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백상예술대상의 한 장면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박나래가 여성 예능상 수상자로 호명된 순간이었다. 같은 상 후보였던 안영미가 박나래의 수상에대놓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안영미는 그날 SNS에 마스크를 쓴 채 초췌하게 누워 있는 사진을 올렸다. 사진 아래에는 "나래야...진짜 축하해....^^"라는 글과 함께 '#시상식 다신 안가'라는 세상 솔직한 해쉬태그가 달려있었다.
안영미의 연기와 해쉬태그가 유쾌했던 이유는 질투라는 감정을 솔직하게 웃음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끼면 창피해하며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감정을 숨기고 대신 다른 행동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아닌 척하며 상대방의 업적이나 성취를 깎아내린다. 내가 첫 책을 냈을 때에는 어떤 지인이 "책, 그거 요즘에는 아무나 내던데"라는 말을 나에게 날렸다. 말과는 반대로 눈에는 질투의 눈빛이 선명했다. 자식이 어디 대학에 갔다고 하면 "요즘 그 대학 들어가기 쉽던데.."라고 말하거나, 상대방의 높은 연봉을 듣고 "연봉이 그 정도면 직장인 평균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경우를 비슷한 사례로 들 수 있겠다.
나도 마찬가지다. 부러움이나 질투를 느끼면 이 감정을 처리하는데 서툴다. 상대방의 업적이나 자랑거리에 대해 알게 되면 제대로 듣지 못한 척 하기도 하고 건성으로 듣는 시늉을 보일 때도 있다. 대화 소재를 은근히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쓰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창피한 모습이지만, '내가 너를 진정으로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보인 행동이었다.
질투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넘사벽'이라 느껴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례로 나는 이 나라의 부자 중동 엄마들을 부러워하거나 전혀 질투해본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대저택에 살면서 집에서 도우미와 베이비 시터를 서너명씩 부리며 육아나 가사에 전혀 치이지 않고 자유롭게 놀러다닌다. 이들의 삶은 내 삶과 괴리가 너무 커서 그저 나와 다른 차원의 사람들로만 느껴진다. 부럽다는 감정조차 들지 않는다.
대신 나와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앞서가 있거나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유치하게도 못들은 체 하거나 화제거리를 돌리는 등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유치한 행동이 나오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부러운 것을 '부럽다'고 입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브라만테의 질투가 만들어낸 결과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천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가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앳된 성모 마리아의 숭고한 모습, 보는 각도에 따라 변하는 마리아의 표정과 느낌. 그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경지 아닌가 싶다. '피에타'의 미켈란젤로는 그야말로 타고난 조각가였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미켈란젤로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출처: 위키미디어
이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인물도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있었다. <아테네 학당>을 그린 동시대의 라이벌 라파엘로(1483~1520)가 그 대상이었다. 미켈란젤로는 같은 공방 견습생에게 얼굴을 맞아 코뼈가 내려앉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얼굴로 평생을 살아갔다. 성격도 괴팍했다. 반면 라파엘로는 대단한 미남에다 온화한 성격, 재능까지 갖춘 예술가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를 극렬히 싫어했다. 그는 라파엘로를 '나를 따라하는 흉내쟁이' 정도로 폄하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의 회고록에는 "라파엘로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라는 말이 남아 있다.
라파엘로의 자화상(좌)과 미켈란젤로의 초상화(우) @출처 : 위키미디어
반대로 미켈란젤로가 질투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동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브라만테(Donato d' Aguolo Bramante.1444~1514)가 미켈란젤로를 질투한 인물로 유명하다. 브라만테 역시 당시의 유명한 예술가였으나 천재인 미켈란젤로는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마침 브라만테는 베드로 대성당의 건물을 개축하는 일을 총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교황 율리우스2세를 꼬드겨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 회화 프로젝트를 맡기게 한다. 교황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프로젝트였다. 질투에 휩싸인 나머지 미켈란젤로를 곤경에 빠뜨리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였던 브라만테의 초상 @위키미디어
미켈란젤로가 맡은 회화 프로젝트는 프레스코화로 작업하는 고된 일이었다. 프레스코화는 젖어 있는 석회 벽 위에 수채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젖은 석회에 안료가 스며들어 건조 후에 정착되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안료가 벽에 스며들기 때문에 물감이 벗겨질 염려가 적어, 그림의 수명이 오래 유지되고 수정도 쉽다. 그러나 작품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석회와 모래를 배합하여 재료를 준비하는데만도 2년 이상 걸리고 건물의 벽이나 천장에 그리기 때문에 화가에게는 극도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기법이었다.
천장화를 그려본 적이 없는 미켈란젤로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무척 난감한 일이었다. 그는 이 일을 포기하고 싶어했으나 교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더욱 고되고 힘겨웠다. 고개를 젖힌 채로 천장에 그리는 그림을 그려야 했으니 눈과 목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이 와중에 참을성 없는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작품이 언제 완성되는지 물으며 재촉하기도 하였다. 미켈란젤로는 지친 상태로 "완성되는 날 끝난다"는 대답을 내뱉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때도 있으나,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위해 끝내 붓을 집어들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반쯤 완성되던 날이었다. 교황은 브라만테와 동행하여 그림을 보러왔다. 놀랍게도 천장화는 더할나위없이 훌륭했다. 브라만테는 당황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나머지 부분의 제작을 맡겨달라 했으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감동한 교황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천재 조각가는 회화에서도 천재였던 것이다. 4년 만에 완성된 이 천장화는 '천지창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정식 이름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다.
'천지창조'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모습. 유명한 그림 '아담의 창조'는 이 천장화의 한 부분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질투에서 썩은 냄새가 나지 않도록
미켈란젤로를 향한 브라만테의 질투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질투의 대상을 곤경에 빠뜨리려다 기회를 주는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 천지창조 이후로 브라만테는 더 큰 질투에 휩싸이게 되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인정하고 부럽다고 했으면 될 일을 오히려 크게 키운 것이다.
드라마 <청춘시대>에도 질투에 관련된 장면이 등장한다. 드라마 속 강이나(류화영 분)는 가난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명문대생 윤진명(한예린 분)에게 '부럽다'거나 '질투가 난다'고 말하지 못한다. 대신 그녀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서 되고 싶은게 겨우 회사원이야?"라는 비뚤어진 질문을 윤진명에게 던진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는 질문을 실컷 던진 후 그녀는 생각한다.
'너처럼 되고 싶은데 너처럼 될 수 없으니까, 미워하는 수 밖에 없어. 그래서 냄새가 나는 거야.
내 질투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
부러우면 그저 부럽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감정을 표현하고 나면 그 감정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러움과 질투를 마음 속에 묵혀두었다가 비뚤어진 말을 내뱉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져보면 부러움이나 질투가 딱히 유치하거나 창피한 감정도 아니다. 누구나 느끼는 흔한 감정이다. 누군가를 질투하며 시간을 계속 보내는 것보다 상대방의 장점이나 성취를 인정하면 되려 마음이 편해진다. 오히려 질투를 숨기고 상대방에게 초연한 척하며 비뚤어진 말을 던지면 더 유치해 보이기도 한다.부러우면 지는 것이 아니라 부러움을 감추다가 진짜 지는 것이다. 안영미의 질투어린 해쉬태그가 도리어 건강하고 유쾌해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