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어떻게 최고의 기업이 되었나?
"팀장님, 지원자 이력서 검토할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볼까요?"
동료 직원의 질문에 팀장이 대답했습니다.(팀장님이라고 호칭하지 않겠습니다)
"문서쟁이로 뽑아. 문서 잘 만드는 사람으로."
쿠팡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쿠팡에서는 후보자의 능력과 성과만을 검토합니다.
하지만 쿠팡을 퇴직하고 근무한 회사에서는 '문서쟁이'를 원했습니다. 문서쟁이, 말 그대로 문서를 보기 좋게 잘 만드는,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물론 성과도 내면서 문서도 잘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제가 경험했던 그 회사는 달랐습니다. 철저하게 보고를 위한 보고서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보고서를 실제 실행한 것은 극소수였습니다. 또한 보고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서류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성원들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집중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으면서 의사결정권자의 마음에도 들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보고를 위한 보고서 작성, 회의를 위한 회의만 거듭되었을 뿐, 실제 해결된 문제는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현장이 아닌 모니터 앞에서 보고서의 표현만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무사란 무엇인가?'하고 생각을 깊이 하는 자도 있었다. 매일 아무래도 종일 서류만 들척이며 '이<을>을 <는>으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등 번민의 생활과는 매우 거리가 먼 하찮은 토의로 시간을 낭비해 온 성내 근무를 다시 한번 생각하기도 했다.
- 불씨 _ 도몬 후유지 지음 _ 신한종합연구소 -
쿠팡에서 우수개소리로 '우문현답'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우문현답의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을 함'이라는 뜻이 아닌,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뜻으로 우문현답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회사의 최고 경영진들도 보고서만 들여다보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체험하고 느끼면서 문제해결방안을 찾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윗사람이 문제 해결방안 검토를 지시하면, 아랫사람은 현장에 물어보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소설 쓰듯이 적어가면서 겉만 번지르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구성원 모두, '내가 확인할 것은 다 확인했어.'라는 자기 안위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생의 명대사인 '사업놀이'를 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기획서는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양쪽 다 자기 입장에 충실한 보고서들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되는 일로 만들려고 하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 이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기획서는 쓰지만... 되면 어떡하지? 만약 실패한다면,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는데... 기획서를 충실히 쓰는 데서 만족하고 그 이상의 노력을 안 하는, '사업놀이'를 하고 있더라구요. (3권 P.146~149)
- 미생 _ 윤태호 지음 _ 위즈덤 출판사 -
조정래 장편소설 <한강> 제7권에는 포항제철(현재의 포스코) 초창기의 박태준 사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뭔지 알아?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채굴 현장으로 가서 1천 미터 이하의 갱 속으로 직접 들어간 거야. 전 사장들이야 갱은 고사하고 현장에도 와보지 않았는데. (중략) 박태준은 그런 사람이야.
쿠팡의 모든 리더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절대 서류에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서류 자체가 작성자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것이기도 하고, 보고서에 나와있지 않은 내용들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고서의 특성상 질책을 받을 수 있는 예민한 내용들은 보고서에서 생략된 채 작성되는 경우도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쿠팡의 리더들은 직접 확인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리더가 직접 확인하기 때문에 의사결정도 빠릅니다. 쿠팡은 그 어떤 기업보다 큰 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보통 대기업이 되면 관료화가 나타나면서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쿠팡은 조직이 커지더라도 의사결정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졌지, 느려지지는 않습니다.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책망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사례에서도 교훈을 얻으려 하는 도전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학의 대가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l Etzioni)가 지적했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안을 검토하는 하급자는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거듭하며 불확실성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필요 이상의 복잡한 결재 단계에서 시간을 끌기도 한다. 이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급자도 마찬가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보고서의 사소한 오류나 정보 부족을 탓하며 재작업을 지시해 시간을 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라는 격언이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의사결정은 없다'라는 격언을 압도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쉬는 것은 아니다. 모두 정보를 수집하며 바쁘게 뛰고 있다. 보고서 버전은 끝없이 올라간다. 그렇게 돌다리를 두드리던 순간 경쟁사는 이미 그 돌다리를 건너 신제품을 내놓는다. 남은 완벽한, 그러나 이미 쓸모없는 보고서와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씁쓸한 자위뿐이다.
- 90년생이 온다 _ 임홍택 지음 _Whale books 출판사 -
어떤 분들은 리더가 현장을 확인할 시간이 있다면, 더욱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쿠팡의 리더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현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현장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쿠팡의 리더들은 하나같이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뛰고, 손으로 확인합니다. 그것이 쿠팡이 가진 경쟁력이며, 혁신의 근원이라 생각합니다.
쿠팡은 보고서를 통해 일하지 않고, 현장을 통해 일하는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쿠팡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출처 : 미생 3권 내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