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어떻게 최고의 기업이 되었나?
군대를 전역하고 이틀뒤에 출근한 건설회사는 군대보다 더 군기가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제 의견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제 의견은 단 한마디도 낼 수 없었습니다.(실제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건설회사를 8년 넘게 다니고 입사한 쿠팡은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같은 대한민국 내의 회사라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수평적인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나를 조금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편하게 대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나?'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서 생각해 보니, 수평적인 문화는 조직 내 활발한 의사소통에 더할 나위 없는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나쁜 점은 없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과 협상을 할 때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수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 불리합니다. 협상은 결국 정해진 파이를 나누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물론 모두가 Win-Win 하는 협상도 있겠지만, 그것은 특정 누군가가 일방적인 피해를 보지 않는 지속가능한 관계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화의 상대방이 같은 조직 내에 있고, 같은 목표를 향해서 힘을 모아야 하는 동료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수평적인 문화는 서로 간의 생각을 공유하게 만듭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동료를 통해 보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 간의 생각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조직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더욱 좋은 성과물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소통이란 더하면 더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쿠팡 이후에 근무한 회사는 사무실 내에서 언어폭력이 자행되던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위 오래 근무한 기득권 세력들은 사무실 내에서도 거리낌 없이 소리를 지르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문화가 남아있었습니다. 새로 입사한 사람들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그런 폭력적인 문화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사리게 되고, 적극적인 의견을 주장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되곤 했습니다. 적절한 용어인지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이른바 쌍팔년도 군대 같은 문화가 조직 전반에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 일해야 했고, 시킨 일만 하면서 서류의 완성도에만 집착하게 되는 창의성이 뿌리 뽑혀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폭력적인 조직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식 조직 문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조직 문화의 고질병 중 끝판왕이다. 우리나라 군대식 조직 문화의 핵심은 '폭력'이다. 폭력의 사전적 정의란 상대방을 공격하고 고의로 혐오스러운 자극을 주는 행동을 의미한다. 여기서 폭력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해당된다. 오늘날 사무실에서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 매일같이 자행된다.
- 퇴사학교 _ 장수한 외 지음 _ RHK출판사 -
산업화 시대와 같이 생산성을 높여서 현장에서 일해야 할 때에는 일사불란한 군대문화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군대문화는 창의성을 저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쿠팡은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누구나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상향식(Bottom-up)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아랫사람들이 의견을 내면 통상적으로 돌아오는 피드백이 '시킨 거나 잘해'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쿠팡은 수평적 조직문화가 자리 잡은 덕분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상향식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쿠팡도 조직인지라 하향식(Top-down) 커뮤니케이션도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일반적인 회사들과의 차이점은 있습니다. 바로 존중의 문화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상사의 의견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상사의 의견이 최선이 아니더라도 이를 부하직원들이 지적하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입니다.
하지만 쿠팡에서는 누구나 쉽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쿠팡의 리더십 원칙 중에는 'Disagree and Commit'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리더십 원칙에 따르면, 좋은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언제나 건설적인 의견 대립을 해야 합니다. 논의를 할 때에는 정작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비난하는 행위는 쿠팡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Disagree and Commit]
좋은 의사결정 뒤에는 언제나 건설적인 의견 대립이 있다. 리더는 동의하지 않을 때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견을 제기하며, 인간관계에 연연하여 타협하지 않는다.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당초 의견을 지지했던 사람이나 반대했던 사람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 함께 모든 역량을 쏟는다.
- 쿠팡 채용 홈페이지 내용 중 -
따라서, 쿠팡에서는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이 모든 것은 상사가 더 높은 사람이고, 상사의 의견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쿠팡의 실무자는 상사가 일을 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해당 업무에 대해서 가장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톱다운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다. 1997년에 벌어진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 사건이 그것이다. 말콤 그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이 사건을 한 장을 할애해 분석했다. 블랙박스 해독을 통해 사고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원인은 조종실의 권위주의적 문화에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국식 상명하복 문화의 영향으로,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도 부기장과 기관사는 기장에게 악천후에 대한 경고를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예의를 갖추기 위해 돌려 말했다. 이런 '완곡어법' 때문에 기장의 판단 실수를 바로잡지 못하고 결국 참사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 혼창통 _ 이지훈 지음 _ 쌤앤파커스 출판사 -
쿠팡에는 상명하복이 없습니다. 즉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견을 따릅니다. 쿠팡의 수평적 조직문화가 가능한 것은 사람이 아닌 좋은 의견에만 집중하고, 서로 간의 의견을 존중하며 경청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쿠팡의 수평문화는 쿠팡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는 원천입니다.
(사진출처 : 넷플릭스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