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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Jun 01. 2023

쿠팡에는 위임전결이 없습니다.

쿠팡은 어떻게 최고의 기업이 되었나?

쿠팡에 근무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위임전결 규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조직에 따라 위임절차가 생기고,

이에 따라 위임전결규정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쿠팡에 위임전결규정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의아스러운 것 중 하나였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성공비결을 연구한 책인, '규칙 없음(NO RULES RULES)'를 읽으며, 쿠팡에 위임전결규정이 없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고, 기업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 마련되는 각종 규정과 제도가, 되려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상사는 직원들의 결정을 승인해 주거나 거부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야말로 혁신을 막고 성장을 더디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넷플릭스에서는 매니저가 마뜩잖게 생각하는 아이디어라도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실천에 옮기라고 떠민다. 우리는 매니저가 부하직원이나 누군가의 괜찮은 아이디어를 알아보지 못해 뒤로 제쳐놓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 들지 마라.
회사에 가장 이득이 되게 행동하라.

- 규칙 없음 NO RULES RULES _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지음 _ RHK 출판사 -


 쿠팡은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것을 위임전결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위임전결규정이 없다면 2가지 제한사항을 야기합니다. 첫째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쿠팡은 다릅니다. 쿠팡에서는 해당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실무자가 의사결정을 합니다. 혹시라도 비용이 발생한다거나, 다른 부서와의 협업이 필요하다면 해당 이슈는 실무자의 1차 리더가 처리하면 됩니다. 쿠팡에서 리더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이슈는 처리방안을 승인하거나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Bottle Neck(병목현상)'을 제거하고 해당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미션에 모든 자원(Resource)을 배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는 상사가 아니라 정보에 밝은 주장이 의사결정권자다. 상사는 팀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맥락만 짚어준다. CEO부터 정보에 밝은 주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이런 리더십 체계를 따른다면, 조직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나무를 닮은 구조로 가동될 것이다. CEO는 아래쪽 뿌리에 앉아 있고, 결정은 가장 꼭대기 나뭇가지에 있는 주장이 내리는 것이다.
- 규칙 없음 NO RULES RULES _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지음 _ RHK 출판사 - 




쿠팡은 리더도 일을 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일반적인 회사들처럼 시키기만 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요즘은 많은 조직에서 리더도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만, 쿠팡의 리더가 일하는 방식과는 2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쿠팡의 리더는 리더의 일을 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담당 실무자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회사들에서도 조직장이 일을 하지만 쿠팡의 리더가 하는 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들에서는 조직장이 아랫사람들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리더는 조직 전체적인 관점에서 큰 일을 해야 합니다.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업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회사들의 많은 조직장들은 미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신이 맡은 조직 내부의 업무, 담당 실무자 관점에서의 업무에 관여하려고 합니다. 바로 기존에 자신이 해왔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해왔던 일이므로 특별히 어렵지 않고, 되려 현재 담당 실무자의 실수가 눈에 잘 보이게 됩니다. 혹시 담당 실무자가 일이 서툴더라도 노하우를 알려주고 멘토링을 해주면 되지만, 많은 조직장들은 "이리 줘봐. 이렇게 해야 할 것 아냐? 이것도 못해서 어떻게 하겠어?"라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받으려고 합니다. 담당 실무자는 처음 한 두 번은 "네, 잘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어차피 조직장님이 다 고치실텐데 뭘...'이라면서 업무역량을 높이기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쿠팡의 리더는 자신이 맡은 조직의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조직과의 협업이 필요한 이슈,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사항, 전사적인 측면에서 미리 계획해야 하는 일을 합니다. 즉, 미시적인 일은 담당자들이 책임지고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경영자는 평범한 직원에게 넘겨도 좋을 일마저 자신이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능한 한 일을 아래로 위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려 한다! 자동차 정비 장인이 어리석게 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도제보다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장인이 손수 타이어를 갈던가? 그런데 대기업은 항상 정반대로 돌아간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부하 직원의 일거리를 가로채는 형태가 벌어진다. 상사에게 그만큼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쓴다. 바로 이 때문에 간부급에게 좋지 못한 회사 사정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그저 아랫것들만 벤치에서 빈둥거린다. 에휴, 저들을 치워라! 비용만 잡아먹고 손실만 일으키는 저들을 해고하라!
 미국의 경영 이론은 이 문제를 '체계적 권한 위임의 부족(Systemic underdelegation)'이라 부른다. 이는 매우 끔찍한 참상을 야기한다. 실력자는 회사를 구하겠다며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질 때까지 일하는 반면, 아래의 '평범한 직원'은 한가하게 빈둥거린다.
-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_ 군터 뒤크 지음 _ 비즈페이퍼 출판사 - 


 둘째, 쿠팡의 리더는 방임이 아닌 위임을 합니다. 

일반적인 회사들의 조직장들은 자기가 관리하는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본인이 통제하려 합니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고 표현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애시당초 본인이 몰라서 일어나는 일은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 구성원들은 조직장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조직장의 기분이 어떤지가 일의 내용보다 더욱 중요한 사안이 되게 됩니다. 조직장이 조직 내 모든 일들을 확인하고 통제하기 시작하면, 조직은 조직장의 역량보다 커질 수 없습니다. 결국 조직장이 조직의 'Bottle Neck(병목현상)'이 되는 것입니다.

 쿠팡은 다릅니다. 쿠팡의 리더는 위임할 줄 압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리더는 더욱 크고 중요한 업무를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반복적이고 세부적인 것까지는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위임을 빙자한 방임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리더는 모든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담당 실무자가 보고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진행사황을 체크하면서 목표에 맞춰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리더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를 확인합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보고를 하고 나면 '깨진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달리, 쿠팡에서는 실시간으로 리더가 스스로 공유되고 있는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가이드를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왜 이렇게 일처리를 했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일처리를 했냐?'라고 말하는 순간, 리더 스스로도 업무를 방임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고,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공유 자료를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배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라고 묻고 싶지만 선배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일은 해나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거야! 직접 부딪히면서 헤쳐나가는 거란 말이지. 항상 야무지게 잘 챙겨, 알았지? 문제 있으면 얘기하고..."

'나쁜 선배'는 이렇게 하는 행동이 후배들의 역량을 충분히 믿고 있으며 후배들이 직접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 위임, 즉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후배 입장에서 이것은 '위임'이 아니고 '방임'입니다.

'위임'은 '어떤 일을 맡기는 것'이라는 뜻이지만, 그 이면에는 맡기고 나서 적절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려운 것은 없는지 파악하면서 후방지원을 해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시키지 마라, 하게 하라 _ 박혁종 지음 _ 시대인 출판사 - 




 쿠팡에는 위임전결규정이 없습니다. 쿠팡은 위임전결규정이 없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위임전결규정이 없기 때문에 책임을 누구에게 미루지 않고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쿠팡은 상사에게 업무성과를 평가받는 조직이 아니라, 고객의 피드백으로 업무성과를 평가받는 조직입니다. 쿠팡에는 위임전결규정이 없지만 모든 구성원들은 그 어떤 조직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쿠팡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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