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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May 03. 2024

내 안의 '트리거'가 작동될 때

힘겨운 한 주를 보냈다.


간신히 일어나 평소 해 오던 루틴들을 이어갔지만, 예전처럼 재미가 없었다. 오전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쓰고 싶어서 한 시간 일찍 일어난 지 두 달 째다. 하지만, 며칠째 알람을 꺼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서 겨우 할 일들을 해나갔다.


요가 루틴을 지키고, 걷기도 빼먹지 않았지만 요 며칠은 겨우 걸을 수 있을 뿐이었다. 지방을 태워서 칼로리를 소모하려면 빠르게 걷기를 해야 하지만, 걸음이 전과 같지 않았다. 터덜 터덜, 느릿느릿. 활력을 잃은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흐물거리는 것 같았다.  이 와중에 계절은 5월이라 온통 환하고 초록초록했다. 선명한 계절의 아름다움이 적절한 태양빛에 녹아 눈이 부셨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우울이 심했던 2년 전의 내가 떠올라 불안해졌다.


나는 이제 완전히 좋아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왜 '완전히' 따위의 부사를 붙이느냐고. 뭘 그렇게 확신하는데!) 하지만, 정말이다. 나는 내 일상에 큰 불만이 없었다. 꿀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이 많았고, 무리하지 않는 일상 루틴과 2주에 한 번 녹화를 진행하는 일을 별 탈 없이 1년 넘게 해오고 있는 터였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맛있는 안주와 함께 혼술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했다. 소소한 것들을 찾아가면서, 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위안하면서, 이만하면 아주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지탱하고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하지만, 겨우 새 살이 돋아난 여린 마음에 균열이 생기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아주 작은 자극임에도 쫙- 스크래치가 그어지고 급기야 심각한 손상이 생겼다. 그 일은 이번에도 아무 날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날 일어났다. 사실 예전이라면 큰 일에 끼지도 못할 사소한 걱정일 뿐이었다. 다만, 사소한 걱정을 사소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면 문제였을 것이다.


월요일 저녁, 친언니가 전화를 해왔다.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다가 아빠의 건강과 노후 생활이 염려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활동적이고 사회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는 몇 년 전 은퇴를 하시고, 약간의 우울과 함께 삶의 활력을 잃으셨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지만, 여전히 왕년을 잊지 못해 힘들어하신다.


아빠의 약한 모습을 봐 온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왜 그날은 그 사실이 그렇게 힘겹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 앞에서 나는 다시 무기력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더 애쓰면서 열심히 살으라는 거냐며,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 것인지, 어차피 인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데, 그간 '퐁퐁' 샘솟던 의욕이 쏙 들어가 버렸다.


인생이 내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나는 이제 다시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쉬기가 힘들다.


사실은 내 일상이 아주 마음에 다 들지는 않지만,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눌러온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불안이나 상실, 우울과 멀어지기 위해 애써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 순간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내 안의 '트리거'가 작동했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와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불편하고 억울한 감정을 만났다. 그렇다, 나는 억울하고 분했다. 나는 이렇게 잘 살려고 하는데, 도대체 왜 내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지에 대해.


나는 내가 다시 무기력해지고 의욕을 잃는 것을 가장 싫어했기 때문에, 그 상황이 다시 올까 봐 불안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마음이 가장 힘들다.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는데, 나는 앞으로 더 잘 살아야 한다. (이 역시 보상 심리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나는 진짜 잘 살고 싶다. 그러려면 내 주변의 상황들이,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줘야 한다.


애쓰지 않아도 편안하고 평탄한 인생을 꿈꾼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중일까? 내 인생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불안과 걱정과 자기 연민에 빠져 힘들었던 한 주가 (그래도) 지나가고 있다. 나는 다시 글을 썼다.


부디, 무사히 하루하루가 흐르기를.

우리 모두의 하루의 끝이 그저 평온하기를.


트리거(Trigger)

트라우마를 재경험하게 하는 자극

방아쇠를 당기다, 폭발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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