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kerJ Mar 06. 2024

월 천 버는 남편보다 더 많이 벌고 싶었던 이유

남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복해지기

지난 주말 오랜만에 남편과 대차게 싸웠다. 돌아보니 그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그럴만하게 느껴지는 일이어서 결혼 10년차에 처음으로 짐 싸들고 아이들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남편과 나는 체감상 365일 중에 355일 정도 잘 지내고 10일 정도는 부딪히며 산다. 한 쪽에서 빠르게 사과하고 가볍게 넘어가는 일도 많지만 둘 다 각자의 입장과 논리로 팽팽하게 부딪히게 되면 장녀 장남의 자존심을 한 껏 세우며 어느 쪽도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남편은 다짜고짜 나가버린 것에 대해 상처 받은만큼 화가 많이 났지만 헤어질 생각은 아예 안했다고 한다. 뭐 결과적으로 355일간 잘 지내온 관계라 돌아와서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잘 지내고 있긴 하다.



남편이 그랬다. 내가 그렇게 월 천 버는 걸 목표로 하고 그걸 해낸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따라하려고 하면서 왜 정작 가장 가까이에서 월 천 벌게 된 자기 말은 안 듣는지 모르겠다고. 맞다. 남편은 점점 수입을 늘리기 시작해서 지금은 월 천 정도 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당장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벌이도 늘었지만 빚도 워낙 많기에. 무엇보다 월 천 이상 벌게 되었다고 남편이 이 전보다 행복해지진 않았다. 남편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내 기준으로는 남편이 구체적으로 요청한 것 중에 나도 동의하는 부분에서 안 들어준 것은 없고 남편 기준에 비춰보면 어떤 영역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가 남편이 원하는 우선순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이번에 부딪힌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일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남편에게 내가 생각보다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거였다. 당연히 부부니 의지하며 사는 거지만 마치 남편이 내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주고 만족하지 않으면 정말로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인 걸로 확정된 것처럼 무너질 정도로 매여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 사람의 이런 부분이 싫다’는게 포인트가 아니라 ‘이 사람이 나에게 만족 못한다면 같이 살 수 없다’는게 집 나오게 된 결정적 포인트인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 남편에게 내가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게 바로 ‘남편보다 잘 버는 것’이라 나에게 당장 급하지도 않은 월 천을 버는 게 중요해진 걸까. 표면적으로는 내가 더 잘 벌어야 남편이 진 가장의 무게가 좀 가벼워지고, 남편의 육아휴직이 확정될 수 있고.. 이런 이유도 물론 거짓은 아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나 싶다.



근데 이번 일로 오히려 내 목표는 ‘월 천 이상 버는 것’에서 바뀌게 되었다. 정말 뜬금 없을 수 있는데 바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 되기’다. 기준을 바꾼 이유도 역시 남편과 관련이 있는데, 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이상으로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바로 ‘삶의 태도’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똑똑하고 능력도 좋고 책임감이 큰 사람이지만 그에 비해 행복해하고 감사하는 능력은 상당히 낮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말이나 반응도 많이 한다. 내가 알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행복도 감사도 긍정도 능력이다. 물론 노력하면 충분히 키울 수 있는 능력이지만 지금까지의 남편은 이런 능력들에 대한 관심 자체가 낮다. 그런 남편이 그간에는 안쓰럽고 안타까웠고 때로는 나도 감사보다는 불만의 늪으로 함께 빠지기도 했다. 이제는 그냥 나대로 나아가보려 한다.

어제 목표를 바꾸면서 100번 쓰기 문장도 ‘24년에 월 천 이상 벌기’에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항상 기쁘고 감사하게 되었다’로 바꾸겠다 하니 정말 놀랍게도 그 말을 들은 남편이 “그 목표가 이루어지면 나한테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당장 본인이 그 길을 갈 생각은 없지만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는걸까.

물론 목표를 바꿔 놓고도 나는 문득문득 ‘월 천’을 힐끗거리고 흔들릴 것이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나로서 항상 기쁘고 감사하며 살겠다는 이 결심과 목표가 ‘월 천 이상 벌기’보다 훨씬 빠르게 남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그리고 믿는다. 나는 분명 ‘기쁘고 감사하게 월 천 이상 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전 04화 월 천 벌겠다 하니 부모님 얼굴이 어두워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