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아파파 Jul 12. 2023

고마워 제주야

제주야 안녕

제주도에 있는 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가족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진 것,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데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 앞으로 뭐든지 잘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그럼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일 때문에 시아와 많은 시간을 놀아주지 못한 점, 부모님과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 못한 점, 아내에게 너무 힘든 일을 하게 만든 점.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

잠자리에 누워 잠들지 않는 정신 사이로 이런저런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정말 많은 것을 얻었고, 그 반대로 많은 것을 잃었던 시간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을. 세상을 살면서 얻을 수만은 없고, 얻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는 잃게 되는 법. 하지만 얻은 것이 나에게 잃은 것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면 성공한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이른 새벽 잠든 시아를 조심히 안고 차로 향했다. 시아는 더 자야 할 시간.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깨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조심히.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길을 나서며 1년 동안 살았던 집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짧은 인사가 더 아련한 이유는 뭐였을까?


이번엔 혼자가 아닌 셋. 시아와 아내가 옆에 있었다. 이젠 혼자가 아니었다. 제주도에 처음 내려올 때, 제주도에 짐 정리하러 내려올 때. 마지막 시아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내려올 때, 계속해서 혼자였지만 이젠 끝이다. 졸지 말라고 옆에서 계속해서 말 걸어주는 아내의 목소리가 노랫소리처럼 흥겨웠다. 긴 거리도 오랜 시간도 즐겁게 운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날씨도 우리를 잘 보내주었다. 눈과 바람으로 우리를 가로막았던 시간들이 미안했던지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로 우리의 갈길을 비쳐주었다. 선물을 받으며 배에 올라탄 우리. 시아와 아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큰 배를 타는 것이어서 배에 올라가는 내내 감탄사를 뿜어냈다.

"우와, 아빠 배가 엄청 커."

"배에 에스컬레이터도 있고, 엘리베이터도 있네."

"도대체 몇 층까지 있는 거야?"

"여기 오락실도 있고, 노래방도 있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아내와 시아가 번갈아 가면서 놀라움을 표출했다.


바다가 보이는 갑판에 앉아 따뜻한 컵라면을 한 그릇씩 하고 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오니 바람이 세서 계속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추위를 피해 안으로 피신할 수밖에. 오락실에서 오락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간식도 사먹고. 그런데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배의 단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시아의 지루함을 풀어줘야 하는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도 2시간이나 더 남았는데.


그래도 시간은 흘러 도착 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육지에 도착. 섬 생활을 벗어나 육지 생활의 시작이었다. 육지라는 말이 서울에 사는 친구들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나 드디어 육지 간다."라고 하면 웃기부터 한다. 나도 처음엔 어색했기에 당연한 표현이었다. 섬과 육지. 섬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육지라는 말.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동경의 대상이 되는 그 말. 이제 나도 다시 육지사람이 되었다.


차를 타고 배를 빠져나가 한적한 시골 동네를 달리니 느낌이 새로웠다. 똑같은 바다지만 이제 남해라 불리는 바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받아들이는 느낌도 달랐다.


도착한 곳은 완도였다. 항상 고흥 녹동항으로 갔었는데 이번엔 가장 빠르고, 가장 배 타는 시간이 짧은 완도항으로 정했다. 시아와 아내가 처음 타는 배라 최대한 짧은 배로 선택했다. 그리고 녹동항으로 가는 배는 아침에 없었다. 시아와 처음 와보는 완도. 이곳은 아내와 신혼 때 여행 왔었던 곳이었다. 그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 바다는 언제 봐도 좋았다. 추웠지만 시아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육지에 온 것을 축하했다.


바다를 뒤로 한채 우리는 전주로 향했다. 예전부터 시아와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서울에서 가기에는 너무 멀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에 서울까지 가기에도 시아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중간인 전주에서 하루 쉬었다가기로 했다.


이곳도 거의 15년 전 대학생 때 와봤던 곳. 혼자 기차여행을 하며 들렀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귀여운 딸과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오게 되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만큼이나 전주도 많이 변했다. 변화는 당연한 것이었다. 전주만 변한 것이 아니라 나도 많이 변했으니.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기에.


맛있는 전주비빔밥도 먹고, 한옥 마을도 돌아다니고, 제주 생활의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 아빠 나 한복 입고 싶어." 주변 많은 사람들이 예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니 시아도 입고 싶어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감기 걸릴까봐 아내와 나도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한복 입은 시아 모습. 얼마나 이쁠까?


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입자고 했지만 역시나 삐지고 말았다. 일부러 안 해주는 게 아닌데. 아내도 해주고 싶은데 아플까봐 못 해주는 상황에서 시아가 때를 쓰니 화가 났다. 근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우리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추워도 괜찮다고 하니.


역시나 한복 입은 시아 모습은 너무 예뻤다.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그 누구도 시아보다 이쁘지 않았다. 이렇게 한복이 잘 어울리다니. 한옥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작품의 탄생이었다. 정말 크게 뽑아서 집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졌다. 눈을 돌려보다가 그림 그려주는 곳을 발견했는데 역시나 시아는 하고 싶어 했다. 제주도 내려오기 전에 인사동에서 그렸을 때 너무 잘 그려주셔서 여기서는 어떻게 그려주실지 궁금했다. 거기다가 예쁘게 한복도 입고, 머리도 했으니 더 예쁘게  그려주실 거라 생각했다. 웃는 얼굴로 가만히 잘 앉아 있는 시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다 그렸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그런데 아내와 내가 보자마자 멍했다. 예쁜 시아를 기대했는데 남자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가 있지?'

정말 황당했지만 시아는 좋다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잘못 본 건가. 하지만 몇 번을 쳐다봐도 아니었다. 그래도 시아가 좋아하니 다행이었다. 자기 아니라고 실망하고 그랬으면 안 좋았을 텐데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하니. 그래서 2년마다 한 번씩 그려보자고 했다. 그리는 사람마다 다르니 시간과 장소에 따라 시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남겨보기로 했다. 2년 후 다음에는 어디서 그릴까?


전주에서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계속해서 떠나야 하는 여정. 이제 거의 종착역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 섬도 아니고 남쪽도 아닌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는 서울.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줄 집과 동네가 있는 곳. 전주에서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듯 무거웠다. 아쉬움과 속 시원함이 함께 찾아왔다. 제주도에 더 있지 못한 아쉬움, 제주도에서 성공하고 싶었는데. 가게를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간다는 속 시원함, 이제 제주도는 여행으로 가자.


아내와의 대화 속에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1년 반동안의 시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많은 것을 얻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확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 내가 목표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목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이 목표는 내가 살아있는 한 쭉 내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이전 27화 제주 졸업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