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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May 09. 2021

미역국이 먹고 싶어

고기 기름과 간장이 섞인 국물에 미끌거리는 미역 가득



먹고 싶어


출처 cj 제일제당 레시피


미역국이 먹고 싶다. 짙은 초록빛 미역이 잔뜩 들어있고 소고기 조각이 먹기 좋게 담겨있는 깔끔한 국물. 숟가락으로 퍼올리면 수저를 잔뜩 휘감은 미역과 먹음직스러운 고기, 그 위에 차분히 묻어있는 고소한 기름들을 한 입에 먹고 싶다. 간장이나 다시다를 넣어 만든 덕에 감칠맛이 느껴진다. 소금기 가득 짠 맛이 아닌, 식자재 특유의 짭쪼름한 맛. 그리고 입 안엔 미끄덩거리는 미역들이 가득차겠지. 제아무리 꼭꼭 씹어도 치아 사이에 낄 정도로 유연하고 매끈한 미역들을 꿀떡 삼키고 싶다. 팔팔 끓여놓으면 이틀이 지나도 맛이 좋다. 고슬고슬한 쌀밥을 준비해오자. 물론 김치도.


짭쪼름하고 감칠맛이 가득해서 밥 말아먹기 딱 좋은 미역국


밥을 말아먹기에 딱 좋은 국물 음식이다. 단, 밥을 너무 많이 말아버리면 죽처럼 되직하게 바뀌니 꼭 국물양이 더 많도록 신경쓰자. 자박하기보다는 풍족할만큼 국 양이 많아야 미역국 특유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 소금이나 설탕이 따로 들어가는 국물은 아니라서 밥이 많으면 쉽게 싱거워진다. 어찌보면, 그만큼 건강한 국물요리라는 뜻도 있겠지.



1) 다양한 버전이 있다지만


출처 만개의레시피 '혀니'


미역국의 메인은 '미역'이기에 서브 재료는 개인 취향에 따라 바뀌는 편이다. 오리지날은 소고기. 그러나 가장 많이 먹는 베리에이션이라면 참치 미역국이 있다. 소고기 대신 참치와 참치기름을 사용한다. 육고기향이 사라지고 참치 기름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짭쪼름한 맛이 강한 국 간이 완성된다. 밥을 말아 함께 씹으면, 잘게 부서지는 참치 특성상 퍼석거리는 식감이 느껴진다. 미끌거리는 미역과 정 반대인 식감이 재미있다. 거기에 참기름을 많이 넣지 않아도 참치기름 향이 충분하므로 재료도 아껴진다. 다만 국자로 국을 휘저을 때마다 참치가 잘게 부서지기 때문에 다음날에 다시 먹으려하면 통참치 조각이 많이 해체된 상태가 된다.



해산물에 집중한 버전도 있다. 조개/홍합/담치 미역국이 그 예이다. 호불호가 나뉘는 편이다. 참치/소고기처럼 기름 맛이 강한 재료 대신 해산물을 넣으면 담백한 맛이 된다. 국에 담긴 미역국 가장 자리에 뜬 기름은 모두 사라진다. 국의 색도 훨씬 하얗게 변한다. 먹으면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속풀이 맛이 난다. 미역과 조개의 조합은 우수하다. 술 마신 뒤에 한 국자 크게 후루룩 마시고 싶은 맛. 다만 고기나 참치 육수의 깊은 맛대신 해산물 향이 꽉 차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심심한 국이 된다. 밍밍하다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소고기랑 조개를 함께 넣어버리면 이도저도 아닌 맛이 된다. 미역국 너란 녀석, 하나에 집중해야 하는 타입.



2) 역시 생일엔 소고기 미역국이더라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그래도 나는 소고기 미역국이 좋더라. 특히 생일이면 미역국을 꼭 먹는데, 소고기가 빠져있으면 서운한 느낌이 든다. 가끔 부모님이 고기가 아닌, 해산물로 미역국을 끓여주시면 "고기가 많이 비쌌나요...?" 왠지 모르게 섭섭해져. 고기 기름이 둥둥 떠있는 미역국에 기꺼이 숟가락을 넣고 싶다. 고기 조각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 좋아. 기름 때문에 노르스름한 국에서는 고기국 특유의 깊은 향이 난다. 자꾸 떠먹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 하지만 느끼하지 않다. 잘 불려진 미역이 매끄럽게 혀를 감싸며 감칠맛을 싸악 남기고 목구멍으로 떠난다. 흰쌀밥 한번 더, 다시 한번 더, 여러번 먹게 만드는 맛.


생일이니까. 난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비싼 줄 알면서도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는 한우로 골라본다. 고기에 참기름을 두르고 간장을 붓고 들들 볶다보면 고민이 돼. 이거 그냥 국 끓이지 말고 지금 먹어버릴까? 충분히 익었고, 냄새 미칠 것 같은데 말이지. 아냐. 그래도 생일이니까 참아야지. 결국 미역과 물을 넣어 국으로 만들어버린다. 볶인 한우에서 풍기는 고기향을 참아가며 만든 미역국의 맛은, 그야말로 생일의 맛. 여태껏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는 인내의 맛. 충분히 겨딜 가치가 있었어. 삶의 맛이다.



3) 집밥 흉내내는 자취생에겐 빛


출처 제일제당


자취를 하고 내가 시도해본 국요리가 두가지 있다. 하나는 김치찌개, 하나는 미역국이다. 전자는 김치의 익힘 조절이 필요해 몇번 실패했지만 미역국은 실패한 적이 없다. 너무 간단해서 이 국요리를 만든 조상님에게 절하고 싶어질 지경! 고기넣고, 기름넣고, 볶아요. 불린 미역을 잔-뜩 담아요. 물을 붓고 끓여요. 기호에 따라 다시다를 넣어요. 아참, 기름맛을 잡아주고 개운한 맛을 더하려면 다진 마늘도 듬뿍 넣어요. 고춧가루는 넣지 말아요. 이 국에는 참아줍시다. 아무튼 팔팔 끓이기만 하면 돼요. 내 부족한 정성에 비례하지 않는 감사한 맛.


김치랑 잘 어울리는 것도 고맙다. 다른 반찬을 생각나게 하지 않는다. 흰 밥과 김치만 있으면 한끼가 뚝딱 해결된다. 아삭아삭한 총각무랑도 잘 어울려. 익은 배추김치랑은 말할 것도 없고. 분명 고기국물이긴 하지만 몸에 좋다는 미역을 잔뜩 먹은 탓에 살찐단 느낌도 안든다. 얼떨결에 두번째 밥공기를 담고 있다. 위험한 음식. 



4) 컵밥, 라면, 즉석국


출처 청정원


요즘에는 미역국 풍미를 활용한 상품이 많이 등장했다. 즉석밥, 죽, 라면, 인스턴트 국까지! 얼마든지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복잡한 조리과정이 필요없고, 투여되는 재료도 간결하여 어떤 상품을 먹어도 중간 이상의 맛을 느끼는게 가능하다. 감사한 일이지. 그래도 가끔은, 집에서 부모님이 끓여주는 미역국이 먹고 싶어. 노란 기름이 미역에 잔뜩 젖어있는 국물 맛이 그리워져. 전자레인지 2분 ok말고, 촉촉+고슬하게 익은 밥솥밥도 그리워지고. 고기 기름과 간장이 섞인 국물에 미끌거리는 미역 가득, 미역국이 먹고 싶다.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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