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느슨한 공부 모임이 있다. 남원에서 책방을 운영할 때 모임을 만들었는데 벌써 6년째, 한 달에 한 번 모이고 있다. 매년 주제를 정해 관련된 장소, 공간, 읽을거리를 알아보고 가보고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건축. 그동안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건축물을 많이 봐왔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어 정한 주제였다. 책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도 읽고, 전주에 건축학도와 인문학도가 만든 책방도 가보고, 건국대 건축대학원에서 여는 특강도 청강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하나 더 만들어가고 있다.
10월, 좋은 공공건축물을 보러 광주를 찾았다. 바로 아시아문화전당. ACC로도 불리는데 굉장한 역사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에 10월 10일 광주 출신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면서 이곳은 더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다.
1980년 5월 18일 민주화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한 목적이 있는 공공건축물인 아시아문화전당을 아무 배경지식이 없이 보게 된다면 건축물이 시야에 안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옛 전남도청을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나머지 공간인 전시과, 박물관, 도서관 등은 지하화했다. 하지만 입구에서 지하로 갈 때 지하로 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빛은 고루 퍼지게 하고, 뜨거운 자외선을 가릴 고마운 그늘은 느티나무가 책임져준다. 문화전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문화 예술의 전시 공간이 상설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 도서관, 문헌정보관 등 공공도서관은 매일 와서 책도 보고, 일도 하고, 아이들을 마음 놓고 놀게 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공간성을 가진다.
이 모든 공간을 무료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 공공건축의 기본일 것이다. 제 2의 한강을 제 2의 백남준을, 제 2의 국가를 빛내는 이름들을 양성하길 국가가 원한다면 이런 공공건축물이 있을 거 다 있는 서울 뿐만 아닌 광역 단위 지역에도, 작은 지역의 시골에도 규모에 맞게 필요할 것이다.
이제야 가본 게 아까울 정도로, 내가 광주에 산다면 시간 날 때마다 가고 싶은 곳이었다. 아시아문화전당을 보는 목적만으로도 광주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안 가봤다면 부디 가서 이 공간을 가득 돌아보고 누려보시길, 그리고 근처에 사는 분이 있다면 자주 애용해 주시길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5.18을 다룬 한강 작가의 책 <소년이 온다>는 광주에서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참고 있다가 광주시민들이 다시 세운 책방 충정서림에서 구매했다. 다음날, 첫 장을 넘기기가 떨렸지만 읽기 시작하여 수일 내로 끝 장까지 읽어냈다. 고통을 알게 해주는 것 역시 문학의 힘이구나를 느끼며, 광주에 빚진 마음을 잊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