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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Dec 02. 2023

공무원 면직자의 하루 루틴

원하는 삶 살아보기

벌써 면직을 한지도 3개월이 지났다.


나는 2023년 9월 1일 자로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면직했다. 2018년 8월에 임용됐으니 대략 5년간 근무한 셈이다.


면직이 되던 날,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를 옥죄고 있던 족쇄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한 직장이지만 스스로는 매우 갑갑하게 여겨왔기 때문인 것 같다.


면직 후 입덧지옥도 경험하고, 추석 명절도 보내고, 태교여행도 다녀왔다. 그간 직장에 매여 못했던 일들을 약 2달의 시간 동안 실컷 했다. 그러고 나니 다시 고요한 일상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 집순이라서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거니와, 임신 초기라서 야외 활동을 많이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더욱 집에서 안정을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나에게도 무언가 할 일이 필요했다. 하루의 루틴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원래 루틴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실천해 나가서 최종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루를 알차게 보냈을 때 보람을 느끼고 만족감을 느낀다. 오늘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라는 뿌듯함.


반대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냥 흘려보내는 혹은 그냥 죽이는 시간을 조금은 싫어한다. 가끔 모든 일에 지쳐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루틴이고 뭐고 그저 시간을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몸과 마음과 정신의 휴식을 위한 일시적인 시간이지, 그런 날들이 계속되는 것은 나에겐 더욱더 큰 무료함을 줄 뿐이다.


그래서 하루의 루틴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더 이상 직장이라는 곳에 얽매여 있는 시간이 없으니,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다.


그래서 자유로움이 있지만 그래서 루틴이 필요하다.






나는 그동안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일명 '작가의 삶'이다.


언젠가 직장을 은퇴하고 노후에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작가의 삶'이다. 모든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고 자유롭게 하루를 쓸 수 있다면 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 난 내 모든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다. 그러니 살 수 있다. 작가의 삶을.

원했던 인생을 노후로 미루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실현이 가능하다.


그래서 요즘 나의 하루 루틴은 이러하다.


<공무원 면직자의 하루 루틴 : 일명 작가의 삶>

기상 - 아침식사 - 씻기 - 글쓰기
점심식사 - 스트레칭 - 낮잠 - 책 읽기
저녁식사 - 샤워 - 자유시간 - 감사기도 - 취침






눈뜨면 제일 먼저 아침식사.

임산부라 빈 속은 쓰려서 아침에 일어나면 뭐라도 먹어줘야 한다. 요즘 꽂혀있는 것은 밀양 얼음골 사과이다. 아삭하고 새콤 달달한 사과를 먹을 생각에 아침부터 신이 나서 일어난다. 요거트나 통밀빵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그러면 은근히 든든한 아침식사가 된다.


아침 식사 후 씻기. with EBS 라디오(최수진의 모닝스페셜).

매일 집에 있더라도 매일 씻는 것을 선호한다. 지성피부라 하루라도 안 씻으면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것도 한 몫하지만, 아침에 씻어줘야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원래는 씻으면서 유튜브에 재밌는 영상을 틀어두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은 EBS 라디오를 틀어둔다. 씻느라 화면을 볼 틈은 잘 없지만 귀는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들었던 '최수진의 모닝스페셜'을 씻으며 듣고 있으면 잠도 깨고 영어 공부도 하고 일석이조다.


글쓰기는 하루 중 정신이 가장 또렷할 때.

맥북을 펼쳐 나와 다른 작가님들의 브런치를 살피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요즘은 다낭 여행기를 쓰고 있다. 루틴을 만들려고 일부러 연재 형식으로 발행하고 있다. 새로운 방식이라 재밌기도 하고 매주 수요일 연재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간의 책임감도 느껴진다.






점심 식사는 규칙적으로.

오전 11시 반~ 12시쯤. 배꼽시계는 늘 정확하다. 요즘은 입덧이 많이 완화되어 집밥도 잘해 먹는다. 그중에서도 꽂혀있는 메뉴는 카레다. 원래도 카레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입덧이 심할 때도 가끔 카레는 먹고 싶더니 요즘은 매일 카레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다.


식사 후엔 가벼운 스트레칭. with EBS 라디오(윤고은의 EBS 북카페).

