서 한라산이 보였다.
언제 어디서 보든 한라산 백록담을 품은, 한라봉을 꼭 닮은 정상의 모습은 늘 가슴을 뛰게 만든다.
특히 눈이 덮여 있어 그런지 히말라야 팔천미터급 설산들도 부럽지 않았다.
겨울왕국, 눈 구경하러 1100고지로 향한다.
지난 여름, 한 여름에도 서늘해지는 기운을 느꼈던 1100고지. 점점 올라갈수록 지난 주에 내린 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로 한켠에 쌓인 눈이 점점 더 두터워지더니 어리목에 이르니 본격적인 설경이 시작되었다.
이런 풍경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함박눈이 무겁게 내려앉은 설경이 아니라 마치 슈가 파우더를 듬뿍 뿌려서 후~불면 날아갈듯한 설경이다.
슬며시 손으로 만지면 손에 다 묻어날 듯한 가벼움이다.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슈가 파우더 같은 모습. 색다르게 아름다웠다.
얼음 꽃, 상고대의 아름다움
아직 1100고지 휴게소에 다다르지도 않았는데 눈꽃이 화려하게 도로와 하늘을 점령하고 있어서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이 난 곳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한겨울 나뭇잎들을 모두 다 떨어뜨린 앙상한 나무가지에 눈이 부시게 하얀 눈꽃이 만발해 있었다.
새파란 하늘과 더불어 더욱 보석처럼 빛나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눈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상고대였다.
상고대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하거나 0도 이하로 과냉각 된 안개나 구름 등의 미세한 물방울이 수목의 탁월풍이 부는 측면에 부착, 동결하여 순간적으로 생긴 얼음으로 수빙이라고도 한다" 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눈이 내린 것이 아니라 수증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만들어진 얼음꽃이라는 말씀....
아, 그래서 그런지 상고대는 눈꽃보다 더 빛나는 보석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자세히 보니 눈꽃과는 다르게 상고대는 나뭇가지의 윗부분에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분 방향대로 얼음이 얼어 있었다.
모두가 한방향이다.
입으로 후 불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잡아 뗄려고 해도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뭇가지에 얼음꽃이 착 들러봍어 있다.
아마도 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을 곧 점점 더 뜨거워질 태양뿐 일 것이다.
찾아보니 상고대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이 내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하늘을 보면 너무나 맑은 하늘인데 상고대는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되어 나뭇가지에 들러붙기 때문에 공기중의 수증기가 있고 매서운 찬바람이 불면 상고대가 점점 커져간다고 한다.
상괟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그리고 이른 봄에 많이 발생한다. 통상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한라산 1100고지는 딱 1000미터가 넘는 곳이다. 낮에 따뜻했다 밤에 기온이 급강하하는 지역이 이 정도 높이의 산이기 때문이란다.
상고대를 본 날은 갑작스럽게 날씨가 추워진 날이었다. 운이 좋았다.
산에 하얀 꽃이 핀다고 해서 다 상고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눈이 쌓인 것은 설화, 쌓였던 눈이 얼면서 얼음 알갱이가 줄기에 매달리는 것은 빙화라고 구분한다고 한다.
상고대가 생기는 조건이 까다롭다보니 아무 산에서나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백산, 덕유산, 태백산, 오대산 등이 상고대가 잘 형성되는 조건을 갖춘 산이라고 하니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기 떄문에 상고대가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것이라 한다.
지구 환경도 지켜야겠지만 상고대의 아름다움도 많이 보아서 두 눈과 마음에 각인시키고 싶다.
나이를 먹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분명 어렸을 떄도 상고대를 많이 보았을텐데 지금처럼 감동을 받지는 못했던거 같다.
설경이 아름답구나..정도였다.
나이가 드니 이러한 이름다움이 절절하게 가슴에 와서 박힌다.
겨울이 선사하는 최고의 아름다움인거 같다. 특히 추위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말이다.
상고대의 아름다움은 찰나와 같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석처럼 빛난다 해도 태양이 조금 더 뜨거워지면 금세 녹아버린다.
그래서 상고대를 보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산에 올라야 한다. 역시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쉽게 얻어지진 않는다.
추위를 싫어하지만 적어도 이날만큼은 이 추위가 계속되어 상고대의 아름다움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환상적인 풍경을 즐겼으면 좋겠다.
겨울 제주는 새빨간 동백꽃, 샛노란 유채꽃이 만발하는데 이렇게 새하얀 눈꽃도 아름다우니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1100 고지를 즐기고 내려가는데 마치 상고대 터널이 벚꽃 터널 같은 느낌이 났다. 모르는 사람이 사진을 얼핏 보면 벚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상고대 눈꽃 길을 따라 행복하게 드라이빙을 했다. 하지만 고도가 낮아지니 정말 어느순간 거짓말처럼 상고대가 사라졌다. .
이제는 매일 아침 하늘을 보며 오늘은 상고대가 활짝 피었을까 상상을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