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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장엔 내가 만든 옷이 있다.

패턴은 감성인데, 핏은 감당이 안 돼

by 이팝

아이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늦게 귀가할 때까지 기다릴라치면, 눈이 저절로 감기며 얼른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새벽에 나가 한밤중 귀가하며 종일 고생한 아이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재단이나, 손으로 마무리할 부분들을 해가며 기다린다. 생각보다 시간도 잘 가고, 졸음도 참아지는 것 같다.

그렇게 애틋한 마음으로 기다리지만, 만나자마자 또 갱년기와 사춘기의 티각태각 전쟁은 시작된다. 아마도 우리는 눈에 안 보이면 보고 싶고, 보이면 으르렁거리는 백 미터 사랑인가 보다.


그렇게, 서로 마음에 없는 말들로 긁어가며, 늦은 간식을 먹이고,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진정 잠을 청할라치면 더웠다 추웠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는 갱년기 불면의 시간들이 찾아온다. 몇 시간을 멍하니 있자면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 것만 같다.


그럴 때는, 조용히 일어나 재봉틀이 있는 방으로 가서 미뤄두었던 재단 같은 것들을 한다. 적막한 공기가 감싸고, 머릿속도 차분해진다.


그렇게 피곤할 때까지 재단이나 수작업들을 하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면, 그대로 조용히 들어가 잠을 청한다. 새벽까지 몇 시간 못 자더라도 차라리 이게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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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감 뒤판 <앞판 <스커트 <소매순 <칼라순으로 재단! 안감도 같은 순으로 재단!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진 원피스이다. 물론 저녁이나 한밤중에 재봉틀을 돌리지는 않는다. 층간소음유발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


낮시간이나, 여유될 때 박음질을 한다. 이렇게 하나둘씩 만들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바느질선도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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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 잇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중 하나가 다림질이었고,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이 다림질이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마지막으로 최대한 미루고 미루는 일중의 하나였는데, 옷 만들다 보니 그 문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퀄리티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간중간 다림질을 참 많이 해줘야 한다. 정성껏 다림질이 된 곳의 박음질선은 예쁘다. 그리고, 그렇게 박제된 선이 옷을 입는 동안 자연스럽게 옷감과 어우러져 자리를 잡고,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 낸다. 마음이 담긴 다림질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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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감도 상하 잇고, 콘솔지퍼 달아 앞, 뒷판 연결하기. 이거 달기 쉽지 않음. 좌우대칭이 잘 되도록 달아야함.



언제나 제일 어려운 것은 칼라 부분이다. 나만 그런가? 이번에도 겹칼라가 계획은 아니었는데, 라운드를 너무 크게 재단한 바람에 자구책으로 겹칼라를 구상하게 되었다. 항상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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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 연결 후 칼라달기. 의도치 않게 이중칼라가 되어 버렸다. 할 때마다 계획처럼 되지 않음



절반은 불면의 밤을 견디려, 절반은 사춘기와의 전쟁을 견디며, 드디어 원피스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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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킨핏~



여윽시...

착장 해보니, 실물보다 사진이 낫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만들었다.


이렇게, 또 나의 옷장에 나만의 감성으로 만든 옷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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