식사 후엔 소화를 위해 또 임신한 몸을 위해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원체 뻣뻣한 몸이라 대단한 동작은 못하지만 팔과 다리를 뻗어주고, 당겨주고, 늘려주는 것만 해도 몸이 한결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스트레칭할 때도 EBS 라디오를 켜둔다. 이 시간엔 '윤고은의 EBS 북카페'가 흘러나오는데 다양한 작가님과 그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아주 유익한 시간이다.


낮잠도 루틴.

임신을 하고부터 잠이 매우 많아졌다. 원래도 잘 자는 사람이지만 임신 이후에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몰려온다. 그럴 때는 괜히 버티면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스르르 잠을 청하는 게 좋다. 어차피 시간이 다 내 것이니, 낮잠 좀 잔다고 해서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컨디션 좋을 때 책 읽기.

최근에 읽었던 책은 마커스 주삭의 장편소설 '책도둑'이다. 얼마 전 만난 이전 직장동료로부터 적극적인 추천을 받은 책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보니 완전 벽돌책이었다. 두께에 한 번 놀라고, 읽다 보니 술술 넘어가는 책장에 다시 한번 놀랐다. 매일 꾸준히 읽으니 벽돌책도 순식간이다.






저녁 식사는 너무 늦지 않게.

퇴근길에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를 받으며 그날의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메뉴는 요리사 마음대로. 입덧이 심할 때는 요리는커녕 메뉴 생각하는 것조차 괴로워 남편이 주로 준비했는데, 요즘은 다시 내 몫이 되었다. 하루동안 고생했을 남편을 생각하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본다. 요리하는 걸 나름 좋아해서 이 또한 즐거운 시간이다.


하루의 마무리는 샤워.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샤워를 한다. 크게 몸이 더러워져서라기보다는 하루를 마치는 의식 같은 거랄까. 따끈한 물에 몸을 녹이고 촉촉한 로션을 듬뿍 발라주면 잠들기 딱 좋은 상태가 된다.


밤의 자유시간.

나는 샤워 후 책을 마저 볼 때도 있고, 다른 할 일을 할 때도 있다. 남편은 헬스를 하러 가거나 회사에서 하는 토이 프로젝트를 할 때도 있다. 남편은 요즘 새벽이(태명)가 태어나면 아기도 들어야 하고 무거운 짐도 들어야 하니 미리 근육을 키워놓겠다며 헬스를 열심히 하고 있다. 자기 전에는 종종 같이 밤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잠들기 직전 감사기도.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 오늘도 모두 안전한 것. 밥도 잘 먹고, 낮잠도 잘 자고, 하루를 충실히 보낸 것에 대해 감사하다. 평범한 하루들이 감사함이다.


침대로 숨 쉬며 다이브.

엄청난 스케줄을 마친 건 아니지만 하루의 루틴을 마치면 다행히 잠이 아주 잘 온다. 낮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밤잠은 따로인가 보다. 못 자는 거보다는 잘 자는 게 좋은 거니 이 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내가 정한 나의 하루 루틴을 남편에게 말해주면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하기도 한다. 만약 본인이었다면 아무 일정 없이 누구보다도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거라며 말이다. 부부지만 다른 점이 많다. 가끔은 서로를 향해 "안 맞아~ 안 맞아~" 하며 웃기도 한다.


일명 '작가의 삶'을 산지도 벌써 한 달이다. 11월부터 본격 루틴을 실행했으니 말이다. 난 요즘 이 루틴이 참 마음에 든다. 매일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요리를 하고, 낮잠을 자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직장 다닐 때는 상상도 못 한 시간들이다.


진짜 작가님들이 이 글을 본다면 이게 무슨 작가의 삶이냐며 작가가 이렇게 안락하고 한가한 줄 아나며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매일 치열하게 고뇌하는 작가님들도 많을 테니 말이다.


(윤고은의 EBS 북카페에 나오시는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존경심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이건 그냥 내가 정한 나의 루틴이다. 그러고는 이름 짓기로 '작가의 삶'이라고 칭했을 뿐이다.


공무원 면직 후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던 차에 기왕 시간이 있으니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살아보니 만족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생활도 끝이 있어서 그럴까. 매일 이 루틴대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즐겁다.


이 생활에 끝이 있는 이유는 내년 1월부터는 사서직 공무원으로 발령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직장인의 삶이 되겠지만, 직장인 사서의 삶도 기대가 된다.


일단 그때까지는 일명 '작가의 삶'을 최대한 누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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