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대하여

[근사한 문장 no.6]

by 아트필러

아직 슬픔이 있었고 어둠도 밀려왔지만, 큰 용맹과 위업이 다 헛되지만은 않았다.

-「반지원정대」 1권, 2장


삶이 부질없게 느껴지거나 존재의 무기력함을 느낄 때 자주 떠올리게 되는 문장이다. 아직 세상에는 슬픔이 너무 많다. 인류 역사상 모든 어둠과 슬픔이 물러나는 날은 단 하루도 없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는 희망과 기쁨만을 원한다. 절망과 슬픔은 피하고 외면한다. 마치 둘이 공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그러나 둘을 떼어 놓고 하나만 취할 수는 없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진리다. 그래서 예술이 필요한 것이다. 글과 그림, 음악, 영화가 삶의 모순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행위 자체도 허구와 진실이 공존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N01640_9.jpg <Hope>, George Fredric Watts and assistants, 1817-1904 ⓒ Tate


처음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그림의 제목과 내용을 연결 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걸까? 그림 속 여인은 줄이 끊긴 리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게다가 이 그림을 볼 수 조차 없는 대상을 캔버스에 그려 넣고, 제목을 <희망>으로 지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한참 동안 그림 앞에 서 있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을 때 그림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희망과 절망은 사실이 아닌 태도에 달린 것이다.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이 그림은 단순히 절망을 보여주면서 공존하는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희망 혹은 절망으로 받아들이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에 슬픔과 어둠이 밀려오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생각이다.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사람도 있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건 회피나 왜곡일 뿐이다. 그리고 절망은 모든 의미를 빼앗아 간다.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무가치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은 인간을 더 깊은 어둠으로 하염없이 끌어내린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큰 용맹과 위업이 헛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연주할 수 없는 리라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절망은 희망으로 바뀐다.


희망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보는 낙관과는 다르다. 그림 속 여인이 줄이 끊어진 리라를 연주하거나 시력을 회복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대신 희망은 삶은 헛되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 순간에도 삶을 믿는 것이 곧 희망이다. 비록 실패하고 좌절하고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의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배운 것과 느낀 것을 기반으로 더 단단하게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슬픔과 여전히 존재하는 어둠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림 속 여인과 소설 속 반지 원정대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헛된 하루는 없다. 다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언제나 삶 속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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