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다는 것
그가 또 내 방을 다녀갔다
새벽녘, 누군가 나를 덮친듯한 서늘한 기운에
잠시 뒤척였던 기억이 흐릿하다
지난밤 창문 활짝 열어놓고
늑골 밑 신음 소리 늦도록 듣다 잠든듯한데
내 몸속 어딘가 흐르다 갇힌 물길 있어
밤이면 순한 물짐승 같은 사내 끌어들여
한바탕 같이 흐르는 것인지
서로를 열고 밤새 출렁였던 것인지
일어나 보니 몸은 늘어지고 이불이 축축하다
나는 가끔씩 내 방을 다녀가는 이 불투명한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다만 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저수지 어디쯤에 사는 안개족 사내일 거라는 짐작만 할 뿐, 어느 날 그를 찾아갔었지만 그는 물속 깊이 몸 숨기고 모습 드러내지 않았다
밤이면 도둑처럼 스며들어
나를 한껏 적셔놓고 가버리는 배후에 대해
나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다녀간 이튿날이면
눅눅한 이불을 내다 말리며
나도 햇솜처럼 부풀려 놓는다
나는 어느새 그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