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책할까요?

산책

by 다른디귿


cat-437295_1920.jpg <출처:Pixabay>


소음에 익숙해진 도시생활을 하다 보니 귀가 자주 아프다. 쨍하니 귀가 찢어질 듯 아플 때도 있고 그냥 이유 없이 귀가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요즘 흔히 쓰는 표현으로 정말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런 소음들을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적응하며 살아간다. 최선은 도시를 떠나 자연의 소리를 듣고 살면 좋겠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으니 이어폰을 통해서 소음을 차단시키는 것을 택했다.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듣고 있으면 그나마 소음으로 벗어날 수 있어서 차선으로는 꽤 훌륭하다. 물론 매 시간 이어폰을 끼고 살 순 없고 오래 끼고 있으면 귀가 물리적으로 아프다는 사실은 단점이다.


그럴 때 산책한다. 귀를 구원하기 위해 걷는다. 걷는 게 참 좋다. 걸을 때는 모든 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는 기분이다. 걷다 보면 처음에 들렸던 소음들도 페이드 아웃되어 버린다. 소음들로 멀어지니 저절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난다. 내 안의 작은 고요가 찾아온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되어지는 시간이다. 동네 한 바퀴를 걸어도 좋고 소박한 암자가 있는 산길을 걸어도 좋다.


여름휴가 아닌 휴가를 산보하러 바닷가 작은 마을로 왔다. 아침이면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게 행복하다. 아침은 붉은 태양을 바다 위로 내어 놓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 영롱한 빛을 따라 어촌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슬리퍼를 끌며 걸으시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가볍다. 아슬랑 아슬랑 걸으며 뒤를 돌아보는 길고양이도 마을의 풍경이 되어준다. 물결 따라 내 마음도 같이 일렁인다. 표랑객이 된 나의 눈에는 가볍지만 위대한 아침이다. 걷는다는 건 언제 어디서든 내게 새로운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돈 들이지 않고 즐기는 미술작품을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그 날의 분위기와 나만의 감정으로 미장센을 뽑아내며 감독이 되어본다.


마음을 잘 열어 보이지 못하는 것이 나름의 스트레스이다. 좋은 사람이나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한 껏 열어 보여주고 싶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서 참 어렵다. 마음을 먼저 보여주는 이에게 그보다 더 한 마음을 열어주고 싶지만 내 마음을 미처 다 보여주기 전에 떠난다. 나는 예열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술 한 병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지만 걸으면서 마음을 나누는 편이 훨씬 진솔해지고 가깝게 느껴진다. 나란히 걷는 속도를 맞추고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산책할 때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고 담백해진다. 난 그런 밤들이 좋다.






[산책]

천천히 거니는 일


keyword
이전 18화그대 나를 안아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