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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Dec 23. 2024

그곳은 위로와 설렘의 교차점이다.

스물여덟 번째 마후문


해가 저무는 시간,

기차가 들어선다.

그녀의 짐은 오직 작은 가방 하나.

모든 것은 그곳에 두고 떠났다.

떠나는 그녀에게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가야만 하는가?

가지 말라고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그녀는 왜 떠났을까?

그녀 자신조차도 

떠나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새로운 곳으로 가는 이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도전, 동경, 용기, 꿈, 탈출, 변화, 도망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왜 가야만 하는지.

목적도 없었다.

그냥,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마음.

오직 그뿐이었다.

기차가 들어선다.

작은 가방 하나 손에 들고 

그녀는 

오직 떠나야만 한다는 의지를 가득 품은 채 

몸을 실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묵묵히 배웅하는 이는 

오직 한 명이었다.

그녀의 어머니.

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어찌 살거냐고도 묻지 않았다.

가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 손에는 작은 가방을

또 다른 손에는 봉투를 들고

기차에 올라섰다.

떠난다는 그녀에게 

"왜?"라는 물음 대신에

그녀의 어머니는 

기차역에서 작은 봉투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한 이별의 말은

"건강해라"

그 한마디뿐이었다.

기차가 출발했다.

그제야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마침내 정말 떠난다는 그 두 마음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뒤

그녀는 봉투를 열어보았다.

돈이 들어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렇게 

미안한 마음. 안쓰러운 마음.

원망의 마음. 염려의 마음,

그 여러 마음을 담아 

떠난다는 그녀의 손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쥐여 주었다.

200만 원.

그녀는 안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200만 원이 어떤 돈인지.

그렇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고향을 떠났다.

무슨 용기였는지,

의지였는지 나도 모르겠다.

두려움은 없었다.

그냥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나를 이기적이게 만들었다.

지금도 종종 힘든 순간이 오면 그때를 떠올린다.

세상의 기준으로 결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200만 원을 쥐여 주던 엄마의 손,

그리고

그 주름진 손을 뒤로하고

작은 가방 하나 들고 기차에 오르던 나.

그날의

20대의 나의 젊은 의지와 

나이 든 어머니의 깊은 마음이 

나를 위로한다.


다시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설렌다.

내가 원해서 떠났던 고향.

마침내 도착한 고향역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어두운 밤,

고향의 향기가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렇게 고향의 기차역은 

나에게 위로와 설렘이 되었다.



스물여덟 번째 마후문


"고향의 기차역은 위로와 설렘의 교차점이다."

서하



어젯밤 늦은 시간,

기차를 타고 

고향, 부산에 왔다.

엄마와 나는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1년 사이에 부쩍 자란 손자를 보며 

엄마는 그저 반가워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팠다.

나의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는 시간에

엄마의 주름은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못하는 게 뭐가 있노!,  하면 되지!"

그 의지의 마음으로

삶의 비극의 시간을 뛰어넘은 엄마.

스스로의 의지로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며 살아온 우리 엄마.

엄마 덕분에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하면 되지!

할 수 있어!

내 사전에 못할 만한 일은 없었다.

나는 항상 자신감으로 가득 찼으며,

안될 거라는 부정의 마음보다는

도전과 변화를 기꺼이 즐기며 살아왔다.

앞으로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를 

얼마나 더 탈 수 있을까?


나에게 고향의 기차역은 

위로와 설렘의 교차점이다.

스물여덟 번째 마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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